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9] 모든 삶은 소중하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9] 모든 삶은 소중하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1.07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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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한 달 보름 남짓 뉴질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와 보니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하긴 1년 6개월도 아니고 두 달도 아닌 기간 동안 달라진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곳보다 역동적이고 매일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절대 짧지 않은 기간이라서 변화가 없는 게 의아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 길가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성미 급한 나뭇잎들은 벌써 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고, 아내 친정 쪽으로 궂긴 소식이 두 건이나 있었으니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매일 다니는 호텔 온천탕 카운터 아가씨는 여전히 어제 본 손님처럼 형식적인 팬암 미소(Pan-American smile)를 지으며 맞이하고, 입구 한 쪽에 자리 잡고 구두를 닦아주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오갈 때마다 인사하는 것도 여전하다.

아파트 가는 골목길에 위치한, 오래된 미장원에는 여전히 정맥, 동맥, 붕대를 뜻한다는 청, 홍, 백색의 낡은 원통이 돌면서 오늘도 운영 중임을 알리고 있고, 늘 그랬듯이 헤어 캡을 뒤집어쓴 동네 할머니들로 붐비고 있다.

미장원 옆 구멍가게에는 허리가 한쪽으로 심하게 휘어 항상 삐딱하게 걸을 수밖에 없는 아내와 다리를 저는 남편이 여전히 몸을 바삐 놀리며 장사하고 있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끼리 부부가 되어 남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장사하면서 자립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가게 옆을 지날 때마다 의식적으로 눈길을 주는 곳이다.

우리 집 아파트로 가는 길 중간에 오래된 고물상이 있어서 폐지를 잔뜩 주운 손수레를 끄는 할아버지가 오늘도 가쁜 숨을 쉬어가며 고물상으로 향하는 모습도 여전하다. 리어카 가득 폐지를 담고 운이 좋은 날에는 고물도 위에 얹어서 뒤에서 보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쌓아 올린 폐지가 위태로운 모양으로 실려 가는 리어카만 보인다. 

어림잡아도 70 중반을 넘긴 모습의 조그만 체구의 할아버지가 거의 서너 배나 되는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끄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두툼한 안경 속 눈도 불편한 듯하여 차를 몰고 가다 마주칠 때마다 더 눈길이 간다.  

간혹 걸어갈 때 마주치게 되면 고물상까지 밀어준 인연으로 할아버지의 인생을 추측해 보는 오지랖을 부려본 적도 있다.

장애인 부부나 폐지 줍는 노인의 삶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안쓰럽게 생각하기 쉽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않고 섣불리 삶이 불행하리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래전에 깨달았기 때문에 삶을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

오래전 지방에 살 때였다. 같은 교회 다니면서 잘 알고 지내던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배움이 짧아서 회사에 취직하지 못하고 새벽 우유 배달을 하고 낮에는 막노동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늘 삶이 버겁게 보였다. 

함께 우유 배달을 하는 아내는 평상시에는 잘 지냈지만, 종종 우울증 증상이 있어 부부 싸움을 하고, ‘언니’ 하며 따르던 우리 집사람에게 수시로 전화하여 하소연을 해댔는데, 대부분 횡설수설하기 일쑤였다.

열심히 살려는 남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것 같은 아내를 둔 남편이 딱하기도 하고 자녀를 부양하는 데 있어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듯하여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더 나아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편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늘 밝았다. 자식들도 염려와는 달리 어긋나지 않고 훌륭하게 자랐다. 

자식들이 철이 들면서 넉넉지는 않아도 키워 주고 먹여주느라 열심히 살아준 아버지에 대해 감사함과 존경심을 보이는 걸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으로 미루어 짐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번듯한 직장도 없이 어렵게 자식들을 키우며 가정을 꾸려 나가는 모습이 무능하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내와 자녀들이 믿고 의지하며 매달리는 한 가정의 남편이고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정받아 마땅했다.

 또한 자기 능력에 맞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삶의 궤적은 결코 폄하되거나 무시돼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인생의 결과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과정일 것이다. 비록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삶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았다면 그 인생은 소중하고 가치 있다. 인생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더 의미 있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의 재방송 편을 본 적이 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있는 80대 남편의 사연이었다.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낙상으로 인한 수술 후 거동이 어려운 아내를 20년 넘게 먹이고 씻기고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휠체어에 태워 산책시키고 있었다. 

남편은 이제 본인도 나이가 있어 휠체어를 밀고 다니기 힘들지만, 그래도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하면서 아내가 살아서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는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건강하게 부부가 해로하는 기준을 갖다 대며 이 부부의 삶이 불행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이 부부는 나름대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삶의 행복과 불행을 구별 지을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는 없다.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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