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7] “괜히 한다고 그랬나?”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7] “괜히 한다고 그랬나?”
  • 편집국
  • 승인 2021.04.27 0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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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생방송 출연기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방송 촬영일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긴장과 걱정이 조금씩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응원과 격려를 내심 기대하며 방송 출연 문제를 얘기했더니 마뜩잖아하던 아내의 반응으로 사기가 꺾여 더욱 마음이 심란해졌다.

재취업컨설턴트들의 단체 카톡방에 한 회원이 E 방송국에서 중장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단 해봐요”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니어 모델을 모집하고 있으니 많이 도전해 보라는 공지를 올렸다. 

구체적인 자격 조건도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이것저것 재보지도 않고 공지에 적혀 있는 작가의 연락처로 연락을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문자로 참가 의사와 자세한 안내를 받고 싶으니 연락을 바란다고 메시지를 남기고 온종일 기다리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전화를 거니 프로그램 작가가 받았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담당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니 더 구체적인 안내를 바란다고 하자 지금 회의 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으니 오늘 중으로 연락을 드리겠다는 짧은 말만 주고받았다. 

그날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전화가 아닌 문자가 왔다.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여러 사람에게 보낸 단체 문자인 것 같다. 참여를 원하는 지원자들이 너무 많아 일단 프로필, 사진, 나이, 지원 동기 등을 메일로 보내주면 담당자들이 의논해서 연락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처럼 중년의 나이에도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책상에 앉아 요구하는 정보들을 보내주고 며칠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결정되는 대로 바로 연락을 달라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공지에 올라온 일정을 보니까 촬영은 21일 수요일이지만, 그전 토요일인 17일에 VCR 촬영이 있을 거라고 되어 있어서 늦어도 출연자 확정은 15일이나 16일에는 되어야 할 텐데 16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그래서 아마 다른 사람이 확정되었나 보다 하며 아쉬운 마음을 갖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18일인 일요일에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최종 출연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포기하고 있던 차라 놀랍기도 하고 선발됐다고 하니 기쁘기도 했다. 

VCR 촬영은 코로나로 인해 어려우니 집에서 평소 입고 다니는 옷차림과 옷장 등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한다. 방송 컨셉이 칙칙하고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는 일반인을 멋지고 세련되게 변화시켜주는 것이니까 될 수 있으면 후줄근하게 입고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 컨셉에 맞는 옷을 찾다가 마침 얼마 전에 방송을 통해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긴 팔 티셔츠와 츄리닝 스타일의 바지를 세트로 구매한 것이 생각나서 그걸 입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어 보냈다.

촬영일이 다가오니 조금씩 긴장도 되고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다. 처음 출연하는 TV 방송일 뿐만 아니라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움츠러 드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뉴질랜드와 미국에 사는 자녀들에게 출연 소식을 전하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니까 시간이 맞으면 보라고 연락을 했다. 또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도 광고했다. 자랑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고 다짐하려는 생각이었다.

드디어 촬영 당일. 본 생방송 촬영은 오후 1시지만 의상 점검도 해야 하고, 분장도 해야 하고 리허설도 있으니 아침 9시까지 오라고 한다. 

일산 E 방송국까지 2시간이 걸리니까 여유 있게 2시간 30분 걸리는 거로 잡으면 늦어도 6시 30분에는 출발을 해야 하고, 매일 하는 온천욕 시간을 한 시간 잡고, 준비하는 시간을 30분 잡으면 아침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계산을 하고 새벽같이 하루를 시작했다.

계획대로 방송국에 가는 도중에 작가에게서 지상 주차장에 프로그램 팻말이 세워져 있는 곳에 주차하면 된다는 주차 안내 문자가 왔다. 예약된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 마치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송국 입구에 들어서니 작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들었지 실제로 얼굴을 보긴 처음인데 마스크를 낀 웃음 띤 얼굴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코로나로 인해 문진표를 작성하고 안내 데스크에서 내 이름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20층 건물에 우리 프로그램 촬영 장소는 3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주치는 스태프들마다 인사를 해온다. 나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은 내 영상을 통해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촬영 동의서와 정보 공개 동의서를 작성하고, 내가 입을 의상을 맞춰 보았다. 한 벌은 감색 재킷에 라운드 티였고, 다른 한 벌은 브라운 계통의 재킷에 흰 와이셔츠와 청바지였다. 

나는 늘 입던 감색 재킷이 맘에 들었지만, 다른 스태프들은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기는 밝은 브라운 계통의 의상이 좋다고 그걸로 가자고 한다.

의상이 결정되자 분장을 하러 갔다. 수많은 연예인이 다녀갔을 분장실에는 다양한 색깔과 가지가지의 분장 도구가 놓여 있었다. 대학교 연극 공연을 했을 때 분장을 한 경험이 있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고 옛날 추억이 떠오르며 오랜만에 설렘을 느낀다.

때맞춰 내 머리를 손질할 압구정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유명한 L 헤어 디자이너가 왔다. 가수 홍진영을 닮은 긴 생머리의 L 헤어 디자이너는 머리숱이 적어 괜찮겠냐는 내 말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여러 방송 출연 경험자로서 나에게 친절하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자기가 하는 대로 맡기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대본을 갖고 리딩을 한다고 하더니, 방송 전 간단하게 출연자 동선 파악 및 부분부분 리허설만 한다. 대학 연극 공연 때 수없이 대본 리딩을 하던 때가 떠올라 이래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방송 전 간단하게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분장 손질을 한 후 생방송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촬영 카메라 3대가 좌우 그리고 중간에 놓여 있고, 연출자, 조연출, 카메라 감독 및 보조, 방송 작가 등으로 출연자보다 더 많은 스태프가 카메라 뒤에 숨죽이고 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모두 숨소리조차 죽인 채 긴장한다. 연출의 신호가 떨어지자 사회자들의 얼굴과 목소리 톤이 금새 바뀐다. 중간중간 출연자들의 실수도 노련하게 넘긴다. 역시 프로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서 같이 출연할 L 헤어 디자이너가 자꾸 자신의 얼굴을 체크한다. 머리도 가다듬고 얼굴도 이리저리 살펴본다. 방송에 이쁘게 나오는 사진을 찍어 홍보용으로 쓰려나 보다. 

드디어 내 차례. 소개 부분에 나이와 이름만 밝히는 밋밋한 멘트를 작가의 허락을 받아 “나이아 가라, 나이아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란 노래를 한 소절 하고,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는 XX 살의 한상익이라고 합니다.”라고 멘트를 하니까 박수와 함께 호응이 좋다.  

첫 멘트가 잘 풀리니 남은 촬영도 실수 없이 잘 진행되었다. 먼저 L 헤어 디자이너가 내 머리 스타일을 바꿔서 변화를 주고, 잠시 나가서 준비된 옷으로 갈아 입고 확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는 촬영이었다. 

우선 2대 8 가르마를 없애고 풍성하게 머리를 올리며 변화를 준 것만으로도 젊어진 것 같았고, 밝은색 브라운 재킷과 발목이 드러날 정도로 짧게 올려 입은 청바지와 하얀색 뿔테 안경이 마치 시간을 되돌려 놓은 것 같았다.

촬영을 마치고 꺼놓은 휴대폰을 켜니 가족 단톡방에 난리가 났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지만 이참에 연예계와 모델계로 진출을 해보라는 등 모두 칭찬과 격려의 말에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방송을 지켜보며 녹화를 한 친구는 고맙게도 내가 나오는 부분만 편집해서 보내주면서, 젊어져서 좋겠다고 맘에 없는 소리를 해댄다.

촬영을 마치고 방송국 정문까지 작가의 배웅을 받으며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방송 출연이라는 색다른 경험에 대한 재미와 뒷얘기로 며칠은 즐거울 것 같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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