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4] 누가 부부 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 했나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4] 누가 부부 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 했나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7.25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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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벌써 2주가 되어 간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부부 싸움을 하신 후 서로 한마디 말도 섞지 않고 있다. 식탁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식사하셔도 묵언 수행 중이시다. 우리 부부가 외출한 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되어 부부 싸움으로 커졌다고 한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신 후 장모님은 의외로 무덤덤하신 반면에 장인어른은 청심환을 드실 정도로 분을 참지 못하셨다. 

두 분 모두 90이 넘으셨고 함께 산 세월도 60년을 넘겼는데 아직도 다툼 거리가 남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면 소위 ‘척 보면 압니다’라고 할 정도로 서로를 잘 알게 되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말다툼의 발단은 장모님의 전화 통화 때문이었다. 집 전화를 없애고 장모님께 휴대전화를 장만해 드렸더니 처음에는 마뜩잖아 여기시더니 이제는 끼고 다니시며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대는 최애 장난감이 되었다. 주로 친인척들에게 전화하시는데, 거의 매일 빼먹지 않고 전화하는 상대는 아들과 부산에 사는 친동생과 이종 조카다. 

아들은 이혼하고 혼자 세종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60이 넘은 나이인데도 장모님 보시기엔 여전히 철부지 아들이고 혼자 생활하는 게 안쓰럽기만 하신 모양이다. 매일 퇴근 무렵에 전화하셔서 건네는 말은 거의 동일하다. 

“일 끝냈나?” “밥은 먹고 들어가나?” “집에 먹을 건 있나?” 그러다 주말이 가까워져 오면 한 마디 덧붙이신다. “내일 일하나?” “집에 올래?”

부산에 사는 여동생과 이종 조카에게 전화 걸고 건네는 말도 내가 외울 정도로 똑같다. 여든이 넘은 동생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데 기억이 오락가락하여  걸 때마다 “내가 누구고?” 하며 확인하신다. 

동생이 반응이 없으면 “나, 온양 사는 언니, 기억나나?” 그렇게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지만, 그래도 매일 안부를 묻는다. 동생 기억에서 끝까지 남고 싶은 욕심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동생 기억을 붙들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이종 조카도 매일 통화하던 대상이었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웠는데, 몇 년 전에 암에 걸려 고생하다 결국 가족 곁을 떠났다. 어렸을 때부터 쭉 지켜보아서 사정을 잘 아시는 장모님은 딱한 조카의 처지가 애처로워 생전에 날마다 전화로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으셨다.

매일 같은 대상에게 똑같은 안부를 묻는 장모님의 전화 통화를 그동안 가족 모두 묵인하며 지냈는데, 그날은 장인어른이 장모님의 전화 통화에 대해 한마디하며  핀잔을 주신 게 부부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당신이 지금까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부부 싸움에서는 금기에 속하는 과거 문제까지 들추어내며 큰 다툼으로 번졌다. 장모님 입장에서는 구십 평생 남편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면서 눌려 지냈던 세월의 응어리가 터진 셈이다. 

한편 장인어른 입장에서는 식후 영양제 한 알을 빠짐없이 식탁에 놓아주는 등 젊었을 때는 절대 하지 않던 일까지 해가며 챙겨주고 아내 건강에 대해 염려하며 마음 쓰고 있는데, 몰라주는 게 답답하고 억울하신 모양이다. 

더 나아가  그동안 순종적이고 몸을 사리던 아내가 큰 소리로 대드는 게 어이없고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신다.

군인 출신으로 사업을 하셨던 장인어른은 밖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바로 받지 않으면 집에 달려와 전화기를 때려 부술 정도로 젊었을 때는 성미가 불같았다고 하니 지금은 많이 참고 산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한편 사업 핑계로 밖으로만 떠돈 남편을 대신해서 집안일과 자녀 교육을 도맡아 하고 회사가 부도나서 남편이 피신 중일 때 뒤처리하는 등 궂은일을 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잘못된 일에 대해 비난과 핀잔만 들었던 장모님은 서러움과 분함을 가슴 깊숙이 꾹꾹 담고 있었기 때문에 부부 싸움 중에 자연스럽게 과거 문제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것 같다.  

시인 문정희는 ‘남편’이란 시에서 남편은 
“…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고 했다. 

장모님은 가슴에 앙금을 담아두고 이런 시인의 마음으로 평생 남편을 대하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앙금이 쌓이면 터지게 마련이다.  

일전에 재혼 전문 사이트 ‘온리 – 유’와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와 공동으로 재혼 희망 남녀 456명을 대상으로 결혼생활 중 부부 싸움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다. 그중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남성은 69.3%, 여성은 83.8%가 ‘상처가 쌓여 곪아 터진다’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칼로 물을 베면 자국도 없이 금방 합해지듯이 부부 싸움도 화합하기 쉽다고 칼로 물 베기란 표현을 썼다. 예전에는 앙금이 남더라도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고 화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앙금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표출하는 시대이다. 

장모님도 이런 세상 흐름에 맞춰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90이 넘은 나이에 터뜨리신 것이다. 또한 칼로 물을 베면 자국이 남지 않지만 부부 싸움은 마음에 상처가 남기 때문에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와 같다는 표현은 시대착오적인 말이다.

부부가 살면서 다툼이 없을 수는 없고,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부부 싸움이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더 이상적인 것은 “긴 부부 생활은 매일 아침 좋은 커피를 마시는 것과 같다. 나는 거의 매일 마셔왔지만, 여전히 즐긴다.”란 말이 있듯이 오랜 부부 생활을 하면서 다툼보다는 여전히 즐거울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90이 넘으신 두 어르신을 어떻게 화해시켜 드려야 할지 걱정이다. 90년 넘게 쌓인 앙금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고, ‘세월이 약이다’고 미루기엔 시간이 없지 않은가.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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