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물취이모(勿取以貌)_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전대길 CEO칼럼] 물취이모(勿取以貌)_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1.22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면접시험에서 허름한 옷차림에 얼굴이 말처럼 기다란 응시자에게 “당신은 지금 마치 넋 나간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얼굴이 무척 길구먼. 혹시 ‘머저리와 바보’가 무엇이 다른지 알겠는가?”라고 면접관이 물었다. 

이에 응시자는 얼굴을 붉히거나 화(火)를 내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예! 결례되는 질문을 하는 쪽이 머저리입니다. 그리고 결례되는 질문에 대답하는 쪽은 바보입니다”라고. 응시자의 명답 때문인지 응시자는 면접시험에 합격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배재학당에 입학 때 미국인 선교사 앞에서 구술시험을 보았다.

선교사 : 평양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안창호 : 800리쯤 됩니다.
선교사 : 그런데 평양에서 공부하지 않고 왜 먼 서울까지 왔는가?
(도산이 선교사의 눈을 응시하면서 반문했다) 

안창호 : 미국은 서울에서 몇 리(里)입니까? 
선교사 : 80,000리쯤 되지.
안창호 : 80,000리 밖에서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려 왔는데 겨우 800리 거리를 찾아오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산은 배재학당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재치와 배짱 그리고 면접관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도산의 순발력이 면접관인 선교사를 감동시킨 것이다. 

‘말 물(勿)+가질 취(取)+써 이(以)+얼굴 모(貌)’자의 '물취이모(勿取以貌)'란 말이 있다. '외모(外貌)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일 뿐이다.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라는 속담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역사 속의 비화(祕話)다. 
조선 시대 '황 희 정승‘이 누추한 옷을 입고 길을 걷다가 시장기를 느낄 무렵 잔칫집을 지나다가 "한술 얻어먹을 수 있을까?"하고 잔칫집으로 들어서려는데 대문에서 하인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는 "배가 고파서 그러니 요기나 하자"며 간청해도 하인들은 막무가내로 쫓아냈다. 그는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집에서 다시 잔치가 열려서 황희 정승이 사모관대를 갖춰 입고 그 집을 다시 찾았다. 

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이 버선발로 달려 나와서 황희 정승을 맞이하고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산해진미(山海珍味)로 대접했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차려진 음식을 먹지 않고 옷소매 속으로 잔뜩 집어넣는 게 아닌가? ​이를 본 주인이 이상하게 여겨 "왜 이러시냐?"고 물었다. 

이에 황희 정승이 답했다. "며칠 전에 허름한 옷으로 찾아왔을 때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더니만 오늘 융숭한 대접을 하는 건 이 옷 덕택이니 음식을 먹을 자격은 이 옷이 있는 것 아니요?"라고. 잔칫집 주인과 하인들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것을 후회하고 반성했다.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실화(實話)다. 
미국 북동부에서 명문대학교인 ‘Ivy-League’ 8개 대학교는 <Harvard, Yale, Cornell, Columbia, Dartmouth, Brown, Princeton, Pennsylvania>를 꼽는다. “아이비리그”라는 용어 자체는 1930년대에 이 학교들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 학문적 우수성과 명성의 동의어가 되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대학교들의 건물이 담쟁이(ivy)로 덮여 있는 모습으로 인해 ‘아이비’ 리그(담쟁이 연맹이란 뜻)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Ivy-League 8개 대학교>
  <Ivy-League 8개 대학교>

그런데 1800년대 중반 어느 날, ‘Ivy-League’ 8개 대학교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소재한 Harvard University(1636년 개교) 정문을 허름한 옷차림의 노부부(老夫婦)가 들어서려는데 경비원이 막아섰다. 

"여기는 왜 들어가려고 합니까?" 경비원의 물음에 노부부는 "하버드대학교 총장님을 좀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니, 총장님이 당신의 이웃집 사람이요? 총장님처럼 높은 분이 당신들을 만날 시간이 어디 있겠소?"라며 비웃으며 경비원이 노부부를 정문 밖으로 몰아냈다.​ 

  Stanford University 설립자, ‘Leland Stanford 夫婦’ -1850년- 
  Stanford University 설립자, ‘Leland Stanford 夫婦’ -1850년- 

경비원의 태도가 불쾌했지만, 노부부는 참으면서 경비원에게 물었다. "이만한 대학을 설립하려면 돈이 얼마나 듭니까?" 그러자 경비원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댁들이 그건 왜 묻는 거요? 어서 나가기나 해요"라며 화(火)를 버럭 냈다. 노부부는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되돌렸다.​

사실 이 노부부는 캘리포니아에서 금광(金鑛)과 철도사업(鐵道事業)을 하는 엄청난 재력가(財力家)였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미국 상원의원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데 외아들이 15살에 장티푸스 질병에 걸려 사망하자 전 재산을 교육 사업에 헌납(獻納)하기로 마음먹고 하버드대학교 총장을 만나서 상의하려고 방문했던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경비원에게 쫓겨난 노부부는 5년 후 캘리포니아州에 자기 이름(Stanford)을 붙인 대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가 바로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이다. 

이런 사정을 뒤늦게 전해 들은 하버드대학교 총장은 잘못을 반성하며 정문에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글을 내 걸었다. “책 표지만 보고 책 속의 내용을 예단(豫斷)하지 말라”는 뜻이다. 미국인이나 서양인은 사람의 외모를 책 표지로 비유한다.

외모(外貌)로만 사람을 판단하면 곤란(困難)하다. 학벌이나 가문,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적에 그 사람의 인성(人性), 품성(品性)을 제대로 갖춘 사람, 사람 냄새가 나며 됨됨이가 좋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얕은 내(川)는 바닥이 보이지만 깊은 강(江) 물속은 들여다볼 수가 없다. ​‘물취이모(勿取以貌)’란 말이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를 탄생시켰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