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최저임금 취지 무색하게 만든 산입범위 확대, 진지한 논의 필요해
[초점] 최저임금 취지 무색하게 만든 산입범위 확대, 진지한 논의 필요해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6.23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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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임금손실 피해 보는 노동자 다수
상여금 및 복리후생적 급여 24년부터는 전액 포함돼 문제 더 커질 듯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2024년도 적용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시급 기준 1만 2000원, 월급(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한 250만 8000원 수준을 제시하고 나섰다. 사진 제공 민주노총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2024년도 적용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시급 기준 1만 2000원, 월급(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한 250만 8000원 수준을 제시하고 나섰다. 사진 제공 민주노총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본격적인 줄다리기에 나섰다. 언제나처럼 격렬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올 심의에선 업종별 차등적용이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업종별 차등적용의 논점에 관해선 이미 본지에서 다룬 바 있다. 그 다음으로 거론되는 부분이 바로 노동계가 주장한 내년도 최저임금액수인 1만 2000원 부분이다.

당연히 경영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자영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소상공인들 역시 절대 불가를 외치며 단체 행동에 돌입하기까지 했다. 일반 국민 정서도 너무 과격한 인상폭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오지만 노동계의 입장은 완강하다. 왜 그런 걸까. 그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확대다.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된 산입범위 확대로 인해 노동자들, 특히 최저임금 경계선에 위치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그를 탈피하려면 1만 2000원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다. 차제에 산입범위 확대를 규정하고 있는 최저임금법까지 손보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더 큰 파열음이 일 전망이다. 

■ 최저임금 올라도 오르지 않는 임금, 이유는 산입범위 확대 탓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골자는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과 식대, 숙박비, 교통비 등 복리후생적 임금은 최저임금 25%와 7%를 넘는 부분만 최저임금에 포함된다는 내용을 담은 산입범위 확대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 경영에 지대한 어려움을 입고 있다는 경영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정부의 입장은 명확했다. 통상임금성이 강한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산입범위에 포함시켜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겠다는 것이 그것. 다만 그 과정에서 저소득 근로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막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법안대로라면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 효과는 연봉 2400만원을 넘지 않는 근로자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발표됐다. 2400만원 이하 근로자와 같은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는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효과가 발생해, 이들은 최저임금 상승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산입범위 확대가 이뤄질 때는 식비나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 정도만 추가로 산입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확대 후 복리후생과 아무런 상관없는 온갖 수당들까지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경우가 수시로 일어난 탓이다. 이런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이 저임금 근로자들이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피해를 입는 가장 큰 계층은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저임금노동자들이 주를 이뤘다. 자료제공 민주노총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피해를 입는 가장 큰 계층은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저임금노동자들이 주를 이뤘다. 자료제공 민주노총

그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을 너무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산입범위 확대 시행 첫해인 2019년, 민주노총이 2019년 5월 8일부터 2주간,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관련 피해 제보를 접수한 결과 총 68건의 피해 사례를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여금 삭감 및 기본급화(22%)가 가장 많았고 이어 수당 삭감 및 기본급화(20%), 휴게시간 연장 혹은 노동시간 단축(16%)이 뒤를 이었다.

피해 사례 중에는 2019년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10.9% 올랐음에도 사업주가 취업규칙 변경으로 상여금 등을 기본급에 포함해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깎인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설명이었다. 그나마 이는 법에 따른 것이어서 준수한 축에 속한다. 

일부 사업장의 경우,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수시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을 주로 채용하는 영세사업장에서 이같은 사례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악용하는 것으로 당하는 노동자들은 억울해도 생걔에 위협을 느껴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 꼼수 횡행 산입범위 악용에 단호히 대처해야
내년부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액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완전한 형태의 산입범위 확대가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드러난 부작용들이 한층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열심히 일하고도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급여를 받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 또한 예측 가능한 일이다. 전문가들의 우려가 이어지는 이유다. 정치권에서도 현행 산입범위 규정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지난 5월,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의 산정 기준인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최저임금=통상임금’으로 간주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부 기업들이 직원들의 통상임금을 최저임금보다 훨씬 낮게 책정하고 이를 통해 추가근로에 연동된 각종 수당을 적게 지급하는 사태를 막겠다는 의도다.

김의원은 이번 발의에 대해 상임금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라는 2017년 대법원 판결에 이어 이듬해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에서 비롯한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기업들이 각종 수당과 급여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을 줄이기 위해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는 편법을 자행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도 법에 넣고, 통상임금이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될 경우 최저임금을 통상임금으로 보도록 해 노동자들이 육아휴직 급여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법안 발의의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큰 맥락에서 보면 이 모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른 조치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산입범위 확대 이후 가장 크게 고통을 받는 이들이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하청 노동자 같은 사회 최약층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산입범위 확대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입 범위 개악과 최저임금 제도의 왜곡 현실' 토론회 모습. 사진제공 한국노총
산입 범위 개악과 최저임금 제도의 왜곡 현실' 토론회 모습. 사진제공 한국노총

지난 6월 14일 국회도서관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산입 범위 개악과 최저임금 제도의 왜곡 현실'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산입범위 확대 이전만 해도 '최저임금=기본급'이라는 도식이 성립돼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면 최저임금 위반으로 인식됐다"며 "하지만 이제는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사례가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법 개정으로 사용자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노동자의 임금을 제자리에 묶어놓을 수 있게 됐다면서 기본급을 낮게 유지한 채로 온갖 상여금과 수당을 적절히 활용해 최저임금 위반을 회피하는 다양한 꼼수가 등장하는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통상임금에 들어가지 않는 식비 등이 최저임금에 포함됐기 때문에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지는 이런 기현상이 정상적일 수는 없다. 결국 이를 만회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더 긴 시간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전 세계가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는 이 마당에 우리만 반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될 일이란 뜻이다. 결국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행 법과 제도의 정비다. 이번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그 공론의 단초를 제시해주길 기대해본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최저임금제도다.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법으로 강제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지만 이 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존재라고 하는 어느 노동자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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