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김만재위원장] 원칙과 소신으로 200만 조합원 앞으로 돌격!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김만재위원장] 원칙과 소신으로 200만 조합원 앞으로 돌격!
  • 김용신 뉴스리포터
  • 승인 2021.02.0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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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인터뷰 시리즈1] 정면돌파, 거침없는 돌격의 김만재위원장!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의 혁신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제1노총 복원
전국금속노동조합연대 김만재위원장 캐리커쳐

[아웃소싱타임스 김용신 뉴스리포터]  한국노총 산하 산별연맹 중 최대 규모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의 수장 김만재위원장의 첫 인상은 한눈에도 '노동운동을 많이 한 강한 남자'였다. 그의 풍채나 강단있는 눈빛이 그러한 이미지를 풍겼다. 그런데 이야기를 진행할 수록 풍기는 이미지가 달라지는게 아닌가. 인터뷰 말미 김만재위원장은 '강한 남자'라기 보다는 꿈과 위상이 높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다가왔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한 그와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 삶의 가치관은
“정의에는 합리적으로 타협하였으며,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았다.”

김만재위원장은 “나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으로 삶을 살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너무 강성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어 아쉽다”면서도 ”나 혼자라면 좋은게 좋다고 할수 있지만 연맹 수장의 입장에서는 타협하여야 하는 일과 타협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으며, 원칙과 소신으로 판단하고 진행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김 위원장은 원칙과 소신은 삶의 철학이다. 원칙에 약간의 유연성이 발휘될 수는 있으나, 원칙이 무너지면 중심을 잡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소견이다. 그는 노동운동의 큰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소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 노조활동을 하게 된 동기는
경기도 이천 태생으로 첫 직장인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서 입사했다. 근무 중 당시의 현장 활동에 불합리한 상황이 너무 많아 개선책을 찾고 있던 중 힘없는 노동자를 위해 누군가는 이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겠다는 판단으로 노조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노동현장에서는 인격적인 모독과 강제 근로, 관리자들의 갑질 등이 만연하고 있었는데 노조활동에 눈 뜨고 나서부터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조언과 도움을 주기 위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 첫 시작이었다. 이후 지금에 이르러서는 조합원들에게 희망과 꿈을 펼쳐주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당시 현대그룹의 노조탄압은 전국적으로 악명이 높아 회사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고자 많은 이들이 숨어서 활동을 해야했다. IMF때는 위원장을 맡아 활동 했는데 그때 사회적 분위기가 국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으로 근로자의 일방적인 양보를 많이 요구했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단체조약이나 근로조건을 법대로 지키기 위해 또 노동자의 삶을 대변하고자 불철주야 뛰어 다녔다.

그는 "당시 위원장을 하고 있는 시기에는 회사의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집으로 자주 찾아와 부모님에게도 노조활동 만류를 종용하였고 상시적인 주변 감시자가 2~3명이 감시 활동을 심하게 하였다"며 "최소한의 노동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임금인상을 요구하여도 역으로 복리후생을 반납해달라는 사측의 요구로 조합원들과 협의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 연맹에서의 활동은
노조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회사의 경영진과 관리자를 대상으로 밤샘 협상을 하였지만, 회사와 불편한 싸움을 하다보니 결국에는 임기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연맹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연맹 조합원들과 연맹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시 한 번 투쟁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단결과 투쟁이 적힌 머리띠를 두른 그의 눈빛에선 강인한 인상이 풍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느꼈던 그의 이미지와 자못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은 "연맹노조에서의 활동은 구성원인 조합원의 근로조건, 고용문제, 고충처리, 구조적인 문제, 조합원의 민원 등 노동운동의 사회적 책임과 역활에 대해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회고한다.

그 중 특히 어려웠던 문제는 양극화 해소 문제였다. 주로 자본주에 대한 문제로 사회 안전망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다 보니 어느 한쪽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더군다나 IMF 이후 심화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문제로 이어졌다. 그가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기존의 현장 투쟁과 더불어 정치적 투쟁을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비정규직 문제를 노동계에서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김만재 위원장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도 결국은 기존 노조의 대응이 부족해 늘어났다는 자책감이 컸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자책감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동운동을 폭 넓게 전개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 향후 계획은
초기 연맹 위원장 시기에는 조합원이 2012년도 8만 5천명이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202020 플랜' 계획하여 2020년까지 20만 조직화를 위해 포스코, 삼성그룹 등 사내하청 등으로 조직을 확대했다. 현재 연맹 활동은 22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연맹 위원장만 9년째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동안 단위노조는 540개, 조합원수는 15만명으로 한국노총 산별중 최대 산별의 수장이 되었다. 

김 위원장 어깨에 많은 부담이 실린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좀 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현재 연맹의 조직 확대화를 위해 대위원대회에서 기존 노조에서 새로운 1노조만들기 운동, 공단을 중심으로 활동, 불법파견 문제 등 도급에 의한 고용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현장에서 발로 뛰며 노동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국회 환노위 송옥주위원장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하청의 기본적인 도급관계가 2년으로 되어있어 업체가 변동될 때마다 고용관계가 불안해지지 않도록, 기업이 고용과 근로조건 승계에 대해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이는 도급관계가 끝나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서 직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취지다.

김 위원장은 "국내 산업이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기업간의 양극화, 노동자간의 양극화, 수익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연맹의 역활도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조합원들의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금융서비스와 연맹차원의 휴양, 치유, 힐링, 복지혜택. 퇴직과 은퇴후의 삶에 대한 안정적 대책이 필요하며 앞으로는 자체 개발하여 운영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부족한 부분은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고칠 부분은 고쳐야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강함' 또는 '강단'보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더 먼저 떠오르게 한다.

연맹차원에서 노동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도 모색 중이다. 김 위원장은 "단체협약을 통해 조합원의 건강문제, 교육문제, 주거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고령화 시대을 맞이하여 퇴직하고서도 일하지 않으면 않되는 현실을 고려하여 연맹차원에서의 계획도 수립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몇 가지 불편한 질문에도 솔직한 소견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먼저, 외국인노동자를 현재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노조가 많은 부분을 지적하자, 그는 부족한 면이 있음을 즉시 인정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 노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대한민국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한 부분은 아직은 인식이나 정책적인 면에서 부족하다"며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적 안정망을 확충하고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연맹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조합원 규모에서 현재 앞서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고쳐서 더욱 현장 중심으로 노력하여 제 1노총의 자리로 올려놓겠다"며,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김원장의 기개가 드러나는 답변이다.

김만재 위원장은 "하지만 전국의 2,000만 노동자 중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합쳐 12%를 점유하고 있는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므로 앞으로 한국노동계 전체의 30% 조직화를 목표로 다시 한번 더 앞으로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또한 "혁신적 활동을 통해 현장의 조합원을 위해 더욱 열정과 노력으로 활동해야 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위원장에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는 오히려 그가 현장에서 분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위원장은 한국노총 위원장을 2번 도전했으나 아주 근소한 차이로 낙선을 하여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남겼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1년에 10만Km를 직접 운전하며 더욱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노동운동은 현장에 답이 있다' 그의 지론이 10만km라는 숫자에 담겼다.

김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은 연대를 기본으로, 남 탓을 하는 것보다 항상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자문하며, 정부의 정책들은 먼저 노동계 입장과 서민의 입장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자본들도 사회적책임을 공감하고 사회공헌으로 협력하여 코로나19로 인한 이 어려운 상황을 모두 함께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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