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주 52시간 근무 감독하는 근로감독관들의 끝없는 야근
[분석] 주 52시간 근무 감독하는 근로감독관들의 끝없는 야근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8.03.28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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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40명 충원.발표...그래도 1인당 1222개 사업장 감독
52시간 근무는 요원한 일.. 업무조정 통해 실효성 높이는 방법 고려해야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2018년 2월 24일, 전북 익산에 소재한 아파트 7층에서 한 남자가 투신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우울증에 따른 비관 자살이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그의 사망 이유가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비상식적인 업무 과중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그의 직업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이었다. 

근로자들의 법정 근로시간 준수 여부를 관리 감독하는 근로감독관이 정작 자신의 근로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유명을 달리한 이 사건은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주 52시간 근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근무감독관
근로감독관들은 임금체불 신고 사건 처리, 근로시간 및 최저임금 등 노동관계 법령의 준수 여부 감독은 물론이고 산업현장 중대사고의 예방과 대응 등 사업장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드물다. 또한 업무 하나하나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들이기에 건당 처리 시간도 자연히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현재 근로감독관 1명이 맡고 있는 사건은 평균 80건에 달한다. 이는 적정 업무량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앞으로도 개선되리란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근로감독관의 업무 범위는 노동계 전반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진은 근로감독관집무규정 내용 중 일부.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때문에 일선 현장에서는 근로감독관들의 적정 신고사건 업무를 20∼30건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게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사망한 근로감독관의 경우 당시 담당사건이 90여건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다른 근로감독관도 매한가지다.

고용노동부 공무원직장협의회에 따르면 근로감독관 1명이 맡고 있는 사건이 평균 80건이라고 한다. 일처리가 빠른 근로감독관도 담당 사건이 60건을 넘으면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는 사망자가 근무했던 광주 노동청만 봐도 알 수 있다. 광주 노동청은 근로감독관 25명이 광주지역 5만 4602개 사업장, 노동자 42만 8325명의 노동 관련 사건을 담당한다. 근로감독관 1명이 2184개 사업장과 노동자 1만 7173명을 도맡고 있는 셈이다. 

타 지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히 업무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새 정부 들어 노동 정책이 강화되며 관련 업무가 급증하고 있다. 덕분에 대부분의 근로감독관은 조기 출근과 야근이 일상화된 구조 속에서 업무에 매달리고 있다. 근로자들에게는 52시간을 준수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럴 수 없는 아이러니에 빠진 이유다.

고질적인 근로감독관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7년 6월 1일, 정부는 ‘일자리 100일 플랜’을 통해 2018년, 565명의 근로감독관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동기본권과 노동기본법령 준수 등 일자리 기초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작업은 해를 넘기고서야 정체를 드러냈다. 정부는 3월 26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다. 

개정내용에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노동관계 법령의 준수여부 감독 및 산업현장 안전강화를 위해 근로감독관 240명, 산업안전감독관 60명 등 300명을 증원키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기존 정부의 발표보다 300명 이상이 부족한 수치다. 계획대로 565명을 증원해도 일손이 부족할 판인데 그조차도 지켜지지 않은 상황인 것. 정부의 의지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부분이다. 

▲ 240명 충원해도 1인당 감독 사업장수 1222개
이 정도 충원으로 실효를 거둘 수 없으리란 점은 명약관화하다. 수치로 확인해보자.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근로감독관 정원은 1282명으로 5년 전인 2012년의 1241명에 비해 3.2% 늘어나는데 그치는데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반해 근로감독관리대상 사업장은 186만개로 같은 기간 동안 22.4% 증가했다. 신고 사건수 역시 2012년 32만1000건에서 지난해 36만 3000건으로 13% 이상 늘었다.

지난해 수치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근로감독관 1명이 1451개의 관리사업장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개정령으로 근로감독관 240명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1인당 감독사업장 수는 1222개에 달한다. 휴일도 없이 하루에 4곳씩 돌아야 가능한 수치다. 이게 비현실적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3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기자단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모든 부처가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일자리 정부의 핵심부처는 고용부다. 지난 주 고용부 산하 공공기관에 주 52시간 노동시간을 준수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내부 공공기관부터 시범을 보여야 노동시간 단축이 정착되기 때문”이라며 “공무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공무원도 주 52시간 노동을 하는 대한민국이 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격무에 시달리는 근로감독관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장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근로감독관의 살인적인 업무량을 고려한다면 주 52시간 근무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장관의 말을 현실로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명의 근로감독관이 담당하는 업무를 적정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인원 충원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 부처 인력 충원문제는 행자부와 인사혁신처에서 관장하고 있는 부분으로 범정부적으로 전체 공무원 정원을 감안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인 탓이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근로감독관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다면 업무 조정을 통해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려해봄이 옳다. 노동관계법 전반을 들여다봐야하는 근로감독관의 역할을 축소 조정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신고 사건이나 근로시간 준수 등 특정 분야로 각각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현직 근로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우리나라 근로감독관의 업무 범위는 거의 노동계 전 분야를 아우르는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는 거의 없다”며 “근로감독관의 업무를 특정 부분으로 집중시키는 것이 훨씬 충실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길이다”라며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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