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마오쩌둥의 참새와 호주 토끼
[전대길의 CEO칼럼] 마오쩌둥의 참새와 호주 토끼
  • 편집국
  • 승인 2021.05.1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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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일언 중만금(指導者一言 重萬金)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주도한 ‘대약진운동(1958년~1960년)’ 때 3,000만 명의 중국인이 굶어 죽었다. 이는 마오쩌둥의 말 한 마디가 불씨가 되어 발생한 끔찍한 최악의 참화(慘禍)다. 사건의 전말(顚末)은 이렇다.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농촌을 순시하다가 참새를 노려보며 “저 참새는 해(害)로운 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당시에는 중국 인민들의 식량(食糧)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소중한 곡식을 참새가 쪼아 먹는 것을 본 마오쩌둥이 한 마디 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혁명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라서 중국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의 한 마디는 중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잇달아 ‘참새 섬멸 총 지휘부’가 설치되었으며 중국 국영 연구기관들도 ‘참새 1마리가 1년에 곡식 2.4kg을 먹어치운다’고 중국인들을 선동했다.    

<중국인들의 참새 소탕 전쟁>
<중국인들의 참새 소탕 전쟁>

“참새만 박멸하면 해마다 700,000명이 먹을 곡식을 더 수확할 수 있다”면서 마오쩌둥을 극찬(極讚)했다. 중국인들은 참새 소탕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10억 명의 중국인들이 냄비와 세숫대야를 두드리며 참새를 쫓아다녔다. 도망을 다니던 참새들이 지쳐서 땅바닥에 떨어져 죽어나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게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감히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마오쩌둥의 명령은 중국 전역에서 일사불란하게 실행되었으며 그 많던 참새들이 멸종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중국 인민은 참새가 사라지면 곡식 수확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 등 해충들이 창궐(猖獗)했다. 각종 농작물이 초토화 되어 흉년(凶年)이 들었다. 

조물주가 만든 자연의 법칙인 ‘먹이사슬’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자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신중(愼重)해야 하는지를 잘 일깨워 준다. 중국 인민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의 한마디 말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는 비극적 재앙(災殃)이 뒤따랐을 뿐이다. 

약 60년 전에 중국에서 있었던 <마오쩌둥과 참새 이야기>를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미래에 닥쳐 올 어려움과 재난(災難)을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미래의 후손들에게 고난(苦難)의 짐을 지울 수도 있다.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염두에 두고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중요한 정책을 재검토했으면 좋겠다.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직언(直言)을 하지 못하고 담장 위에 엎드려 좌우로 눈치만 살피는 지식인들이 없길 바란다.    

이와 유사한 재미있는 토끼 이야기가 있다. 
호주 땅에는 원래 토끼가 없었다. 1859년, 영국이 고향인 ‘토마스 오스틴’이 영국에 사는 친척에게 호주로 토끼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연유로 영국의 야생 토끼 24마리가 호주에 들어왔다. 

그런데 호주인들은 암컷 토끼가 두개의 자궁(子宮)을 가지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암컷 토끼는 임신 중에도 또 다시 임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에 많은 토끼 새끼를 낳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끼를 집에서 사육하던 중에 집토끼들이 야생으로 도망쳤다. 호주에는 여우, 늑대, 독수리 같은 토끼의 천적(天敵) 동물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있더라도 그 개체 수가 많지 않았다. 

겨울철에도 춥지 않은 날씨와 토끼들의 강력한 번식력으로 인해서 급증(急增)한 토끼들이 호주 들판의 풀들을 뜯어먹었다. 어떤 때에는 양(羊)이나 소를 키우는 목장에 토끼 때가 침입해서 가축의 사료까지 몽땅 먹어치웠다.                     

<호주인 들의 토끼와의 전쟁>
<호주인 들의 토끼와의 전쟁>

​이렇게 토끼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토끼로 인한 초원과 농작물 피해가 극심했다. 이런 재해와 관련해서 1901년, 호주 정부는 3차례에 걸쳐 토끼 침입을 막는 3,000km의 울타리 방어벽을 설치했다. 그

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토끼의 개체 수는 줄어들지 않고 기하급수적으로 폭증(爆增)했다. 1920년에는 낡은 방어벽 울타리가 토끼 때에게 뚫렸다. 호주인 들은 토끼에 대한 공포에 떨었다.

그러던 중 1929년 호주에 대공황이 발생했다.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가 늘어났다.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죽는 아사자(餓死者)가 늘어만 갔다. 이럴 때 호주인 들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토끼를 잡아서 식용으로 삼는 호기(好機)로 삼았다. 그런데도 대공황과 토끼와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토끼 개체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번엔 호주 정부가 토끼의 천적인 여우를 호주로 새로 들여왔다. 
초기에는 여우 때문에 토끼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뿐이었다. 뒤이어 여우가 문제로 등장했다. 여우들의 개체수도 대폭 늘어났다. 이로 인해서 다른 동물들이나 가축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토끼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1950년에 호주 정부는 ‘점액종(粘液腫) 바이러스(Myxoma Virus)’를 퍼트렸다. 이로 인해서 약 6억 마리의 토끼의 개체 수를 줄일 수 있었다. 

<마오쩌둥과 참새>와 <호주 토끼>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조물주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일지라도 ‘자연의 법칙’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고   함부로 말을 하면 자연과 인류에게 재앙(災殃)을 잉태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황소개구리, 베스, 붉은 귀 거북등 외래종을 들여온 다음에 토종 민물고기가 씨가 마르는 등 환경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 박 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쥐잡기 운동’을 하던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잡은 쥐꼬리를 잘라서 학교 선생님께 냈다.

그 후 쥐의 개체수가 줄었으나 이는 국내 여우의 멸종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모든 위험요소를 전부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이 상호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파급효과를 신중하게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보다 “지도자일언 중만금(指導者一言 重萬金)”이지 싶다. 우리나라의 중대한 국가 정책도 사전에 충분한 예비타당성 조사와 검토를 거쳐야 한다. 

절차를 무시하면 대형사고와 재난이 뒤따를 수 있다. 사전에 착오가 없는지 주도면밀한 사전 실험(Pilot)을 통해 안전을 확인한 후에 지도자가 말해야 한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인 ‘Jean-Jacques Rousseau’는 “자연은 절대로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배신하는 것은 항상 우리 인간들이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자(自)+그러할 연(然)’자의 ‘자연(自然)’의 순리(順理)를 우리 모두 지키자.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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