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3] 명예가 밥 먹여 주나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3] 명예가 밥 먹여 주나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7.18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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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시쳇말로 명예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명예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체면을 중하게 여기는 우리 문화 풍토에서는 더욱 그런 거 같다.

최근에 아산시 자치위원회 모임에 참석했다. 자치위원회 각 분과 위원이 모여 2024년 아산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제안을 협의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아산시 자치위원으로 봉사하게 된 계기는 올 초에 민선 시장이 야심 차게 계획하여 시작한 아산시 자치위원 공모를 통해 선발되어 기획 조정 분과 위원으로 위촉받았다. 순수 봉사직임에도 불구하고 신청한 사람들이 많아서 경쟁이 치열했다는 후문을 듣고 놀랐다. 

봉사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려고 했거나 아니면 네트 워트 형성이나 커리어 쌓기 등 다양한 동기가 있겠지만, 시민을 위한 봉사라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우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뉴질랜드에서의 씁쓸한 경험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살 때 특히 나이가 좀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에 위촉되고 싶어 했다. 

봉사직이지만, 대통령 직속 자문회의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자문위원이라는 직함이 꽤 매력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추천 의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참여 동기에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들은 봉사보다는 그럴듯한 직함을 통해 명예를 얻고자 했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가 된 경우이다.

하지만 ‘명예’란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 또는 ‘어떤 사람의 공로나 권위를 높이 기리어 특별히 수여하는 칭호’라는 사전적 정의대로 얻고 싶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아 주어져야 한다. 

예술과 스포츠계의 ‘명예의 전당’을 봐도 그렇다.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지만, 공로나 성취도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 부여된다. 그러기에 진정한 의미의 명예는 직책이나 직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친구 Y의 경우가 한 예가 될 수 있다. 
Y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정당 선거 운동에 관여하면서 요주의 인물로 찍혀 여러 차례 교장실에 불려 갈 정도로 일찍이 사회 참여에 관심이 많았다. 

언변이 좋고 통솔력도 뛰어나서 미국으로 이민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분명히 정치판에서 한몫했을 것이다. 그것도 국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명예로운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는 그의 행동거지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Y는 현재 미국 뉴욕 배재학당 총동창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동창회 회장이라는 직함이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영향력이 막강하고 이권이 걸려있는 한인회 회장과는 차이가 크다. 

학교 동창회 조직은 이권과는 상관 없이 순수한 봉사와 친목 조직이기 때문에 동창회 회장 자리에 이름만 걸어놓고 유명무실하게 지내다가 임기만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친구는 자신의 비즈니스를 제쳐놓은 채 ‘24/7/365’라는 유례없는 슬로건을 내걸고 동문을 위한 활동에 2년째 올인하며 헌신하고 있다. 

매일 같이 각 지역 동문의 사소한 동호회 모임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동문의 경조사에 참석하고, 연로하신 선배들을 병문안하면서 필요에 따라 여러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동창을 성원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하거나 장학금을 마련하여 선후배 자녀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뉴욕에 국한하지 않고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동문들의 주소록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휴대전화를 24시간 항상 켜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동창회 일로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24/7/365’라는 슬로건 아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동문을 위해 자비를 써가면서 물심양면으로 열의를 다해 희생하고 있는 그의 발걸음은 뉴욕과 미국을 넘어 귀감이 되고, 동문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연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연임을 권유하는 선후배들의 움직임이 있지만, 그는 명예로운 퇴진을 준비하고 있다.

친구 Y는 동창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헌신적인 희생과 공헌으로 동문들로부터 인정받아 동창회장에 걸맞은 진정한 명예를 얻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문장이지만, 명예를 언급한 부분도 의미가 있다. 요즘 세상에 큰 가치를 두는 돈을 잃는 것보다도 명예를 잃는 것이 더 많이 잃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가끔 뉴스에서 한때 부와 권세를 누리며 명예까지 얻은 사람이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명예를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신입 생도들을 맞이하는 입교식 중에 명예 의식을 행하면서 신입 생도들은 명예 선서를 하는데, 그 선서에는 ‘명예에 관한 나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즉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자리나 직함을 통한 명예만 누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될 것이다. 

제사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듯이 명예와 권위는 내세우면서 정작 그 직에 맞는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 작금의 일부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근데 그들에겐 명예가 밥도 먹여 주고 있으니 문제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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