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내려가긴 쉬워도 올라가긴 어렵다" 청년 장기실업 부추기는 노동 이중구조
[기자수첩] "내려가긴 쉬워도 올라가긴 어렵다" 청년 장기실업 부추기는 노동 이중구조
  • 이윤희 기자
  • 승인 2024.01.15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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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인터넷에서는 시기마다 그 시절 사회를 반영한 신조어가 인기를 끌곤한다. 최근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그돈씨'라는 용어를 아는가?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위 용어는 '그 돈이면 씨X(비속어) ㅇㅇㅇ을 사겠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예를들어 어떤 질의자가 주어진 예산으로 C급 차를 사는게 어떠냐는 질문을 했을 때 차라리 좀 더 보태서 B급 다른 차를 사겠다는 뜻으로 주로 쓰곤 한다. 

그렇게 2000만원짜리 소형 차에서 시작했던 예산이 어느순간 8000만원 외제차까지 눈덩이처럼 커지는 모습이 유머 소재로 쓰인다. 자차 없이 뚜벅이로 살았음 살았지, 어차피 투자를 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더 좋은 것을 갖는게 낫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취업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어차피 취업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낫다고 말이다. 높은 경쟁률에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하고, 더 구직기간이 길어지더라도 대기업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중소기업이라도 입사해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이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중소기업 입사는 곧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있는 기회의 소멸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인식이 단순한 착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양대노총과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참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이직한 중소기업 노동자 가운데 대기업으로 옮긴 비율은 11.8%인 반면 중소기업으로 옮긴 비율은 88.2%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 보도된 기사를 보고 아마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내려오긴 쉬워도 올라가긴 어렵다"던 선배 구직자의 말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 눈 앞에 닥친 현실이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멍이 너무나 작은 것이다. 처음부터 대기업에 나이 든 신입직으로 입사하는 것이 훨씬 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굳이 대기업을 가야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구태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복지차이는 말하기도 입 아플만큼 누구나 빤히 알고있는 사실이다. 단순한 임금차이나 성과급 격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사실 중소기업 중 성과급 제도가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다.)

중소기업 직원은 해마다 물가는 치솟지만 임금은 동결상태이고 교통비와 식비로 나가는 지출이 적지않다. 이직을 위해 공부를 하려해도 대부분이 자비로 마련해야하며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는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다.

반면 대기업 직원들은 점심과 저녁을 회사에서 제공하는 '꽤나 멋진' 식사를 기호에 맞춰 제공받는다. 식사를 고를 수도 있고 간단한 디저트류나 샐러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S사 밥이 맛있다더라 L사가 잘 나온다더라 우스개 소리가 돌 정도니, 식사의 품질은 나쁘지 않은가 보다. 

대기업의 복지 혜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직원들의 정신건강과 체력 증진을 위해 각종 복지시설과 포인트를 제공하고, 정해진 선에서 어학이나 코딩 공부에 쓰인 돈은 회사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런 작은 격차가 모여서 중소기업의 근로자와 대기업 근로자가 비축할 수 있는 자금은 천지차이로 갈리게 만든다.

이 과정을 한 세대가 바뀔때까지 반복하다보니, 이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양극화 형상도 나날이 뚜렷해지고 있다. 생계와 미래에 직결된 선택이다 보니 구직자들은 몇년이 더 걸리더라도 대기업 입사를 하는 그 날까지 취업 준비를 이어가고 있고, 대기업이 아니라면 입사하지 않겠다며 구직을 단념하는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자동차와 같이 개인의 소비재가 아닌데 누가 이들의 선택을 힐난할 수 있는가. 결국 단단하게 고착화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대기업 쏠림 현상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고 중소기업의 몰락으로 내수 시장이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들 가능성도 농후하다. 

인적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노동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윗물과 아랫물이 되어선 안된다. 윗물로 올라갈 수 있는 배수로를 새로이 만든다 하더라도 윗물의 공간은 제한적이다. 자리가 비좁아 아래로 끝없이 흘러내린 윗물은 언젠가 마르고, 고인 아랫물은 썪고 병들기마련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윗물과 아랫물이 아니라 좌우로 흐르고 순환하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공서열제나 호봉제의 개편이 필수적이며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개편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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