[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과 구업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과 구업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5.2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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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수렵시대에는 화가 나면 돌을 던졌다고 하고. 고대 로마 시대에는 몹시 화가 나면 칼을 들었고. 미국 서부 시대에는 총을 뽑았다고 한다. 지금의 시대에는 화가 나면 '말 폭탄'을 던진다. 인격모독의 막말이나 악플을 일삼는 사람들도 많다. 정제되지 않은 말 폭탄을 타인에게 예삿일로 투척한다. 설혹, 그의 생각이 옳다고 할지라도 사용하는 언어가 궤도를 일탈했다면 탈선임이 분명하다.

인간의 역사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 석가모니, 예수, 마호메트 등을 비롯한 세계 유명인의 말이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의 주머니로 통한다. 이들의 말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미래의 처세술을 함축시켜 놓은 생활의 철학이며 귀감(龜鑑)의 철학이요, 양식의 보고이다. 말에 순응한 자는 살아남을 것이요 반(反)하는 자는 파멸이 있을 뿐이다.

중국 후당 때 재상 ‘풍도(馮道)’는 설시(舌詩)에서 “구시화지문 (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 (舌是斬身刀) 폐구심장설 (閉口深藏舌), 안신처처우 (安身處處宇).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다.”고 했다. 

또 송나라 때 ‘주희(朱熹)’는 경재잠(敬齋箴)에서 수구여병(守口如甁) '독에서 물이 새지 않는 것과 같이 입을 다물고 발언에 신중을 기하라'고 했다.

말이 억세다는 것은 요즘 말로 소통이 되지 않고 고집과 아집으로 가득한 것을 말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는 것은 대중심리를 다수의 뜻에 따르지 않고 개인의 편견(偏見)대로 적용하고 이용하는 처세술을 말한다. 이러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공허한 말로 자신을 파멸시킬 뿐만 아니라 동조자들도 동시에 파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고, 매정한 말은 영혼을 관통한다.” 스페인의 격언이다.
화살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험한 말은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당연히 후자의 아픔이 더 크고 오래 갈 수밖에 없다.

옛사람들이 ‘혀 아래 도끼가 들어 있다’고 말조심을 당부한 이유이다. 불교 “천수경(千手經)” 첫머리에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는 말이 나온다. 

팔만대장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경전인 “천수경”의 첫마디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의 뜻을 풀이하면 '입으로 지은 구업을 깨끗하게 하는 참된 말'이란 뜻이라고 한다. 

구업(口業)에 대해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은 구업은 여러 수십억 년이 지난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을 만나는 어느 순간에 자기가 지은 구업에 대한 응보(應報)는 반드시 받는다고 한다.

그중 4가지는 거짓말로 지은 죄, 꾸민 말로 지은 죄, 이간질로 지은 죄, 악한 말로 지은 죄는, 말을 잘못한 것으로 모두 구업(口業)에 해당 된다. 말에 대한 구업을 참회하려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란 주문을 외워야 한다고 “천수경”에 나온다.

탈무드에는 말에 관한 우화가 실려 있다. 옛날 어느 날 왕이 두 명의 유능한 신하를 불렀다. 한 신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찾아오라”라고 지시하고, 다른 신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찾아오라”라고 명령했다.
                                                                       
두 신하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악(惡)한 것과 선(善)한 것을 찾아다녔다. 몇 년 이 지난 후에 두 신하가 왕 앞에 나타나 세상에서 찾아온 것을 보고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신하가 보고한 것은 모두 ‘혀’라고 했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아는 것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말의 진짜 생명은 그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글이 종이에 쓰는 언어라면 말은 허공에 쓰는 언어이다. 허공에 적은 말은 지울 수도, 찢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한번 내뱉은 말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공기를 타고 번식한다고 한다.

말은 사람의 품격(品格)을 측정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품격의 품(品)은 입구(口) 자 셋으로 격(格)자의 입구(口) 하나까지 더하면 네 개의 입구가 들어간 글자이다. 입을 잘 활용하는 것이 사람의 품위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이다.

논어에서는 입을 다스리는 것을 군자의 최고 덕목으로 꼽았다. 군자의 군(君)을 보면, '다스릴 윤(尹)' 아래에 '입구(口)'가 있다. ‘입을 다스리는 것’이 군자라는 뜻이 된다.
                                                                       
세 치 혀를 잘 활용하면 군자가 되지만, 잘못 활용하면 한순간에 소인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말을 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백 번 중에 한 번 정도 후회하지만,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 말을 하면 백 번 중에 아흔아홉 번 후회한다”라고 강조했다.

공자는 “더불어 말해야 할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다. 더불어 말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라고 했다. 잘못된 언행으로 사람과 말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생각이 언어를 타락(墮落)시키지만,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킨다”라고 했고,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역설했다.

일상생활에서 밝은 말, 고운 말, 긍정적인 말, 원만히 성취되도록 하는 말,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쁜 말을 자주 하면 생각이 오염되고, 그 집에 자신이 살 수밖에 없고. 말의 쓰레기 속에 살게 되는데 그만큼 잔인한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어디에 있을까?

결국 지은 구업대로 그 응보를 받는다는 원리를 이해하면 자기의 행동이나 생각과 말이 달라질 것이다. 좋은 구업을 쌓으면 좋은 응보를 받고, 나쁜 구업을 쌓으면 나쁜 응보를 받는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가 사는 가정과 사회가 훨씬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해온 많은 구업을 씻어내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5. 27일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하여 천수경 속의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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