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꿩(雉) 대신 닭(鷄)
[전대길의 CEO칼럼] 꿩(雉) 대신 닭(鷄)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2.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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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조선 전기의 풍속, 지리, 역사, 문화, 제도, 음악, 문학, 인물, 설화 등을 수록한 ‘용재(慵齋) 성현(成俔)의 수필집’인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나오는 꿩(雉/Phesant)에 관한 기록이다.                  

“꿩이 아름답기로는 북쪽의 꿩을 최고로 친다. 평안도 강변(江邊) 꿩의 크기가 집오리만 하다. 꿩의 기름이 엉긴 것이 호박과 같아서 겨울이 되면 이 꿩을 잡아서 진상(進上)하니 이를 고치(膏雉)라고 하며 맛이 아주 좋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면 꿩이 점점 야위어서 호남, 영남의 남쪽 방면에 이르면 꿩고기가 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다. ‘북방에 초수(草樹)가 많아서 쪼아 먹기가 자유로워서 꿩이 살찐다"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최근 경상북도 울릉군청 회의실에 육지에서 배 타고 온 엽사(獵師) 10여 명이 모였다. 2023년 12월 11일부터 2024년 2월 7일까지(59일간) 울릉도에서 ‘꿩 포획단(捕獲團)’을 조직, ‘꿩과의 전쟁’을 벌리고 있다. 

울릉도 농업의 골칫거리인 꿩 소탕 방안을 논의하고 엽사의 총기사고 예방 대책 등 사냥 중 주의 사항을 엽사들에게 교육하는 자리다. 

울릉군은 작년에 이어 2023년에도 ‘꿩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육지에서 약 210㎞ 떨어진 울릉도에는 <농가의 기피 대상 3종>으로 꼽히는 <고라니, 멧돼지, 까치>가 서식(棲息)하지 않는다. 

그러나 꿩 10,000여 마리가 활개를 치며 울릉군 농작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꿩들을 소탕하기 위해 울릉군은 올해 꿩 1,600마리 포획을 목표로 엽사(獵師) 16명을 투입했다. 

지난해 10명보다 6명이 늘어난 숫자다. 울릉도엔 원래 꿩이 살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울릉군 저동 한 주민이 식용과 관상용으로 수십 마리 꿩을 키웠다. 

그런데 수년 전 태풍으로 인해서 꿩 우리가 망가지면서 꿩들이 탈출, 섬 전체에 꿩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울릉도에는 매나 독수리 같은 꿩의 천적(天敵)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설날에 대부분 꿩고기를 넣고 떡국을 끓였다. 꿩고기를 넣는 이유는 꿩고기가 맛이 좋기도 하지만 꿩을 ‘상서(祥瑞)로운 새(鳥)'로 여겼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꿩을 ‘하늘 닭’이라고 해서 ’길조(吉鳥)"로 생각했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새해 설날 아침에 떡국에 꿩고기를 넣고 끓였다.

조선 헌종 15년(1849년) 연중행사와 풍속 등에 관해서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온다. “떡국에는 원래 흰떡과 쇠고기와 꿩고기가 쓰였다. 그러나 꿩을 구하기 힘들 경우엔 꿩 대신 닭을 사용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설날 떡국에 꿩고기를 넣고 끓였지만, 그 당시 꿩은 야생동물이어서 사냥하기가 힘들었다. 또 쇠고기는 비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꿩 대신 닭고기로 국물을 내고 고명을 얹은 것에서 유래되어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영국 여왕이 국빈(國賓)에게 꿩 요리를 대접하는 이유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특정 국가를 방문하면 정상회담 후 국빈 만찬이 열린다. 영국 여왕은 윈저성(Windsor Castle) 내 왕실 소유 숲에서 연회용 요리에 꿩을 직접 사냥해서 사용했다.  

만찬 때 호스트(Host)가 직접 잡아서 요리한 꿩고기를 손님에게 접대하는 것이 영국과 유럽의 전통이다. 과거 유럽에서 사냥은 왕과 귀족들만이 즐길 수 있었다. 

영국 여왕이 영국령 지도자들을 위한 꿩고기 연회를 열 때의 비화(祕話)다. 
참가자들이 식사 전에 손을 씻으라고 마련한 손 씻는 작은 세숫대야의 물을 한 아프리카 지도자가 잘 모르고 마시는 바람에 그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서 여왕을 비롯한 참가자 모두가 세숫대야의 물을 조금씩 마셨다고 하니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다. 

정신적(精神的)인 면의 ‘매너(Manner)’와 행동적(行動的)인 면을 강조하는 ‘에티켓(Etiquette)’ 교육 시간에 주변인을 위한 배려(配慮)를 가르치기 위해서 서비스 강사가 Case-Study로 자주 인용한다. 

서양에서는 하늘을 나는 새를 고급 식재료로 삼았다. 따라서 꿩이나 자고새는 귀족 연회의 주요한 요리 재료로 사용되었다. 

중세 이탈리아 중부도시 피렌체(Firenze)에서는 닭목(目) 꿩과(科)의 ‘자고새(Partridge)’가 평민(平民)이 먹기에는 너무 섬세한 맛이니 식용(食用)을 금지하는 법령까지 제정되었다. 
 
그러나 돼지는 가장 미천한 부류로 보았다. 송아지나 양(羊)은 중위권이다. 덩치가 크고 사냥해서 먹는 사슴은 고급 고기로 분류했다. 똑같은 요리 재료라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졌다. 

로스트(Roast)처럼 뜨겁고 건조한 공기로 조리하면 유럽인은 신(神)에게 좀 더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어떤 음식 재료의 대체재(代替財)를 말할 때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지 싶다.

끝으로 ‘꿩 대신 닭’처럼 대체재(代替財)와 관련, 실제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먹고살자”를 강조하는 공무원 출신 상사에게 신입사원이 말했다. 

“이빨을 평소에 소비재(消費財)로만 생각하지 말고 건치(健齒) 상태일 때 잘 관리해서 오랫동안 사용해서 잇몸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우선(優先)이다”라고. 이 말을 들은 상사의 얼굴색이 벌겋게 변했다고 한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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