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0] X이 더럽다고 피할 게 아니라 치워야 한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0] X이 더럽다고 피할 게 아니라 치워야 한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9.05 07: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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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오래전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신당동 골목길에 ‘꽁치’로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름 대신에 삐쩍 마른 체형이라 ‘꽁치’라고 불렀다. 

중년을 넘긴 사람들은 ‘맨발의 청춘’이란 영화에서 신성일과 함께 출연했던 트위스트 김을 기억할 것이다. 도플갱어처럼 그와 똑같은 체형과 얼굴인데 키만 조금 크다고 보면 된다. 

나이는 30대로 기억하는데 낮에도 어슬렁거린 걸 보면 요즘 말로 백수였던 거 같다. 평소에는 어른들께 깍듯하게 인사도 하고 공손한데 술만 먹으면 속된 말로 ‘개’가 된다. 

우리 집은 골목이 세 군데로 갈라지는 중간에 있었는데, 그의 집은 가운데 골목길로 서너 집을 건너 100미터쯤 가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하면 비틀거리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뭐가 그리 속상하고 분한지 화풀이라도 하듯이 욕설이 섞인 화를 쏟아내며 집으로 향했다. 동네 어른들도 술만 먹으면 되풀이되는 그의 추태에 눈길을 돌릴 뿐이다. 말을 섞어 보았자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 세 살던 사람이었는데, 한쪽 발을 심하게 저는 장애가 있었다. 느지막하게 아들을 나아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하나 두었고, 중앙 시장에서 개장사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처럼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때에 장애가 있는 몸으로 시장 바닥에서 그것도 험한 개장사를 하며 버티려니 얼마나 악다구니를 쓰고 살았는지 그의 굵게 패인 주름과 늘 핏줄이 서 있던 부릅뜬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도 평소에는 고분고분하고 젊잖았지만, 술만 먹으면 돌변하여 개망나니가 되었다. 남편의 성깔을 아는 아내는 제발 조용히 하라고 ‘쉬’ 소리만 연신 할 뿐이지 딱히 자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는 주먹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어머니 말씀은 잘 들었다. 나이 많은 주인이라 어려웠을 수도 있다.

삐쩍 마른 꽁치 형이나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가 있는 셋방 아저씨가 온 동네에 피해를 주는 주사(酒邪)를 부릴 때 누군가 나서서 말리면 좋겠는데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는지 궁금했다. 누가 나서서 맞붙어도 승산이 있는 상대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X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을 수긍하는 나이가 되면서  납득이 되기도 했지만,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X을 치워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많은 사람 입에서 회자하고 오랜 기간 베스트 셀러에 올라 있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란 책을 읽었다. 

글을 통해 유추해 보면 저자는 나이가 나와 연배가 비슷할 거 같고, 외국에서 유학하고 근무하여 외국물(?)도 먹을 만큼 먹은 국제통이고, 성공한 사업가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인용한 책들을 보면 독서량도 상당한 인텔리로 추정되는데, 책 중에 ‘개새끼들에게는 욕을 하자’라는 제목의 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그는 “겉보기에도 전혀 욕이라고는 입에 담지도 않을 듯한 인상”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면서도 누군가 “행동이 개떡 같다면” 상대가 누구이든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절대 평범한 욕이 아닌 ‘쌍욕’을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글로 옮길 수 없는 육두문자가 섞인 욕을 사용한 실례를 여럿 들어주었다.

그렇게 욕을 상스럽고 더럽게 하면, ‘쌍놈’ 내지는 ‘못 배운 놈’, ‘인격 파탄자’, ‘불량배’ 등으로 간주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체면 손상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고 했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중도덕을 모르는 자들에게(그는 이런 자들에게 18이 들어간 표현을 썼다) 너무 관대한 것이 우리 사회이고, 모르는 사람의 잘못을 면전에서 지적하는 것을 꺼리다 보니 결국 계속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그 결과 사회는 개판이 되어 왔다고 믿는다고 하면서 ‘욕하기 운동 국민본부’ 같은 것이 생겨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나는 이 저자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중도덕을 모르는 자들에게 따끔하게 깨우침을 줘야 한다는 지적은 적극 지지하지만, ‘쌍욕’으로 대해야 한다는 방법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 되고 점점 더 각박해지면서 남의 일에 관여하거나 참견하지 않으려는 행위가 상수(常數)가 되고 있다. 그래서 여자가 길에서 폭행당해도 안 본 척하거나, X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로 비겁함을 포장하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피해 가려는 경향이 만연하고 있다. 
 
나는 용감한 사람들 부류에 낄만한 사람은 못되지만, 젊었을 때는 길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달려들어 말리곤 했다. 학창 시절에 태권도를 배운 것이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오지랖은 거의 40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희를 앞둔 이 나이에도 ‘묻지마 폭행’ 소식을 들을 때면 태권도 앞 발차기에다 뒤돌려차기로 혼쭐을 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렇다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세이노처럼 ‘쌍욕’을 언죽번죽 해댈 수도 없으니, X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비겁한 변명에 나도 모르게 숨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X을 더럽다고 눈 돌리고 피하기만 하고 치우지 않는다면 점점 악취는 더 심해지고 결국 언젠가는 자신에게 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혼자 어려우면 합심해서라도 X은 치워야 하는 게 맞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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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화 2023-09-05 12:09:04
멋지십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고 사회가 더 나은 사람들로 가득찰 그날까지 노력하는 생각들과 올바른 가치관을 멋지게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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