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끊이지 않는 원청 갑질, 보다 강력한 도움 필요해
[초점] 끊이지 않는 원청 갑질, 보다 강력한 도움 필요해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7.20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청 노동자에겐 해당 없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영향
원청 사업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상 사업주로 규정해야
하청노동자 10명 중 6명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경험하거나 목격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하청노동자 10명 중 6명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경험하거나 목격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지난 2019년 도입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갑들의 갑질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 도입으로 기대했던 개선 효과가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법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현 주소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 해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덕분에 권리구제라도 노려볼 수 있는 일반 근로자와는 달리 하청노동자의 경우 실제적으로 갑질을 시행하는 원청 관계자를 대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급 계약으로 인한 원청, 하청 관계에 해당되는 경우는 애초에 직장 괴롭힘 행위자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같은 근무 장소에서 일하는 명백한 직장 동료지만 원,하청 노동자는 동일한 ‘직장 내’가 아니라 ‘직장 간’ 괴롭힘으로 간주되기에 원청 소속 노동자는 하청 소솔 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 상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덕분에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여전히 갑질의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현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말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결과는 도출되지 않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그러는 사이 하청노동자들의 설움은 현재진행형이 되어가고 있다.

■ 하청노동자 보호 법안 다수 발의에도 진척 상황은 더디기만 해

법 사각지대에 놓인 하청노동자들은 신고조차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사진은 토론회 모습. 사진제공 김영진 의원실
법 사각지대에 놓인 하청노동자들은 신고조차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사진은 토론회 모습. 사진제공 김영진 의원실

지난 7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갑질금지법 시행 4년, 사각지대 해소방안 토론회’ 역시 이런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 직장갑질 119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 현장에서는 갑질이 다수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횡행하는 직장 갑질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직장갑질119가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받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신고 현황을 분석 결과, 해당 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부터 지난달까지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2만 8731건에 달하지만 그 중 권리구제가 이뤄진 사건은 4168건, 전체의 14.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조차도 개선지도(3254건. 11.3%)이 대부분이었으며 실질적으로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할 수 있는 검찰 송치(513건. 1.7%), 과태료 부과( 401건. 1.3%) 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다.

그나마 이는 회사 측의 대처로 호소라도 한 케이스지만 많은 경우, 일이 불거져 잡음이 날 것을 우려한 회사 측이 무성의한 대처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해자를 응징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경우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동일한 주제로 직장갑질 119가 지난 6월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괴롭힘 신고 이후 실망스러운 반응을 접했다는 응답이 많았던 것. 괴롭힘 이후 회사가 법이 명시한 조사나 조치 의무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64.3%에 달했다는 것이 증거다. 또한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응답자의 28.6%가 오히려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런대도 정부의 대처가 미흡한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이 적극적인 대응을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 신고자들의 주장이다. 사용자들이 신고자들에게 보복갑질을 해도 결국 생계가 달린 신고자들이 더 이상의 대처를 못하고 갑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런 경향은 약자일수록 더 심하다. 그를 대표하는 집단이 바로 하청노동자들이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하청노동자들은 원청 관계자들의 갑질을 제지할 그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법이 있어도 제대로 방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법조차 없으니 그 모든 갑질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는 것. 실제로 토론회에선 이에 관한 내용이 100여건 이상 보고되기도 했다. 성추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별다른 구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속만 끓여야 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사례가 103건 보고된 것이다. 유형별로 보면 하청노동자에 대한 괴롭힘(55.6%)을 이어 원청의 인사개입(23.5%), 하청업체 변경(13.1%)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법이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 탓이다. 원청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하청노동자는 하청업체 사용자에게만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원청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결과 하청노동자는 원청 직원이나 사용자 갑질에 참거나 모른 척하게 된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9~15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하청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응답자 중 60.3%는 참거나 모른 척한다고 답했을 정도다. 말해봐야 해결책이 없으니 스스로 울분을 삼키고 마는 것이다. 

■ 파견법, 근로기준법 노조법 개정으로 방어책 마련해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된 쿠팡CLS 부당노동행위 고발 회견 모습. 사진제공 전국택배노동조합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된 쿠팡CLS 부당노동행위 고발 회견 모습. 사진제공 전국택배노동조합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처우라도 받아야 가정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원청의 갑질을 보고도 묵인하는 것일 테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왔다. 단순히 개개인이나 집단의 일탈 정도로 갑질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특별히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겠지만 그에 앞서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한 사전 예방 역시 필수적이다. 괴롭힘 방지법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법과 제도가 낮은 곳에서부터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을 갑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의 동력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개개인간의 문제로 치부하기 쉬운 원청의 갑질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떠나 조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조직의 갑질, 즉 원청이 하청 전체에 대해 행하는 갑질 역시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

냉정하게 보면 개인의 갑질보다 원청이 하청에 행하는 갑질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도 수시로 불거지고 있음이 그를 잘 보여준다. 지난 6월 22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쿠팡CLS 본사 앞에서 쿠팡의 상시해고제도인 클렌징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배경이 바로 원청의 갑질을 규탄하기 위함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택배노조는 “하청 회사에서 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원청이 하청회사를 없애거나, 하청회사로부터 구역 등 일자리를 빼앗아 조합원들을 해고하는 것은 합법적 쟁의권 등 노동자들의 대항수단을 박탈해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전형적인 ‘원청 갑질’”이라며 “노조법 2, 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돼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기에 원청 갑질은 우리 사회의 노동권 시계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택배노조의 주장은 간명했다. 쿠팡이 집단해고 강행을 중단하고 직접 교섭에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원청의 갑질을 묵인하지 않고 정당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지만 과정이 험난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쿠팡 측은 자신들의 행위에 위법성이 없음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비단 쿠팡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업종에서도 형태만 다를 뿐 원청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호황세를 누리고 있는 조선업계에서도 하도급업체에 대한 불공정 논란, 임금 차별 등 원청의 갑질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원청이 행하는 갑질을 목격할 수 있다.

개인의 갑질이건 조직의 갑질이건 상관없이 갑질은 근절되어야 할 악습이다. 갑질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는 것이 정상적일 수 없다.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져야 함은 그래서 당연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원청 직원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대변되는 원청 갑질을 뿌리뽑기 위한 다양한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조금씩 형태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하청노동자에 대한 괴롭힘을 원청이 책임져야 하는 구조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개정안들의 발의가 반갑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발의를 넘어 조속한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권력의 힘이 개인과 조직을 우롱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직업상담협회 신의수 이사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하청 노동자들처럼 괴롭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동약자 보호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이를 위해 파견법과 근로기준법, 노조법 등의 개정으로 방어책 마련에 매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