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50] 만남과 헤어짐에 관하여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50] 만남과 헤어짐에 관하여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1.14 0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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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봄은 만남의 계절이다. 
씨앗은 흙과 만나고, 꽃은 연인의 마음과 만난다. 얼었던 강물은 녹아 바다와 만나고, 겨우내 목이 꺾이고 숨을 죽인 채 움츠려 있던 연꽃도 기지개를 켜며 새 숨을 얻는다. 헐벗은 나뭇가지에서는 새싹이 돋으며 봄바람과 만난다.

자연만이 한결 훈훈해진 봄바람 속에 만남을 갖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허파에 따뜻한 훈기가 들면서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게 된다. 

왠지 훌쩍 떠난 옛사랑이 어느 날 문뜩 전화를 걸어올 것 같은 헛된 상상을 하게 만드는 계절이 봄이다. 봄이란 계절이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을은 헤어짐과 어울리는 계절이다. 그래서 시인 박목월도 우리가 잘 아는 ‘이별의 노래’라는 시 속에서 “...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고 읊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은 손잡아 준 나뭇가지와 작별을 고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의 헤어짐도 찬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에 해야 낭만적이고 어울린다. 그래서 영화 속 이별은 가을철에 이루어지는 장면이 많다.

아름다운 꽃들도 봄에 만나 늦어도 가을이면 헤어지게 되듯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반드시 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운명이다. (生者必滅) 

아무리 꽃이 예뻐도 언젠가는 시들어 가는 모습을 봐야만 하고, 한 가족처럼 여기며 오래도록 곁에 있어 줄 거 같은 반려동물과도 언젠가는 이별을 맛보아야만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게 되어 있다.

헤어짐 중에 가장 슬픈 이별은 죽음을 통한 이별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가슴 아프더라도 하늘 아래 어느 곳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사별(死別)은 살아생전에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로 가슴이  에이고 더 애틋하다.

올해 부산에 살고 있던 처형과 처남이 세상을 떠났다. 처형은 70대 중반이고 처남은 60대 초반이었으니 요즘 평균 수명으로 따져도 헤어지기 이른 나이였다.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넘겨 살고 돌아온 한국에서 따뜻하게 맞아주고 정을 나눠준 아내의 이종사촌들이었다. 

몇 년 전에 함께 여행을 가는 바람에 더 가까워졌고 종종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물으며 다음 여행을 기약했었는데 이젠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고, 생전에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그만큼 사별은 일반적인 헤어짐보다 아픔과 그리움의 농도가 짙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별은 오래전 접했던 지인 남편의 자살이었다. 나와는 몇 번 만남이 있었지만, 고인과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었고 그 집 아이 엄마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과 하소연을 집사람과 자주 왕래하며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었다.

그 부부는 남매를 두었는데 늦게 본 아들이 지능이 3~4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지적 장애가 있어서 말도 못 하고 이상한 고함만 질러댔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통제가 되었는데 어른이 되어 체격이 부모들보다 더 커지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니까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먹기는 잘 하지만 용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니 매일 같이 이불과 옷을 갈아야 하고, 누군가는 집에서 아이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부부가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남편이 아내와 큰딸의 장래를 위해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렸다.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방을 밀봉한 후 가스를 틀어 동반 자살을 한 것이다. 

궂긴 소식을 접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문상하러 갔을 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있던 아이 엄마와 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 주변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자살한 경우가 처음이었기에 충격이 컸었다.

그 집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오죽하면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했을까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었나 하는 의구심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런 극단적인 죽음을 통한 이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린 살면서 많은 이별을 경험하고 앞으로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별의 진정한 슬픔은 헤어짐 그 자체보다도 이별 후 잊히게 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정희 시인이 ‘이별 이후’라는 시에서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을 떠 넣는 일이다/ 옛날옛날에/ 그 사람 되어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후략)” 라고 이별 후 잊게 되는 것이 슬프다고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의 모든 인연은 언젠가 헤어지거나 죽음을 통해 이별을 겪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옛날옛날에 그 사람’으로 기억되게 될 것이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최영미 시인이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라고 지는 꽃에 비유하여 떠난 사람을 잊는 것이 쉽지 않다고 표현했듯이, 한참 기억 속에 남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이것도 욕심이지 싶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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