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눈치 보지말고 쓰라던 가족돌봄휴가, 쓰고나니 불이익 걱정
[이슈] 눈치 보지말고 쓰라던 가족돌봄휴가, 쓰고나니 불이익 걱정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1.10.12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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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휴가 꺼리는 기업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
회사 눈치, 동료 눈치 보기 급급해 마음 놓고 쓸 수 없어
코로나확산과 함께 불거진 가족돌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가족돌봄휴가 제도의 실효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코로나확산과 함께 불거진 가족돌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가족돌봄휴가 제도의 실효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녀 돌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위해 등교를 가급적 절제하고 재택 인터넷 수업을 실시하면서 안 그래도 어려움을 겪던 자녀 돌봄의 난맥상이 크게 부각된 것.

이에 정부는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1월, 가족돌봄휴가 제도를 신설하고 이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사업주가 이를 거부할 경우 과태료 부과 등 제재 방침까지 언급하며 시행에 앞장섰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로 인한 불이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돌봄의 주체 격인 여성들이 돌봄휴가 사용으로 인한 불이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개선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정책과 현장의 괴리가 여전해 자칫 하다간 보기만 좋고 먹을 수는 없는 떡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 사업주 불응시 과태료 부과 등 제재에도 미지근
가족돌봄휴가는 1인 이상 사업체의 모든 노동자의 경우 가족 돌봄을 위해 연간 최장 90일의 휴가를 쓸 수 있는 제도다. 1회 사용 시 최소 30일을 써야 하고 무급휴가이지만,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만 8세 이하 자녀의 돌봄을 위해서 한시적으로 1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5일에 한해 하루 5만원씩 지원키로 했다.

즉, 맞벌이 부부의 경우 가족돌봄휴가를 순차적으로 쓰면 최장 20일을 자녀 돌봄에 사용할 수 있으며, 지원금도 최대 합산 시 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그러나 아무리 무급휴가라지만, 민간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 선뜻 10일간의 휴가를 내기란 쉽지 않다. 인원이 적은 중소기업의 경우 더 눈치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두아이를 키우고 있는 정모(32·여)씨는 "가족돌봄휴가를 쓰고 싶지만 동료들 눈치도 보이고, 회사로부터 혹시 모를 불이익이 있을까 봐 사용하기가 꺼려진다"며 "아이들은 부모나 친척들에게 맡기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휴가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씨의 사례처럼 상당수 직장인들은 가족돌봄휴가 신청 자체를 어려워하고 있다. 정부의 시책이니만큼 대놓고 반발할 수는 없지만 기업 입장에선 안 그래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인원수가 준 경우가 많아 기존 인력의 부재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직간접적인 압박감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부 역시 이런 흐름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는 사업주가 가족돌봄휴가를 허용하지 않거나 직장 내 눈치 등으로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게되는 경우, 가족돌봄휴가 사용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면 신고를 할 수 있게 한 것. 

이를 위해 정부는 가족돌봄휴가를 실시하지 않거나 이용에 불편을 주는 사업장을 신고하는 '가족돌봄휴가 익명신고센터'를 지난해 3월 한 달 동안 운영했으며, 다음달인 4월부터는 '휴업·휴직·휴가 익명신고센터'로 확대 개편해 운영 중이다. 

휴가와 관련한 피해 구제를 장려하기 위해 닉네임과 같은 익명 정보로도 신고가 가능하고 신고자의 개인정보와 신고내용은 사업장 지도 과정에서 철저히 비공개토록 ‘익명신고 시스템 처리지침’에도 명시했다.

신고가 접수된 사업장에 대해서는 근로감독관이 직접 사업장에 유선 등으로 지도하며 만약 시정되지 않으면 신고인의 동의를 얻어 정식 사건으로 접수하고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의지가 강력하다는 의미인데, 그 의지만큼이나 제도 자체가 원활히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관련된 후속 조사에서 부정적인 징후가 너무도 많이 발견된 때문이다.

■ 여성 70%, 가족돌봄 시 직장 내 불이익 두려워
제도 도입의 당위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실제 결과는 그와 비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접수된 피해 건수에 비해 개선된 건수는 미미했던 것.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그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가족돌봄휴가 익명신고센터 운영 결과' 자료에 따르면 3월에만 총 315건이 접수됐으며, 개선이 완료된 경우는 43건인 13.6%에 그쳤다. 이 외에 사업장에 적극적 참여를 요청하는 '지도 후 종결'이 98건, 단순 문의인 경우를 포함한 ‘제도 안내’가 173건이었다.

신고자가 종사하는 사업장 규모별 가족돌봄휴가 피해신고 현황을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 비중이 26.6%로 가장 높았으며, 10인 미만이 24.1%, 10인~300인이 19.7%였다. 그 중에서 개선이 완료된 것으로 확인된 전체 43건 중 39건이 300인 이상의 사업장이었다. 300인 미만 사업장은 3건이었다.

결국 가족돌봄휴가가 절실히 필요한 중소기업에서의 효율이 훨씬 적었던 셈이다. 이래서야 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근로자들 스스로 휴가 사용을 꺼리고 있는 것도 개선할 부분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가족 돌봄 휴가 사용이 결국은 직장에서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조사도 있다.

한국노총의 조사결과, 여성 10면 중 7명이 가족돌봄에 따른 회사의 불이익 처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공 한국노총
한국노총의 조사결과, 여성 10면 중 7명이 가족돌봄에 따른 회사의 불이익 처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공 한국노총

지난 3월, 한국노총은 코로나19로 인한 여성 노동자의 어려움과 직장 내 성별격차를 알아보고자 2021년 직장 내 성 평등 조직문화 실태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많이 향상되었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격차가 벌어진 남녀간의 격차를 알아보고자 진행된 이번 조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긴급한 가족돌봄이 지속될 시 직장 내 불이익을 우려하는 목소리의 비중이 꽤 높게 나온 것.

특히 남성보다 여성의 경우가 더 심각했다. 남성이 53.8%, 여성은 70%로 남자보다 여자가 불이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여성은 실질적인 불이익 경험비중이 다소 낮지만 불이익에 대한 우려는 매우 크게 느낀 것이다. 주로 직급이 높은 경우 업무변경, 낮은 고과평가, 진급누락 등 실질적인 불이익의 경험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직급이 낮을수록 불이익보다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신입사원 여성은 실질적인 불이익에 대한 경험은 적지만, 불이익에 대한 우려는 매우 높게 느끼는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에 비해 금융, 항공, 의료 등 민간부문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런 불이익을 무릅쓰면서까지 가족 돌봄을 진행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란 걸 여실히 보여준다. 심각한 저출산, 그로 인한 경제인구의 감소가 해마다 심화되는 현 시점에서 가족 돌봄을 담보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언 발등에 누는 오줌은 잠시나마 한기를 걷어갈 뿐, 영구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정부는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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