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생애설계 이야기30] 생애설계와 시니어의 리더십 (4)
[최승훈 소장의 생애설계 이야기30] 생애설계와 시니어의 리더십 (4)
  • 편집국
  • 승인 2020.11.1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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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사)시니어벤처협회 고문•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사)시니어벤처협회 고문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1. 절제의 리더십

성공한 리더가 되려면, 절제력ㆍ책임감 갖추어야 한다. 리더십의 완성은 절제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한 리더는 통념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 확신에 동요가 없으며 책임질 줄 아는 과감한 행동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전략적 사고와 절제력을 갖추어야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이 이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진 지도자로 꼽을 수 있다. 드골이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신념, 그것을 지켜내는 용기와 실천력을 가지고 1ㆍ2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의 프랑스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 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그것이 오늘날의 프랑스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드골은 2번째 임기에서 선거에는 이기지만 민심이 떠난 것을 알고 퇴장을 먼저 생각했다."며 절제력도 남달랐음을 그 자서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절제력 부분은 그가 나폴레옹을 이상적 지도자로 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권력에 대한 절제력이 없었던 나폴레옹은 결국 엄청난 희생과 파멸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히틀러도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지만 절제력이 결여되어 전쟁을 일으키고 독일을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 

2. 칭키스칸의 절제된 리더십

1) 꿈의 공유로 이루어 낸 몽골제국

1995년 워싱턴 포스트지 송년 특집호에서 지난 일천 년 동안 각 분야의 최고를 선정 보도한 적이 있다. 
지난 일천 년간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징기스칸을 선정했었다.

칭기스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 킬로미터로 알렉산더 대왕 348만 평방 킬로미터) 나폴레옹 115만, 히틀러 219만 평방 킬로미터로, 세 정복자가 모두 정복한 땅보다 크며 작은 몽골이 200여 배가 더 큰 나라를 아우르며 무려 150년간 제국을 유지한 비결이 무엇인가를 상고해 보면 그들의 성공비결은 "꿈"이라는 것이 있었으며 "꿈의 공유"가 그들을 이끌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이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그들은 농경 정착민을 보면서 머물러 사는 자의 안락이 스스로를 안락사 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아프라카에서는 가젤이 눈을 뜬다. 가젤은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사자 또한 눈을 뜬다. 그 사자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가젤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사자이건 가젤이건 상관없이 아침에 눈을 뜨면 생존을 향해 질주해야 한다. 유목사회의 우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은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나 중국왕조 등 많은 국가가 패망하거나 무너진 이유가 정체성 상실과 리더의 절제력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를 호령하며 탄탄대로 일것 같은 몽골제국의 멸망을 징키스칸은 미리 경고했다. 그는 그의 후손들에게 뚜렸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몽골제국의 후대 지도자들은 끝내 이 충고를 되새기지 못했다. 소수인 몽골 사람들은 다수의 피정복민을 지배하기 위해 정착 지역에 생계 근거를 뒀다. 그 결과 그들의 존재 기반인 수렵과 유목성을 스스로 거세하고 현지에 동화돼 버렸다. 

그것은 결국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고 자기 절제력 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세운 원나라는 100여 년 만에 쇠퇴를 맞았다. 그 원인은 생각하기에 따라 앞서 지적한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이유 들 중에서 하나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정체성과 절제력의 상실이다.

2) 칭기즈칸과 사냥매(鷹) 이야기

고대 희랍에서 「좋은 시민」의 도덕적 덕목으로 여긴 것은 정의, 절제, 용기, 너그러움, 침착함, 성실, 자존심, 염치심 등이었다. 이 덕목들은 럭비와 함께 이튼과 같은 영국의 신사양성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들이기도 했다. 

책의 첫머리에서도 절제를 가르치는 제임스 볼드윈(James M. Baldwin 미, 1861~1934)의 저서 『5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Fifty Famous Stories)』에 다음과 같은 우화를 소개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징키스칸이 사냥을 하기 위해 숲속을 말을 타고 내달렸다. 그의 뒤에 수 많은 신하들이 따라나섰다. 왕의 팔목에는 왕이 아끼고 사랑하는 매가 앉아 있었다. 매는 사냥할 때 절대 필요한 것이었다. 

종일토록 왕 일행은 짐승을 찾아다녔으나 수확이 시원치 않았다. 해가 질 무렵에 하는 수 없이 일행은 궁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칭기즈칸은 지름길을 택하여 달렸다. 그는 숲속을 자기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었다. 한창 달리던 중 심한 갈증을 느낀 나머지 말에서 내려 샘물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늘 철철 넘쳐흐르던 그 샘이 말라 있는 것이 아닌가?. 

혼자 너무 빨리 달린 탓으로 그의 주변에는 신하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팔목에 있던 매도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가만히 주변을 살피니까 천만다행으로 머리 위의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똑똑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징키스칸은 허리춤에 있던 쪽박을 꺼내 떨어지는 물방울을 한 방울 두 방울씩 받아내었다. 한참 후에야 간신히 쪽박에 물이 거의 찼다. 

그가 물잔을 입가에 대고 마시려 하는 순간에 어디서부터인가 매가 날아와서 그 물잔을 주둥이로 치고는 다시 하늘로 높이 날아갔다. 왕은 땅바닥에 떨어진 물잔을 주워들고 다시 물방울을 받기 시작했다. 물이 반쯤 채워졌을 때 그는 다시 물잔을 들어올려 그 입으로 가져가는데 입가에 닿을까 말까 할 무렵에 또다시 매가 날아와서 쪽박을 엎어 버리고 사라졌다. 

끌어 오르는 부화를 억지로 참으면서 또다시 물을 쪽박에 받기 시작했다. 징키스칸이 물을 막 마시려는 순간 날아갔던 매가 다시 오더니 쪽박을 엎질러 놓고 말았다. 그 정도면 왜 잘 훈련된 매가 그러는지 의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화가 치민 징키스칸은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네 번째로 매가 물을 못 마시게 하자 화를 참을 수 없던 징키스칸은 매를 단칼에 찔러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쪽박까지 잃어버린 그는 하는 수 없이 물줄기를 따라 바위 위로 기어서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과연 웅덩이에 고인 물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물이 바위틈을 따라 한 방울씩 떨어졌던것이다. 

그는 곧바로 웅덩이 앞에 엎드려서 물을 마시려다 훔칫 놀라고 말았다. 그 웅덩이 속에는 굉장히 큰 독사 한 마리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그는 사랑하던 자신의 매가 그 독물을 못 마시도록 하려고 쪽박을 걷어찬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곧바로 바위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매를 어루만지면서 눈물로 맹세했다.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오늘 나는 매우 쓰라린 교훈을 너로부터 배웠다. 나는 앞으로는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홧김에 결정을 내리지는 않겠다.』 절제력을 잃었던 징키스칸이 매의 예지력(豫知力)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것이다.

3) 징키스칸의 메시지

후일 그는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절제와 인내의 가치를 잘 표현한 메시지에 큰 울림이 다가온다.

3. 뛰어난 절제력의 영조대왕

영조 임금은 83세에 돌아가셨으니 지금으로부터 200-300년 전인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장수로서 요즘으로 치면 100세를 넘는 정도로 볼 수 있다. 흔히 왕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장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막중한 국정의 중요  사항을 결정해야 하고 신하들의 왕권에 대한 도전과 역모에 늘 노심초사하며 왕비와  후궁 및 왕자들의 문제로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한다. 

그래서 영조 임금이 장수하신 비결은 그런 스트레스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영조 임금의 뛰어난 절제의 리더십이 있었음을 역사가 고증하고 있다. 조선 최고의 장수 대왕 영조도 왕위 승계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즉위 후부터 심각한 체증에 시달렸다. 

영조의 스트레스는 기록에도 잘 나타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다시는 왕가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 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이다. 경종 형님의 지극한 우애가 아니면 내가 어찌 이 자리에 있었겠느냐(영조 37년).” 

경종의 능을 찾은 영조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엎드려 몇 시간이나 일어서지 않았다 한다. 즉위 때까지 얼마나 큰 위험에 직면하고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이다.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풍성한 수염을 자랑했다고 하는데 수염을 비롯한 머리카락도 역시 신장의 정기를 받는 곳이다. 역시 신장의 정기를 공급받는 두뇌가 매우 총명했다. 그래서 독서와 창작 활동을 통해 글씨나 시, 산문 등을 수백권 넘게 남길 정도로 학문의 경지가 높았고 기억력도 뛰어났다.
 
그리고 70세가 넘어서까지 성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조는 64세에 왕비를 사별하고 삼년상이 끝나자 66세에 정순왕후 김씨를 계비로 맞이하였는데 이때 왕후의 나이가 만 14세였다. 그 당시에는 40세만 넘어도 중노인 취급을 받는 때였는데요, 70 이 다 되어가는 분이 어린 소녀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물론 나라의 왕비 자리를 비워둘 수 없기 때문이지만, 영조 임금에게는 후궁도 여러  명 있었고 그녀들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었다 하니 놀라울 뿐이다. 

음식을 적게 먹었는데 특히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조선의 왕과 왕비들은 대부분 나라가 흉하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백성과 아픔을 같이 하려고 하였기에 흉년에는 반찬을 줄이거나 혹은 낡은 옷을 입는다는가 하는 것이 미덕으로 전승되어 왔다. 

영조도 가뭄이 들면 하루 다섯 번 먹던 수라를 세 번으로 줄이고 반찬 수도 반으로 줄였고 심지어 간장만으로 수라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고 소식을 한 것이 오래 사는데 큰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현미, 잡곡 등의 거친 음식을 즐겨먹었다. 조선시대에는 쌀이 귀했는데 왕이라면 당연히 쌀밥을 먹지만 영조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과 같은 잡곡밥을 먹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당뇨병 고혈압 등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백성들을 직접 만나보러 500회가 넘게 부지런히 궁궐 밖으로 미행을 다녔기에 운동도 많이 되었다.

술을 상당히 절제하였다. 영조 임금은 조선의 임금 중에서 ‘금주령(禁酒令)’을  가장 강력히 시행했다. 곡식이 품귀되었기 때문인데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팔거나 마시는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였으며, 실제로 술을 마셨던 종2품 벼슬의 신하를 잡아 목을 베어 성문에 내걸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술잔을 받을 때 생강차로 술을 대신하도록 명하였는가 하면 심지어 태묘에 술을 올릴 때 감주로 대신하였다고 한다.

건강관리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평소에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다가도 식사시간만은 꼭 지켜서 저녁을 챙겨 먹었다고 라는데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데 기본이다. 또한 사형을 판결하고 나면 꼭 손을 씻어서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리려 했다고 하는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의원의 진찰을 자주 받았다. 조선 시대 왕들은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았는데, ‘문안진후(問安診候)’를 받도록 승정원의 업무지침서인 ‘은대조례’에 공식 규정이 있다. 승지들이 닷새마다 한 번씩 내의원 의원과 함께 입시해서 왕의 건강 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했던 것이다. 

정기진찰이 닷새에 한 번이면 한 달에 여섯 번이다. 그런데 이것이 귀찮다고 자주 빼먹고 가끔 씩 진찰받았던 왕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 왕들은 30대, 혹은 40대의 나이에 돌아가신 반면에, 기본의 두배 가까이 되는 월 평균 11.7회나 진찰을 받았던 영조 임금은 무려 83세까지 장수하였다. 

건강관리에 너무 지나치게 조심하고 염려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절제력이 천재성을 이기는 것은 건강에도 예외가 아니다. 

4. 절제된 언어의 리더십.

등산 모임이 있는 어느 날에 한 친구가 나오지 못하여 기다리다 지친 한 친구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손자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나올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 사정 모를 리 없지만 유독 한 친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친구는 왜 그리 살아? 그러니 허구한 날 붙잡혀 살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넨 손자가 지방에 있으니까 그렇지 옆에 있어 보게 자네도 별 수 없을 걸세.”

손자 양육 문제로 제법 논쟁이 커지게 되었다. “난 처음부터 선언했어, 내가 애를 돌봐주면 성(姓)을 간다!”

다들 말은 쉽게 한다. ‘못생긴 남자와는 절대 결혼 않는다거나 키작은 남자에게 시집 안 간다’는 처녀!‘죽어도 요양원에는 안간다’고 한 선배! 맏이에게 시집 안 보낸다는 어떤 어머니. ‘딱 100세만 살 거야'라고 호언했던 대학 동기! 등 함부로 내 뱉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간과 하기 일쑤이다.

그런데 어쩌나, 다 헛맹세가 됐으니. 여자는 못생긴 남자와 천생연분을 맺었고, 맏이에게 시집 안 보낸다더니 결국 맏이를 사위로 보게되고, 키작은 남자에게 시집 안간더니 작은 남자에게 시집간 처녀, 요양병원 안 간다던 선배는 치매가 들어 일찌감치 요양병원으로 향하고, 100세를 장담할 만큼 건강했던 친구는 아홉 수에 걸려 69세에 심장마비로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으니. 말은 함부로 해서 안 됨을 알 수 있다.

나이들면 갖춰야 할 덕목이 ‘절제’가 삶의 가치가 되어야 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삶에 고루 적용되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조심’하라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 무엇보다 ‘말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수없이 내뱉는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활인의 말도 있지만 사람을 죽이는 살인의 말도 많다. 같은 말인데도 누구는 복이 되는 말을 하고 누구는 독이 되는 말을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익지서(益智書)에 여자에게는 네(女有四德)가지 칭송할 덕목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마음씨(始諸德)를 말하고, 둘째는 맵시(始諸容)를 말하고, 셋째 는 말씨(始語高)를 말하며, 넷째는 솜씨|始南工)를 말한다. 이것이 어찌 여자에게만 해당 되겠는가? 남자 또한 4 덕목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중에 단연 으뜸으로 꼽은 것이 말씨라 할 수 있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말로 좋은 씨를 뿌려야 한다. 초등생 어린이에게 “씩씩하고 멋지구나. 너는 미래의 장군감이다.”, “넌 말을 잘하니 변호사가 되겠구나." ”너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구나“ 이렇듯 말에 복을 담는 습관이 필요하다. 좋은 언어 습관은 '말씨'를 잘 뿌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철에서 중년 여인이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어쩜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다음 역에서 중년의 여인이 내리기 무섭게 “그냥 고우시네요, 하면 좋잖아. 늙어버린 것을 누가 몰라?” 라고 퉁명하게 뇌까렸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프랑스어: Jean-Jacques Sempé, 1932~ )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 Par avion』(1989)' 에서 뉴요커 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다. 

그들은 뻔한 얘기인데도 습관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 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준다고 했다. 이는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시로 받아 들여지고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격려해주는 대화의 효과를 높인다.

이를테면, 누가 “이번에 멕시코를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하면 옆에서 듣던 사람이“좋은 곳이죠. 나는 그곳을 두 번이나 가봤어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일단 김이 새게 된다.

이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정말요? 어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라며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준다. '아, 와'‘그래요, 그렇군요’ 같은 추임새로 상대를 신나게 해주는 뉴요커의 말 습관을 본받는다면 그들의 관계는 한층 더 돈독해질 것이다.

우리는 느낌표(!)와 물음표(?)를 얼마나 사용하는가? 자기를 앞세운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의 말에 이러한 부호를 찍어주기 어려워지게 된다.

오늘도 자신이 한 말을 돌아보면서 느낌표(!)와 물음표(?)가 인색하지 않았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 말에 감탄하며 나의 감정과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만큼 반갑고 귀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이란 닦을수록 빛나고 향기가 난다. 말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대화를 나눌 때는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 적어도 실언(失言)이나 허언(虛言)같은 말실수를 막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5. 절제하는 삶과 리더십

“넘치는 것 보다 모자라는 것이 낫다”는 격언도 있지만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 귀 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라 생각된다.

건강을 상실하는 경우 절제하지 못한 음주, 흡연, 식습관 등이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고, 절제하지 못한 소비가 늘 생활을 주름지게 만들며, 절제되지 못한 언어가 불화를 초래하고 신뢰를 깨뜨리며, 절제되지 못한 사업의 확장이 회사의 파산을 부르고, 절제되지 못한 욕망이 화를 부르며, 절제되지 못한 생활이 파탄을 초래하게 됨을 수 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에 전직 교육부 장관이었던 윌리엄 베네트가 쓴 ‘미덕 독본(美德讀本)’에서 10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으뜸으로 절제(節制)를 꼽고 있다. 그다음이 자비심, 책임감, 우정, 근로, 용기, 인내, 정직, 신의, 신념의 차례로 되어 있다. 고대 희랍에서도 좋은 시민의 도덕적 덕목으로 절도(節度)를 꼽기도 했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은 사건과 사고는 분별심을 잃고 절제력을 상실하는데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리더가 절제력을 잃고 감정이나 과욕에 의해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그 조직은 중대한 위기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좋은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자질을 개발하고 갖추도록 노력하는 시니어, 절제력을 잃지 않고 매사에 충실한 시니어의 리더십이 발휘되기를 소망해 본다. 

최승훈(kopax88 @hanmail.net)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18- )
•사)시니어벤처협회 고문(20- )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16- )
•한국산업교육협회 회장(17-18)
•생명보험협회 노후설계 전문강사(18- )
•평생교육사(91) •경영지도사(인사, 조직)(91)
•연세대 교육대학원 인적자원개발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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