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1] 궁(窮)하면 반드시 통(通)한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1] 궁(窮)하면 반드시 통(通)한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9.12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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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뉴질랜드 방문길에 올랐다. 지난 5월에는 둘째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 아내만  가서 한 달 지내고 왔는데, 이번에는 함께 뉴질랜드에 가게 되었다.

아내와 내가 국적을 회복하고 다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지만, 동시에 뉴질랜드 시민권도 갖고 있기에 뉴질랜드행을 여행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고 그렇다고 귀향도 아니니 방문이란 표현이 무난할 듯하다.

뉴질랜드에는 세 아들이 살고 있어서 한번 가면 세 아들과 손자녀 여섯을 모두 보고 올 수 있으니 뉴질랜드 방문은 비용 대비 가성비가 좋다.

지난번 아내의 미국 여행은 둘째 아들이 미국으로 건너간 후 낳은 아들을 직접 보지 못했고, 이사 간 집도 볼 겸 겸사겸사 말 그대로 마음 편한 여행이었지만, 이번 뉴질랜드 방문은 구원 투수 역할이다. 

그래도 막내아들이 둘째를 낳았을 때 간 이후로 코로나 기간을 거쳐 지금까지 가질 못했고, 그사이 모두 집을 옮기고 손자녀들도 부쩍 커버려서 마치 처음 가는 듯이 흥분되고 설렌다.

계획에 없던 뉴질랜드행의 발단은 에어 뉴질랜드 항공사가 9월 4일까지 한국과 뉴질랜드 왕복 항공권을 특가로 판매한다는 광고를 접하면서 시작되었다. 평상시 항공료의 거의 반값 수준이라 한 사람 비용으로 둘이 갈 수 있어 솔깃했다. 

거의 4년 동안 가지 못했으니,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뉴질랜드행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남겨지게 되는 장인 장모님 때문에 아무래도 우리 부부가 함께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혼자라도 다녀오라는 말에 아내는 지난번 미국도 혼자 다녀왔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어 둘 다 포기하려 했는데, 큰아들네에 변수가 발생하여 한 사람이라도 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큰 며느리가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언젠가 우리가 뉴질랜드로 돌아가면 노후에 용돈벌이도 하면서 무위고(無爲苦)를 겪지 않도록 시내에 조그만 규모의 스시 가게를 인수했었다. 

아내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 스시 가게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큰 며늘아기가 워낙 음식 솜씨가 좋기 때문에 함께 하면 좋을 거 같아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함께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아르바이트 직원을 하나 두고 혼자 스시 가게를 꾸려나가야만 했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구색 갖춰 다양한 종류의 스시를 만들기 위해 스시 밥도 만들고 여러 종류의 재료 손질도 해야 하고, 메뉴에 있는 양념 닭튀김을 위해 닭도 튀기고 양념장도 만들고, 그리고 일본식 비빔밥인 돈부리 등등 혼자 준비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을 그동안 몇 달간 혼자 애면글면하며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손가락을 조금 베인 것 같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감염이 되어 림프샘을 타고 겨드랑이까지 번지는 바람에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큰아들의 수술 일정이 잡혀 있어 수술 후 거의 2주 동안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게 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큰아들 내외는 처음에는 우리에게 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면 고생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우리가 물어볼 때마다 괜찮다는 말만 했다. 

하지만 큰며느리가 SNS에 손가락을 다쳤다고 붕대로 감은 손을 올린 사진을 보고 추궁한 끝에 자초지종이 들어나게 되자 그제서야 도움이 필요하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경비를 보내드릴테니 우리 부부가 꼭 와달라고 간청했다. 

이곳 사정상 우리 둘 다 가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여러모로 좀 더 도움이 될 아내가 가기로 하고 비행기 예약까지 마쳤다. 

아내의 출발 예정일 며칠을 남기고 나는 몇 주 전 임플란트를 위해 뼈 이식한 곳이 잘 아물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치과에 갔다. 뼈 이식한 곳은 잘 아물고 있는데 다른 치아를 점검해 보니 잇몸 파인 곳이 열 군데가 넘어 때워야 하는 데 목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기차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뜩 뉴질랜드에 가서 치과의사인 아들 찬스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가고 싶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쌍둥이 손자들이 9월 말에 있는 생일에 할아버지와 낚시 가고 싶다고 꼭 오시면 좋겠다고 보내온 카톡도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장인 장모님을 모셔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한 결정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이미 미국에 있는 처제와 처형에게 우리가 없는 동안 한국에 나와 있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처제도 수술을 앞두고 있고 처형 부부는 코로나 감염으로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면서 미안해하는 답변을 들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골똘히 해결 방안을 넓혀보니 옵션에서 제외했던 처남이 떠올랐다. 세종에 살고 있고 배달일을 하느라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외했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서너 번 집에 들러 함께 저녁 먹고, 쉬는 날엔 아버님 모시고 목욕이나 병원에 가는 일은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어보니 망설임 없이 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 집에 머물면서 천안으로 출퇴근하면 된다고 했다. 처남도 출근길이 가까워지고 부모님도 밤새 아들이 곁에 있으면 든든하니 모두에게 상생이 되는 해결책이었다. 

집에 돌아와 조심스럽게 장인 장모님께 의견을 여쭤보니 장인어른은 내가 처음 뉴질랜드 방문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처남이 와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계셨다고 하고, 장모님도 아들과 함께 있는 게 좋은지 선뜻 같이 가라고 허락해 주셨다.

부랴부랴 뉴질랜드 항공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아내와 같은 일정을 알아보니 촉박하게 예약하는 거라 좀 오른 가격이었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그렇게 나의 뉴질랜드행은 3일만에 이루어졌다.

주역에서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라고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고 한 말이 맞았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하더니만 정말 궁하고 간절하니 통했다. 삶이 이래서 살 만하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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