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 "나만 아니면 돼!"와 노파심(老婆心)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 "나만 아니면 돼!"와 노파심(老婆心)
  • 편집국
  • 승인 2021.01.26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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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벌써 한국 생활을 한 지가 7년째 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훌쩍 넘겨 외국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내가 태어난 곳이고 청춘을 다 보낸 고국이지만 내가 살았던 때와는 달라진 면이 많았고 심지어는 낯설기까지 했다. 

사회적 발전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로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잃어버렸거나 변질한 부분도 있어서 유감스럽기도 했다. 

그중의 하나가 남에 대한 배려, 사랑, 관심 그리고 공감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경향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내가 놀랍게 변한 한국 생활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을 때 접했던 충격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소위 ‘묻지 마 폭행’이었다. 아무 일면식이 없고 이해관계도 없는 지나가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폭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이런 종류의 사건은 있지만 인종 차별로 인한 폭행이 대부분이지,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해코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상황을 보고서도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한국 사람들의 마음이 이토록 각박해지고 남의 어려움을 못 본 체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오래전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보았던 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자꾸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재밌게 보았던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이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새로운 포맷으로 요즘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때는 몇몇 연예인들이 1박 2일 동안 함께하며 게임을 잘하거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면 그에 따른 포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주거나,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받지만, 틀리거나 잘 못 하면 벌칙을 받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중에 기억나는 벌칙으로 추운 겨울 밖에서 텐트를 치고 야외 취침을 하거나, 냄새부터 역겹고 먹기 힘든 까나리 액젓을 먹는 것 등이 있었다. 

벌칙을 정할 때마다 프로그램을 중추적으로 이끌고 나가던 모 연예인이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을 자주 썼고, 함께하는 일행들도 모두 다른 동료가 벌칙을 받든지 말든지 어떻게든 나만 안 걸리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그 연예인은 매번 벌칙 받는 것이 두려워 “나만 아니면 돼!”라고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할 때마다 웃음이 나왔고, 그렇게 빠져나가려는 게 얄미워 속으로 벌칙에 걸리길 바라면서 프로그램에 더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프로그램 제작자의 의도는 주말 저녁 모여있는 가족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시청률을 높히자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무심코 웃고 넘겼던 그 말이 ‘묻지 마 폭행’을 접하면서 새삼 머리에 맴돈다. 사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은 몹시 이기적이고, 몰염치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사회적인 말이다. 

또한 그 말은 남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이 우선이고, 사회와 조직을 위해 하나가 되어 희생하기보다는 제 몸만 사리고 아끼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제일 많이 듣고 배운 것이 충효(忠孝) 사상이었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충효 정신은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기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必死卽生, 必生卽死)라고 하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희생하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감동이 전해진다. 

하지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공허한 외침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폭행당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신고하거나 말리기보다는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듯이 그 자리를 피해 간다든지, 이웃에 홀로 살던 사람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나도록 방치되었다가 발견되는 일과 같은 사회적 현상을 접할 때, 나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극단적인 이기심과 무관심을 심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어떤 일이 닥쳤을 때 함께 관심을 두고 해결하려는 생각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갖게 되어, 이 사회가 더 각박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하지만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을 해대는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웃고 성장한 우리 아이들이 두터운 형제애 속에 서로 배려하고, 나라를 생각하며,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내 생각은 너무 과민한 노파심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공연한 기우이기를 바란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더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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