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 개정안’ 통과하면 의사·간호사도 파견직 대체 가능”우려
“‘파견법 개정안’ 통과하면 의사·간호사도 파견직 대체 가능”우려
  • 이준영
  • 승인 2015.11.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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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 지난 9월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 중에서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병원에서도 의료인 등의 파견근로가 가능해 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앞서 지난 9월 16일자로 국회에 제출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인제 의원 대표발의)에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전원이 서명했다.

지난 16일자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된 개정안의 골자는 55세 이상 고령자, 관리자 또는 근로소득 상위 25%(2015년 기준 5,600만원)에 포함되는 전문직에 대해서도 파견을 허용하는 것이다.

통계법에 따라 고시한 '한국표준직업분류'의 전문직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인과 약사, 한약사,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치료사, 위생사, 의무기록사 등 병원 사업장 전체 직종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파견법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될 경우 근로소득 상위 25%에 해당하는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의 직종에서 파견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개정안에는 유·도선 승선 선원 업무, 철도 및 도시철도 사업 종사자 업무 일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자 업무를 파견 금지 업무로 추가했을 뿐 의료인에 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파견법 법개정이 이뤄지면 하위법인 파견법 시행령과 충돌할 우려도 있다.

현행 파견법 시행령에는 ▲의료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의료인의 업무 및 동법 제80조의 규정에 의한 간호조무사의 업무 ▲의료기사등에관한법률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의료기사의 업무 등을 파견 금지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17일 성명을 내고 "명확한 파견 절대 금지업무 규정 없이 법개정이 현실화 되고 시행령의 모순이 제기돼 시행령을 개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다면 전체 병원 사업장에서 상대적으로 고소득인 의사는 거의 대부분 파견직을 사용할 수 있다"며 "간호사, 의료기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종은 일정소득 이상이 되면 파견직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게다가 대학병원의 경우 의료기사는 2년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현실을 볼 때 진료를 포함해 숙련, 비숙련 등 대부분의 업무를 비정규직이 맡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병원 사업장의 특성상 환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내 각 직종간 유기적인 업무협력을 통해 환자를 돌보는 것이 중요한 데 의료인 등의 자리를 파견직으로 대체할 경우 협력체계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는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져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경고했다.

파견법 개정이 추진되면 병원 사업장에서 장기근속 노동자의 퇴출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특히 파견이 허용되는 '근로소득 상위 25%에 해당하는 전문직'에 속할 수 있는 병원내 15~20년차 노동자의 임금하락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별로 다르겠지만 대략 15년차에서 20년차의 근속으로 일정소득에 도달하면 사용자는 비용절감을 들먹이며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겠다고 겁박할 수 있다"며 "결국 이 자리가 파견으로 채워질 수 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파견법이 허용하는 근로소득 기준으로 임금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40대 초중반에 임금이 하락되는 또 다른 임금피크제의 변형이 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건의료노조는 파견법 개정안에 강력히 반대하며, 법개정을 막기 위해 총력 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다.

한편 최근 들어 의료기관에서도 비정규직 채용 비율이 확대되는 추세다. 비정규직 채용 확대는 민간과 공공병원을 가릴 것이 나타나고 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2개 국립대병원의 비정규직 규모는 2009년 5,210명에서 2012년 8월 기준 7,102명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12개 국립대병원에서 신규 채용한 인원 4,730명 가운데 40%인 1,89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이보다 앞서 2009년 병원경영연구원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병원 간호사의 11.4%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내에서 비정규직 고용이 늘고, 향후 의료인 등의 파견 근로까지 허용될 경우 보건의료 분야에서 나쁜 일자리가 양산되고, 의료 질 저하로 환자 안전을 위협하게 될 우려가 높다.

사회공공연구원 이상윤 객원연구위원(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은 지난 5월 '병원 인력 확충: 환자 안전 증진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병원에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인력 교체가 잦아지면서 업무 숙련도가 저하되고 의료팀내 혹은 의료팀간 의사소통 장애가 발생해 의료 사고의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한국 병원에서 간호사가 부족한 이유는 단순히 인력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병원간 경쟁의 격화, 수익률 압박, 노동조건의 하락,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복합적 원인을 방치하고 인력 공급 확대 정책만으로 해결하려 하면 저임금, 고강도 노동, 위험한 일자리만 늘리는 꼴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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