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사장의 못다한 이야기]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
[이상철 사장의 못다한 이야기]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
  • 편집국
  • 승인 2018.01.24 1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웃소싱 사업 폐업에서 재기까지
이상철 삼영B&C회장
이상철 삼영B&C회장

1월 18일 sk최태원회장이 전년도에 창업이래 최고의 실적을 낸 축하자리에서 첫 말마디가 ‘sk도 망할 수 있다’였다. 그 만큼 글로벌 기업환경은 물론 국내 각 비즈니스모델이 어느 것 할 것 없이 앞날이 불확실하단 얘기겠다.

나는 그야말로 망할 수도 있다가 아니라 망했었고, 다시 일어났다. 중소기업이지만 1천억을 넘겼던 기업이 폐업한 게 나 뿐이겠는가. 지금도 많고 많은 대중소기업들이 안좋거나, 망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던 아웃소싱회사의 폐업 당시다. 망한 직후, 직간접적으로 주로 이런 말들을 들었다. “잠수타라, 아웃소싱업계에서 큰 기업이 어떻게 망할 수 있나, 그 정도 기업이었으면 신보나 각 금융기관에서 차용할 수 있는 돈도 백억이상 일텐데... 혹은 거래선 영업권만 팔아도 족히 수십억은 받을 수 있을텐데...“ 등등 

또 이런 말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망할 수 밖에 없었으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할거다, 틀림없이 형사상 구속을 면치 못할 거다, 혹은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보통사람이 아니니 꿍처둔 게 돈이든, 거래선이든, 살 궁리를 해 놨을거야.“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잠수를 타지 않았다. 시쳇말로 꿍처둔 것도 없었다. 물론 한 두개 거래선은 후배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양이 그네들 기존에 받던 급여에도 못미치는 조족의 분량이었다.

나름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으니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고, 잘 할려다 그리 되었으니 당당하게 가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내가 만들긴 했지만 우리집 가훈이 '더불어 사는 다움의 미' 즉, 사람은 혼자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니 사람 人이란 한자어와 같이 더불어 살아야하고, 사람다움, 남자다움이 있게 살아야한다, 누구든 그 역할과 직(職)에 걸맞게 살아야 멋진 삶이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었다. 

그런 내가 도망다닐 순 없지 않은가. 
나는 대기업 출신이라 신보 통해 대출받는 것을 몰랐다. 몰랐다기보다는 시도는 했으나 안된다기에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있었음에도 해 보겠다는 생각을 말소해 버렸다는 게 맞겠다.

망할 때 매출 1천억 남짓 기업의 금융대출이 3억밖에 없었다면 아무도 안믿을 거다. 
그리고 그 당시 지분이 나누어져 있어 내가 단독으로 회사에서 돈을 빼는 일은 불가능했으며, 형사입건과 구속 등등은 이미 각오가 돼어 있었다. 

폐업후 차후에 일어 날 일에 대해선 0.1%도 생각하지 않았다.
폐업 다음날 노무사가 왔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을 정도로 처리과정에 무지했다. 그 노무사가 데려온 변호사와도 계약을 했으나 일머리가 순탄치않아 그야말로 개고생을 해야했다. 

일부외에는 직원들의 퇴직금을 줄 수가 없는 처지라 노동청에 불려다니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체당금을 받는 과정도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처리과정이 많이 늦었었기에 그때 피해를 입은 직원들에게는 지금도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노무사나 변호사들도 그들의 전문성에 관해서는 잘할지 모르나 그야말로 융복합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그 상황에서 그들의 대처능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과정에 단 한가지 이로웠던 점은 내가 글 쓰는 것엔 부담이 없는 거였다. 정말 수많은 곳에서 사유서와 탄원서 등의 제출을 요구했고, 글로 표현하는 그 일들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중에 하나였기에 그나마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지금 아웃소싱업계 뿐만아니라 중소기업들 중에 어쩔 수없이 폐업을 해야하는 사장 몇몇을 도왔거나 돕고있다. 내가 망하는 과정을 경험한 게 무릇 기하인가.

운이 없었던 건지 지나고보니 쉽게 갈 수 있었던 것들도 엄청난 고생을 한 후 마무리가 됐었다. 그야말로 전 과정을 아낌없이(?) 다 거쳤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일은 노무나 법무에 밝다고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폐업의 과정은 융복합이 아니라 그 보다 난해하고 복잡한 처리과정이 필요함을 안다. 

그야말로 예술을 해야한다. 금융기관부터 세무서, 법원, 노무법인, 법무법인, 그리고 고용노동부 관할지청과 수십개의 구청들까지, 이런 관련된 일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다. 

물론 무료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해주는 일이 아니고 ‘이렇게하세요, 저렇게하시죠’하는 식의 일들이고, 더 중요한 것은 누구보다 내가 그네들 형편과 상황을 잘 알아서다.

나는 지금 친족과 여러 친우들의 도움으로 수출입법인을 3개로 늘렸다. 
지금은 망한 날로부터 3년 반 된 시점이다. 지나고 보면 인연관리를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시점이다. 

폐업하고, 사회적으로 받을 수 있는 온갖 불명예는 다 받았던 시점이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지속해왔던 여느 모임도 충실히 나갔고, 그후 다른 모임들도 많이 늘어났다. 

사회적공동체에 참여하고 적극적인 게 다는 아니다. 
그곳들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일원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운좋게 사는 법을 안다. 항상 긍정, 열정, 감사, 배려, 그리고 겸손이 그것이다.
거기다 희생할 줄 알고, 잘못된 것은 모두 '내탓이다' 하는 생각이 덧붙여지면 세상은 어떠한 어려움속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링컨이 한 말을 항상 새긴다. “너의 지금 표정과 말이 너의 미래다, 말파장이 운명을 가른다”.

개띠해 정월 
삼영B&C회장 이상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