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최저임금은 남의 일, 주 52시간 근무는 사치인 플랫폼 노동자들
[이슈] 최저임금은 남의 일, 주 52시간 근무는 사치인 플랫폼 노동자들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5.25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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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지시 받고 일하지만 근로자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 못 받아
한달 200만원 벌이도 감지덕지, 노동자 보호할 장치 마련 시급
노동환경의 변화로 인해 등장한 플랫폼 노동자들은 각종 불이익에 시달리는 이유로 자신들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첫손으로 꼽았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노동환경의 변화로 인해 등장한 플랫폼 노동자들은 각종 불이익에 시달리는 이유로 자신들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첫손으로 꼽았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언제나 웃는 얼굴로 부지런히 일하는 통에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명을 지닌 택배기사 A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것은 며칠 전부터의 일이다. 택배 물품을 수거하기 위해 한 건물에 들른 A씨가 운전 중 조그만 실수로 주차장 자동차단기를 쳤고 이로 인해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230여만원의 수리비를 청구 받게 된 때문이다.

하루 열 시간 이상 한달 내내 일하고 버는 수익 200만원을 웃도는 금액이니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 사정사정해 결국 190만원을 지불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속이 편할 리가 없다. 한달 수익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때문이었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실책인 건 맞지만 이럴 때마다 자신의 처지가 못내 속상하다. 버젓이 관리자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런 처지가 되면 개인사업자라는 자신의 신분 탓에 회사로부터는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전국적으로 220만명(전체 취업자의 8.5%, 2021년 기준)에 달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 특수고용 노동자라고도 불리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회사의 지시를 받고 회사의 목적을 대변해주는 업무를 담당하는 실질적인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의무만 질 뿐 권리는 누리지 못하는 불합리한 처우에 시달리는 시대의 희생양이다.

이에 노동계와 정계, 학계 등에서 이들의 근로자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는 누리지 못한 채 오늘도 사회의 냉대 속에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 실제로는 근로자, 불리할 때만 개인 사업자 취급받는 이중성

법조차 외면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사업주가 앞장 서서 챙겨주리라는 기대만큼 허무맹랑한 것은 없다.
법조차 외면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사업주가 앞장 서서 챙겨주리라는 기대만큼 허무맹랑한 것은 없다.

익히 알다시피 플랫폼 노동의 등장은 산업구조와 노동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닌 것으로 풀이되는 플랫폼 노동은 앱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이 거래된다는 것에서 보여지듯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다만 등장한지 오래지 않은 탓에 이와 관련한 제도 정비가 미흡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업무나 행태는 근로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만 법과 제도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 탓에 상당수 불이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는 ‘특별한 노동자’가 아닌 ‘종속적 계약자’로 분류된다. 노동자가 계약관계를 갖지만 계약상대방에게 종속돼 있음을 의미한다. 바꿔 풀이하면 일반 근로자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누리는 권리를 지녀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플랫폼 노동은 진입장벽이 없어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일감 대기시간 같은 비가시화된 노동이 무급으로 사라진다. 노동시간과 소득이 불규칙해 노동 관련 법령을 적용하기 어렵고, 사업장 중심인 사용자 책임을 묻기도 힘들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업무상 상해나 손실도 자기 부담으로 해결해야 하는 등 불합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플랫폼 노동은 노동기본권 보장에 취약하고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비껴나 있다는 뜻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정책의 시급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수시로 이와 관련된 주장들이 흘러나오지만 대부분은 임시 처방격이거나 지엽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개발과 사업모델 혁신 등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 플랫폼 노동은 앞으로 점점 더 그 세를 불릴 것이 확실하다. 종사하는 이의 수가 늘수록 이와 관련된 불협화음 역시 커질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조속한 해결책을 촉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역시 근로기준법의 지원이다. 근로기준법이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분명하게 명시하는 것만큼 깔끔한 해결책은 없다. 명확하게 법으로 교통정리되기 전까지 플랫폼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플랫폼 종사자는 고용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는 플랫폼 노동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나날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직업과 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직업이 등장하면 불거질 문제라는 의미다. 달라진 노동시장을 커버할 수 없는 근로기준법은 더 이상 근로자의 법이 아니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각종 비용을 뺀 플랫폼노동자 월평균 순수입은 125만원
법의 사각지대에서 외면받고 있는 처지 못지않게 플랫폼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또 있다. 현실적인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얼마 전 윤석열 정부는 주 52시간의 맹점을 지적하며 주 69시간 근로제를 언급한 바 있다. 즉각적인 반대여론에 부딪혀 금세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이 광경을 보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심경은 오히려 그를 부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에겐 주 69시간조차도 부러운 수치였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시간과 관련한 사회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쓰러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이를 막을 제동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대구의 건설 현장 숙소에서 한 40대 마루 시공노동자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이 노동자는 지난 4개월간 하루 13시간,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하다 과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루 시공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3.3%의 사업소득세를 내는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었던 탓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이와 유사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언제 이런 비극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형편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의 건강권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게 2023년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장시간 일을 하고도 받는 임금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많지도 않다는 점이 그렇다. 한창 코로나로 배달이 폭증하던 시절, 배달라이더가 한 달에 천만원 이상을 번다는 뉴스가 언론을 장식했지만 그는 아주 특수한 경우였다.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의 보고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의 월평균 총 수입은 거리두기 해제 이전에는 299만 5000원으로 나타났고 거리두기 해제 이후에는 344만 2000원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식비, 유류비 등의 인상으로 실질 수입은 오히려 줄었다. 거리두기 해제 이전 실질수입은 230만 6000원으로 나타났으나 거리두기 해제 이후에는 216만 7000원으로 6.0% 줄었다. 플랫폼 노동자의 전체 시간당 평균 임금은 9900원으로 나타났다. 일부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 최저임금에 미달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기도 했다.

유사한 조사가 또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021년 진행한 '플랫폼 노동자의 생활실태를 통해 살펴본 최저임금 적용방안' 연구용역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각종 비용을 뺀 플랫폼노동자의 월평균 순수입은 125만원이었다. 

직종별로 보면 ▲택배노동자 198만 2000원 ▲음식배달 노동자 160만 4000원 ▲대리운전기사 39만 9000원 ▲가사서비스 노동자 17만 6000원으로 노동시간으로 나눠 환산하면 2022년 최저시급 9160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도저히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수준, 결국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자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조성한 것이 바로 법이었다. 현행 근로기준법 7조는 도급근로자에게 노동시간에 따른 일정액의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는 이 혜택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최저임금법 5조 3항이다. 최저임금법 5조 3항은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해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급제 노동자와 유사한 환경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인 셈이다. 문제는 이 조항이 사문화되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례는 법 제정 뒤 37년간 한 번도 없었던 것.

잘만 활용하면 플랫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정부나 정책 담당자들은 그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중이다. 세종대 시니어산업학과 이용기 교수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근로자성 인정은 전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면서 “더 큰 논란을 빚기 전에 플랫폼 노동을 안착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책 방향과 입법 과제 검토가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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