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26] 오지랖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26] 오지랖
  • 편집국
  • 승인 2021.06.29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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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

그래 한때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해
긴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

어허허 어허허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한솔이 작사하고 진성이 곡을 붙여 부른 '태클을 걸지 마'라는 노래 가사다. 
이 노래는 트바로티라고 불리는 가수 김호중이 ‘미스터트롯’이란 경연대회 예선전에서 불러서 이름을 알린 노래로써 그 후 입소문을 타면서 역주행하고 있다. 

같은 평가단에 있었던 동료가 진성에게 이제 이 곡을 뺏겼다고 했고, 원곡자인 진성도 자신보다 더 잘 불렀다고 극찬을 할 만큼 잘 불러, 평가단으로부터 만점을 받았던 노래다. 

경쾌한 리듬을 제대로 살리면서 성악으로 단련된 풍부한 성량으로 성악 색채를 빼고 트로트를 맛깔나게 불러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있지만, 이 노래에 담긴 가사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품에서 자라면서, 고등학교 다닐 때 방황도 했었던 가수의 삶과 맞아떨어져 사람들로부터 더 큰 공감을 얻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지난 삶이 어땠는지 묻는 것은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때론 상대방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큰 어려움이나 고초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도 있겠지만, 말 못 할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기 싫은 사람에게 어떻게 살았냐고 묻는 것은 아픈 상처를 헤집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물어보지도 않고 지레 어떻게 살았을 거라 예단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니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아마 하루를 보내면서 자신보다 남을 더 많이 보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관심을 두게 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우리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사적인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다. 나이, 결혼 여부, 직장, 거주지, 출신 학교 등등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에 관심이 있고 심지어 스스럼없이 묻기도 한다. 더러는 그런 접근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는 곳이 어딘지, 어느 학교 출신인지 또는 고향이 어딘지를 묻는 것은 조금이나마 공통점을 찾아 유대 관계를 쌓으려는 의도라고 좋게 봐줄 수도 있지만, 결혼 여부를 묻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특히 여성들에게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히 결례가 된다. 요즘은 나이 많은 남성 중에도 결혼을 하지 못한(안 한 것이 아니라) 사람도 있기 때문에 결혼 여부를 묻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일전에 어떤 방송 프로에서 출연자를 소개하면서 나이가 많으니까 당연히 결혼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느냐고 묻다가 아직 미혼이라는 말에 사회자가 몹시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회자가 신중하지 못했고 해당 출연자에게 큰 결례를 범한 것이다.

우리 말에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이 있다. 
‘오지랖’은 원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그래서 “오지랖을 여민다” 또는 “오지랖을 걷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은 전혀 다른 뜻을 갖는다. 이 말에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한다”는 뜻도 있고 “염치없이 행동하는 면이 있다”라는 의미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것도 인간성 문제와 연루될 수 있기 때문에 좋지 않지만,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고 관여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한국민이 지닌 ‘정’(情) 이라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가깝게 지냈던 뉴질랜드 친구들을 기억해 보면 오지랖이 넓다고 할 만큼 다른 사람들 일에 쓸데없이 관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비근한 예로, 내가 잘 알고 지냈던 한 뉴질랜드 친구는 딸이 고등학교 다니면서 같은 학교 남자 친구와 사고를 쳐서 아이를 낳았다. 이 일은 딸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딸을 잘 알고 지냈던 친구들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딸 아버지가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입양하여 기르기로 했을 때, 친구 중 누구 하나 쓸데없이 참견하면서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친한 친구라는 명분으로 주위 시선도 있고, 딸의 장래도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오지랖이 넓지 않더라도 한마디 거들려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입양된 그 아이는 잘 성장하여 얼마 전에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도 꾸렸으니, 친구들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직장 생활할 때나 학교 다닐 때는 직장 상사나 선배가 조언이나 권고의 말을 해주면,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 상사나 선배가 오지랖 넓게 부하 직원이나 후배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하면서 원하지도 않는 조언이나 권고를 하거나, 직책이나 나이 또는 권위를 앞세워 지적하려 들면, 의도가 좋더라도 ‘꼰대’ 소리를 듣는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늙은이를 은어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니, 괜히 오지랖을 떨다가 늙은이 취급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십중팔구 이런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너나 잘하세요.”
오지랖은 여미고 살아야 하는 시대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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