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중대재해처벌법이 킬러규제? 대통령 한마디에 개정 불씨 솔솔
[화제] 중대재해처벌법이 킬러규제? 대통령 한마디에 개정 불씨 솔솔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7.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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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 경영계 목소리에 힘 실어주는 정부
산재 막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 구축 때까지는 반드시 필요해
법 제정 2년 만에 위기를 겪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앞날을 놓고 여야와 경영계, 노동계가 극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법 제정 2년 만에 위기를 겪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앞날을 놓고 여야와 경영계, 노동계가 극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근로자의 안전을 책임진다며 호기롭게 출발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암초에 봉착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7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 투자 촉진을 이끈다는 이유로 킬러 규제 철폐를 이야기한데 따른 후폭풍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적시한 건 아니지만 대통령의 발언 행간에 깃든 의미를 분석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이미 경영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금세라도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이 가능해질 것이란 달콤한 기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흔들기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직접적 당사자인 노동계는 강력 반발을 통해 법 개정 논의 자체를 무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정부의 행보는 이를 위해 발빠르게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하반기 노동계를 강타할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 국무조정실 '킬러규제 개선 태스크포스 발족으로 개정 논의 본격화
지난 7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산업의 독과점 구조, 정부 보조금 나눠 먹기 등 이권 카르텔의 부당 이득을 예산 제로베이스 검토를 통해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며 킬러 구제 철폐 발언을 한 이후, 경영계 인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단순히 킬러 규제 철폐 때문만은 아니다. 이날 발언이 중대재해처벌법, 대형마트 의무휴업법, 화평법, 화관법 등 그간 경영계가 주장해온 사안에 힘을 싣는 뉘앙스를 띤 때문이다. 정확하게 적시한 것은 아니지만 회의 직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킬러 규제의 정의를 노동 경직성으로 외국 기업의 투자를 막는 현행법이나 일반 국민들이 특정 규제 때문에 사업을 못 할 정도라는 식으로 전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안 그래도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매진하던 경영계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 비 같은 소식이다. 지난 5월 3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난 뒤 불과 한 달 만에 터져나온 대통령의 화답은 정해진 수순인 양 의심될 정도다. 경총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후속조치로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구성·운영하고 전문가 중심의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건의했는데 이번 대통령의 발언 직후 경총의 건의안대로 관련 TF가 만들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나서 불과 하루만인 7월 5일, 국무조정실이 발족한 '킬러규제 개선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에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업무 총괄자인 고용노동부 김태연 중대산업재해감독과 과장이 참석한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님이 분명하다. 이미 대통령의 발언 이전부터 중대재해법 개선 의지를 피력해온 고용부는 올해 신년 업무보고에서 중대재해법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TF를 운영해 6월까지 정부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 뚜렷한 대안을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손대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아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원 사격이 이어지자 지지부진한 중대재해법 개정 논의에 힘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경영계의 논리를 십분 수긍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전시행정에 가깝다고 주장해오고 있다. 그 근거로 시행 첫해이던 지난 2022년, 법 적용 대상인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의 중대재해 사망자는 2021년보다 오히려 8명 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시행된지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사망사고 감소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과도한 처벌규정(1년 이상 징역)으로 인해 기업의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는 등 경영계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어, 법률 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상황인 만큼 이번 대통령의 발언을 반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다만 이에 따른 반발이 적지 않아 직접적인 법 개정보다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 방안부터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대통령의 발언 직후 터져 나온 노동계의 반발에서부터 확인된다. 

■ 중대재해처벌법 효과 재해감소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

민주노총 등 제시민사회단체가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생명안전 후퇴와 노동시간 개악,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사업, 공동행동 출범을 공식화했다. 사진제공 민주노총
민주노총 등 제시민사회단체가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생명안전 후퇴와 노동시간 개악,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사업, 공동행동 출범을 공식화했다. 사진제공 민주노총

경영계가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유로 실효성 약화를 이야기하지만 노동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정부가 강력한 처벌 대신 법 무력화에만 골몰한 탓이라는 것.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처벌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소된 중대재해법 사건은 11건에 그쳤고, 현재까지 1심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3건인데 실형은 1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집행유예와 벌금형이라는 게 주장의 근거다.

법 집행을 더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개정을 이야기하자 노동계가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 발언 직후인 지난 7월 5일, 노동·시민단체 96개가 결성한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정부의 중대재해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대응해 나갈 방침을 밝혔다. 

공동행동은 ▲과로사 조장법 노동시간 개악 저지 ▲노동자 처벌 확대 산안법 개악 저지 ▲기업처벌 완화 중대재해처벌법개악 저지 ▲화물 안전 운임제 연장 확대/ 마트 의무휴업일 개악 저지 ▲중대재해 처벌법 엄정 집행과 책임자 처벌 등 5개의제를 걸고 이날부터 총선을 앞둔 내년 6월까지 활동한 뒤 공동행동을 접겠다는 입장이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로 개정을 논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 이제 법이 도입된지 1년 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 시행 이후 안전에 대한 투자와 안전관리 조직이 확충됐고, 무엇보다 사회전반의 안전인식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성숙되면 자연히 재해감소 효과가 발현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근로자 50인 미만 업체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된다. 더 많은 성과를 충분히 기대할 만한 대목이다. 이 시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시도한다는 것은 전진이 아니라 후퇴다. 

과도한 규제를 바로 잡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게 제대로 된 조사와 검토를 거친 이후에 나온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졸속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근 철근을 빠뜨리고 지었다가 주차장이 무너져 재시공이 결정된 이른바 '순살자이' 아파트에 이어 철근이 콘크리트 밖으로 돌출된 이른바 '통뼈캐슬' 아파트까지 등장해 안전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이 모두가 졸속 전개에 따른 악순환이다.

단순히 아파트 하나 짓는데도 이럴 진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행정에 졸속 전개가 뒤따른다는 것은 더 큰 비극을 낳는 행위라는 것을 정부 당국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에 필요한 것은 노사와 여야 모드를 설득할 수 있는 충실한 개혁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그에 따른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대처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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