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코로나19에 드러난 민낯.. 위험 앞에 방치된 간접고용 노동자들 
[이슈] 코로나19에 드러난 민낯.. 위험 앞에 방치된 간접고용 노동자들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0.03.12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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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직원 아니니 책임없다는 원청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노동자들
인권위,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 재차 촉구에도 현실은 여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콜센터지부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감염 위험에 노출된 콜센터 노동자들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제공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법이 바뀌어도, 여론이 들끓어도 그때뿐, 여전히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위험 앞에 방치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하루하루는 그래서 칼날 위를 걷는 신세와 다를 바 없다.

지난 10일, 서울 구로구의 코리아빌딩 11층에 소재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사건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둘러싼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건이었다.

지난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원청의 책임이 강화됐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재차 입증된 것.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둘러싼 원청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는 것은 사고 발생 후에 여실히 밝혀지고 있다.

지난 11일, 서비스연맹 소속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서비스연맹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콜센터 노동자들의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원청사들의 행태를 증언하고 나섰는가 하면 하루 전인 10일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가 성명을 내고 유사한 입장을 표명했다. 

지부에 따르면 "콜센터 노동자들은 근무 특성상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100명 이상이 밀폐된 공간에서 쉼 없이 말을 해야 해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면서 "장비가 설치돼야 해 재택근무도 여의치 않고 고객과 정확한 대화를 위해서는 마스크를 쓰고 일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콜센터노조는 "대부분 콜센터 업무를 외주화해 콜센터 노동자의 경우 원청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원청사에선 콜센터 노동자들의 건강과 근무환경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면서 "콜센터업체는 업무에 차질을 주지 않아야 해 콜센터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재벌기업, 금융기업, 공기업, 글로벌기업 등으로 이루어진 콜센터 원청들이지만 간접고용 노동자인 콜센터 노동자들의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려 노력하는 곳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원청들은 콜센터 노동자들을 자사의 직원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조차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러니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 것.

콜센터 관련 코로나19 방역 조치는 크게 재택근무, 띄어앉기, 근무공간 확충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재택근무를 위해서는 근무 설비를 옮기고,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등이 필요하다. 띄어앉기나 근무공간 확충을 위해서는 추가로 사무실을 확보해야 한다. 

콜센터 관련 코로나19 방역 조치는 크게 재택근무, 띄어앉기, 근무공간 확충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사진은 근무중인 콜센터 상담사들.

자사의 직원이 아니니 원청은 나 몰라라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하청업체인 아웃소싱 기업들이 이를 감당해야 하지만 한정된 용역비로 근근히 버텨가고 있는 아웃소싱 기업들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답은 원청이 지니고 있는 셈이다. 비현실적인 용역비를 상향 조정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콜센터 방역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조금씩 표출되고는 있다. 

이동통신 3사가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콜센터 직원의 재택근무와 분산근무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렇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상당수 원청들은 특별한 대책 없이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전의 사례처럼 유야무야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아웃소싱 관계자들의 말이다. 결국 이번에도 위험 부담은 고스란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몫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뿌리뽑겠다는 사회적 움직임은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치게 될 것이 자명한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다시 한 번 총대를 맸다. 

■ 인권위 "위험의 외주화 개선 시급"..노동부 권고이행 재촉구
이번 코로나19 무더기 확진으로 다시금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의 안전 불감증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11일, 간접고용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기본적 노동인권 증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첫 권고 이후 두 번째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22일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 1월 29일 ‘중장기 검토’ 등의 내용으로 이행계획을 회신한 바 있다. 개정법의 운용상황을 지켜보면서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 고용부의 입장인 셈이다.

국가인권위윈회가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하고 나섰다. 사진은 결정문 일부. 자료제공 국가인권위원회

그러나 인권위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의 생명·안전은 매일 매순간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뤄선 안 되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므로, 고용노동부 중장기 검토 회신은 실질적으로 ‘불수용’ 의견인 것으로 판단하고 다시 개선을 촉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간 중대재해 발생에도 불구하고, 원청을 경미하게 처벌해 온 관행은 법의 실효성과 기업의 재해 예방 효과를 약화시켰다는 것이 인권위의 판단. 무엇보다 산업재해는 정부와 기업이 보다 더 엄격한 관리감독과 가능한 모든 최대한의 조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으므로, 고용부는 향후 법위반으로 인한 재해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 법적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인권위는 강조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고용부가 인권위의 지난해 권고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원청에 대한 의무를 강력히 촉구했다면 이번 콜센터 대규모 코로나19 확진 같은 사례는 막을 수 있었을 수도 있다.

고용부는 인권위 권고 중 생명·안전업무의 구체화를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구회’에서 논의를 시작했고, 향후 도급비율 등을 고려하여 원․하청 통합관리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미 잃어버린 소를 보며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고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오롯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불합리함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1차적인 책임은 원청인 기업들의 몫이다. 비용 때문에, 책임 소재 때문에 불가하다고 말하는 무책임함은 이제 사라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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