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방광염, 콜센터 그리고 기저귀
[취재수첩] 방광염, 콜센터 그리고 기저귀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0.11.12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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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보여주는 콜센터의 암울한 오늘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이달 28일 개봉하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의 배경은 콜센터다. 콜센터가 간혹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묘사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단순한 공간적 배경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 속 콜센터는 공간적 배경을 넘어 영화의 주제를 담는 장치로 쓰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 속 콜센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현실을 뛰어넘는 아픔들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닭장처럼 꽉 막힌 공간에서 수십명이 근무하는 것은 그나마 현실적이다. 가장 충격적인 신은 방광염으로 인해 기저귀를 차고 근무를 하는 19살짜리 실습생의 모습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할까. 

너무도 비현실적인 모습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에 근거한 장면이라는 게 더 충격적이다. 감독은 실제로 취재 중 이런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장면들에 갈등 구조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영화적 과장이 녹아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콜센터 상담사들의 직업병 중 하나가 방광염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업무 특성상 자리를 비울 때는 반드시 보고절차를 거쳐야 한다. 화장실 가는 것 역시 자리를 비우는 일인 탓에 당연히 그에 해당된다. 이런 번거로움 탓에 상당수 상담사들이 자유롭게 화장실 가기를 꺼려하고 이는 결국 방광염을 부르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감정적 소모가 극심한 상담사들이 이런 일 때문에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비단 상담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극중 콜센터 센터장으로 등장하는 이 역시 계약직으로 파리목숨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단 직원부터 중간 관리자까지 콜센터 근무 인원들은 이렇게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콜센터 상담사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개선이 어떻고 대책이 나온다느니 하지만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올해 들어 몇몇 콜센터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으로 인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그때마다 여론은 콜센터가 코로나19의 집단감염지라며 앞다퉈 비난하기 바빴다.

물론 방역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콜센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런 곳에 날리는 옐로카드는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필수적일 것이다. 너무 자주 날려서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콜센터들이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애써온 것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비난이 마땅하다 쳐도 그게 콜센터 상담사에게 돌아가서는 안 될 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난의 화살을 날릴 때에도 묵묵히 맞은 바 소임을 다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고객의 목소리에 미소로 화답하는 일을 해주는 그네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편해질 지는 너무도 자명하지 않을까. 

기저귀는 아기들의 것이다. 이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상식이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일 때문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기저귀를 차는 어른들이 생기는 사회라니. 무슨 핑계를 갖다부쳐도 그건 비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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