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추락한 교권에 꺼져가는 등불
[기자수첩] 추락한 교권에 꺼져가는 등불
  • 이윤희 기자
  • 승인 2023.07.20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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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지 못하고 숨진 교사를 추모하며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쌤, 저 담배도 피고 술도 마셔요. 저 6학년 형들이랑 싸워도 이겨요. 쌤은 어른이면서 이런 것도 몰라요? 멍청이에요? 쌤도 저랑 싸우면 제가 이길껄요. 한 번 맞아볼래요?"

필자가 사범대 재학 당시, 대학교 인근의 모 초등학교로 교육 봉사를 나가던 시절 참여 학생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사범대학교 재학생은 교원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60시간 이상의 교육봉사를 해야하는데 필자는 초등학교에서 학업 수준이 다소 뒤처지는 학생의 방과 후 교육을 돕는 역할을 했다. 

당시 만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어린 아이가 대학 3학년을 보내고 있던 필자에게 서슴치 않고 내던진 말들은 어린아이의 그것이라 하기에는 매우 폭력적이었다. 놀랍게도 학생의 나이는 5학년, 만 10세밖에 되지 않는 아이었다. 다 말할 수는 없으나 차마 글로 적어내기 민망한 이야기들까지, 미성숙한 어린 아이의 잘 모르는 행동이라 터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폭력성의 수위는 약하지 않았다.  

물론 10년이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대화 내용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아이의 언사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는 일화 중 하나다. (아이의 언어를 다소 순화해서 적었다면 모를까 과장한 내용은 아님을 밝힌다.)

하지만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커녕 학생 신분에 불과했던 당시에는 "그런 못된 말은  쓰면 안돼~"라는 달래기로 아이의 말을 웃어 넘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비슷한 일은 이듬해 나간 교육실습에서도 이어졌다. 모 중학교에 '교생'으로 파견돼 한 달여간 아이들과 동거동락하는 동안 따뜻하고 살가운 학생들이 있는 반면 어디에나 그 짓꿎음이라는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아이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때마다 웃음으로 상황을 외면하면서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난 아직 정식 선생이 아니니까"라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몇몇의 사건들을 보며 나는 당시의 나를 회고해보았다. 

과연 그 당시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때 교육 봉사에 나간 학생이 아니었다면, 교생이 아닌 정식 교사였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훈계와 교육을 하고 나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최근 모 초등학교에서 여교사가 담당 학생에게 무려 교실에서 폭력을 받아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눈두덩이를 시퍼렇게 물들인 멍보다 해당 교사의 마음에 번진 멍은 분명 더 짙을 것이다. 

그에 앞서서는 초등학생 제자에게 성적 희롱이나 욕설 등 폭언을 입은 상황 속에서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는 소식도 메스컴을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기어코 서울 모처의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자신이 담당하던 학급의 교실 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충격적인 소식이 보도됐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학급운영 중 빚어진 갈등과 학부모의 '갑질'이 원인이 됐다는 추측이 들끓고 있다. 

올해로 2년차가 된 해당 교사는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20대 초반의 어린 청년이었을 뿐이었다. 

교사를 상대로한 경악무도한 기사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교직계의 분노는 치솟고 있다. 속 앓이로 끝내야했던 교권 침해에 대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육공무원은 88명이다. 교사 10만명당으로 따지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6.1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10년 전인 2004년부터 2007년 사이 3.1명이던 것에 비하면 약 2배 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을 당시에도 응답자의 92.9%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나, 교권 침해는 적절한 공교육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낳는다.

옛말에 스승은 제자의 등불이라 했다. 차디찬 바닥까지 추락한 교권에 등불이 꺼진다면 열정과 소명의식을 담은 교육을 받아야했던 학생들이 등불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을 지우기 어렵다. '교사'라는 기둥이 바로 잡히지 않은 교실은 무정부 상태와 다를 바 없다.

교권에 대한 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교사' 역시 하나의 직업이고 노동자라는 사실 또한 잊어선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 노동자에 대한 횡포와 갑질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교사에는 '교직'에 몸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향한 무리한 요구를 비롯한 갑질을 당연시하고 이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상황을 외면하곤 한다. 교권 침해 이전에 한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으로써의 권리부터 침해받고 있는 판국이다. 

한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모 교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고인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비통함을 금할 수 없으며 전국의 모든 교육자와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간절히 빈다”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교육개혁의 시작은 선생님이 존중받고 교권이 확립될 때 가능하다”라며 “지금과 같은 무기력한 교실에서 깨어있는 수업은 공염불일 뿐이며, 왜곡된 인권의식과 과도한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교실 붕괴와 교권 추락 현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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