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위 의심케 하는 정부의 근로시간면제제도 전수조사
[이슈] 진위 의심케 하는 정부의 근로시간면제제도 전수조사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6.09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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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사업체 중 유노조 사업장 510곳만을 대상으로 실시
노조 때리기 용도로 시행한다는 의혹 커져.. 결과 지켜봐야
건폭 논란, 회계장부 건 등 정부의 노조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노총
건폭 논란, 회계장부 건 등 정부의 노조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노총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건 상식 있는 이라면 누구나 되새김직한 경구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연스레 하게 된다.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단순히 노조 길들이기를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 회계 관련 서류의 표지와 속지를 제출하지 않은 52개 노동조합에 과태료를 부과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일명 타임오프라 불리는 근로시간면제제도 운영실태 전수조사를 공언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선 노조 때리기를 염두에 둔 표적 조사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보수 정권 특성상 친기업, 반노조 행보를 견지할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바지만, 최근 정부의 모습은 노조를 절대악인 양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노조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따라서 건전한 노조의 활동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되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현 정부는 노조의 활동이라면 모두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 건폭, 회계장부 건에 이은 타임오프 전수조사에 노동계 발끈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를 개인이 막기 힘든 상황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사진은 지난해 출범한 콜센터 노조 발기 장면. 사진제공 한국노총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를 개인이 막기 힘든 상황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사진은 지난해 출범한 콜센터 노조 발기 장면. 사진제공 한국노총

기업 내 노조활동을 일정 수준 유급으로 보장해주는 제도인 근로시간 면제제도는 노동조합의 건전한 활동과 노사 관계의 발전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노사가 단체협약 또는 노사 양측의 합의를 통해 지정한 자로 근로시간면제 한도 내에서 근로 대신 노동조합을 위한 업무를 할 수 있게 해놓은 것으로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이가 노조의 유지·관리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조 측을 배려하는 제도인 셈이다. 

일일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노동자들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노조 관계자가 노조활동을 하더라도 근로로 인정해 급여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지닌 이 제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결국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꾀하기 위한 장치다. 현재 노조법 부칙 제3조는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결정할 때 ‘조합원 수, 조합원의 지역별 분포,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연합단체에서의 활동 등 운영 실태를 고려하여 근로시간면제한도 심의에 착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노사 선진화를 위한 첫 출발이란 슬로건 하에 도입된 당 제도는 출범 당시부터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의 불만을 동시에 이끌어낸 불완전한 형태로 산업현장에 도입되었다. 경영계는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전임자를 설정해놓았다면서 이는 노사분규의 원인이 되고,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 될 것이라 주장한 반면 노동계는 오히려 당 제도가 노조 전임자들의 발목을 잡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차고 넘친다면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출발하긴 했지만 그간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조의 활동을 뒷받침할 일정 수준의 법적 보장을 담보한 탓에 노조 전임자들이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인원들의 편법 내지는 불법적 운용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의 잘못에 불과하다. 어디서든 우물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존재하는 법이다. 그를 바로 잡겠다고 멀쩡한 우물을 뒤집을 필요는 없다. 이는 근로시간면제 관련 부당노동행위 신고 건수만 확인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2019년 24건이던 근로시간면제 관련 부당노동행위 신고 건수는 2020년 28건, 2021년 51건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15건으로 감소했을 정도로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용자가 부당한 근로시간 면제 및 운영비 지원 등을 통해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하거나 노동조합 간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둘러싼 갈등 사례가 지속됨에 따라 현행 제도의 운영실태를 면밀히 파악하여 투명한 노사관계와 건전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힌 것.

모든 제도는 수시로 점검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부작용이나 오류를 개선하는 것이 옳다. 다만 이번 전수조사가 단순히 오류 개선을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 의혹이 불거진 것은 그 대상과 시기, 방법론에서 이전과 다른 방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 일부 부적절한 관행 개선으로 돌파구 찾는 것이 바람직
지난 5월 30일, 고용노동부는 5월 31일부터 4주간 대규모 사업체 중 유노조 사업장이 있는 510개소를 대상으로 근로시간면제제도 및 전임자 운영현황 등을 조사한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투명한 노사관계와 건전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 고용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노동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일단 대상기업 선정부터가 의혹을 부르는 대목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이번 전수조사에서는 노동자 1천명 이상의 유노조 사업장 510곳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또한 당사자라 할 노조는 제외하고 사업주에게 면제자의 급여 수준, 각종 수당 지급 여부, 운영비 지원 현황 등을 묻는 방식이라는 것도 탐탁지 않은 구석이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조사가 없던 것은 아니다. 제도 시행 이후 총 3차례에 걸쳐 조사를 진행한 바 있지만 앞선 조사들은 제도 시행 후 현장 안착의 어려움과 이에 따른 보완 상황 확인을 목적으로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대상 선정 시에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결정하는 데 앞서 기업규모별 표본을 추출해 실태를 파악하는 수준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특정 기업과 노조를 대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분명히 다르다. 

노동계에서 이번 전수조사가 대기업·유노조 사업장의 노조전임자 문제를 끌어들이기 위한 기획조사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 그래도 이 부분과 관련된 논란이 발생한 터였다. 올초 최근 경찰이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부각된 것이 바로 ‘노조 전임비’와 ‘노조 발전기금’이었다. 이는 모두 근로시간면제제도와 관련된 내용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13일까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에 따른 피해 사례를 조사한 결과 1484개 현장, 2070건의 피해 사례 중 노조 전임비 수수 건이 567건으로 전체의 27.4%에 달했다고 내용을 밝힌 것과도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다.

경찰과 국토교통부, 그리고 고용노동부까지 줄을 서서 근로시간면제제도 때리기에 나선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우연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어 보일 정도다. 현 정부는 우리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으로 대기업·유노조 사업장의 연공성과 그로 인한 임금격차를 지적한 바 있다. 기가 막히게 앞뒤가 맞는 이야기다. 

노동계가 이번 전수조사를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전문가들도 노동부 계획에 우려를 표했다. 사단법인 직업상담협회 신의수 이사는 “기존 정기 조사와는 달리 천명 이상의 대기업 사업장에 국한된 근로시간면제제도 조사에 특정한 의도성이 엿보인다”면서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조사 결과 노조 전임자들의 특혜를 빌미 삼는 노조 때리기 의혹을 받게 된다면 노동계의 반발이 격렬할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근로시간 면제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개선할 부분도 있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 역시 존재한다. 법을 만드는 이들과 제도를 시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의 대화와 합의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가 상황을 호전시킬 수 없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그런 상식을 잊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 아닌 의심을 가지게 된다. 이번 전수조사의 결과가 그게 기우였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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