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6] 호칭에 대하여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6] 호칭에 대하여
  • 편집국
  • 승인 2021.09.07 07: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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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이모,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언니, 여기 밥 추가요.”

지금은 식당 식탁에 호출 벨을 설치해 놓은 곳이 많아서 도움이 필요할 때 벨을 누르게 되어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식당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말들이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친숙한 호칭들이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들으면 손님과 직원이 모두 가족들인가 혼동할 수 있고,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 현상일 것이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어릴 때 누나를 언니라고 부르곤 했다. 그래서 ‘언니’라는 호칭은 익숙하고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이모’는 다르다. 

어머니 형제로 이복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지만, 지방에 떨어져 살고 있고 자주 왕래가 없어서 ‘이모’라고 불러본 기억이 별로 없다. 반면에 아버지 여동생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고모’라는 말은 자주 사용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이모’라는 호칭이 낯설다. 

그런데도 나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고모’라는 말보다 ‘이모’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문화심리학자인 한민은 ‘고모’보다 ‘이모’가 더 편한 이유를 한국이 전통적으로 모계 중심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 유교 사회가 정착되기 전까지 한국은 모계사회였다고 한다.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장가간다’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나라 전통적 결혼제도가 남자가 여자 집으로 들어가 살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분가하는 데서 나온 표현이라는 것이다. 

율곡 이이(李珥)가 자란 집이 강릉 오죽헌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신사임당의 친정이고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에게는 처가였던 것이 이를 잘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남자가 장가가서 처가에서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풍습은 고구려 서옥제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 보면, 고구려 사람들은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가서 장인에게 결혼 허락을 구하고, 허락이 내려지면 여자 집 한 켠에 서옥(壻屋: 사위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 전통적 정서 때문인지 고모 집보다 이모 집이 편한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처럼 호칭이 다양하고 잘 발달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호칭의 종류를 ‘이름 호칭어’(이름에 ‘씨’ ‘님’을 붙여 부름), ‘직함 호칭어’(성이나 이름 뒤에 직함을 붙여 부름), ‘친족 호칭어’(친족 관계를 나타내는 명칭을 사용하여 부름), ‘대명사 호칭어’(이름 대신 자네, 자기 등과 같은 대명사를 사용하여 부름), ‘통칭적 호칭어’(아줌마, 아저씨 등) 등으로 구별하고 있다. 

우리는 친척 모임이나, 사회생활 또는 대인 관계에 있어 이 호칭들을 적재적소에 알맞게 사용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고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여겨진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호칭이 너무 다양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애를 먹는다. 

예를 들어 결혼하게 되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따라 ‘처형’, ‘처제’, ‘처남’, ‘동서’, ‘형님’, ‘아주버님’, ‘아가씨’로 불러야 하고, 남편의 남동생인 경우 결혼했으면 ‘서방님’ 미혼이면 ‘도련님’으로 불러야 하니 ‘aunt’ 나 ‘uncle’이면 다 통하는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 여성가족부가 친족 호칭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니 총참여자의 96.8%가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라고 높여 부르지만, 아내의 동생은 ‘처남’ 혹은 ‘처제’로 낮춰 부르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얼마 전 추미애 전 장관을 ‘추미애 씨’라고 호칭한 것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호칭에 아주 민감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는 상대방을 언급할 때 웬만하면 ‘사장님’이나 ‘사모님’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높여 불러주면 뒤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에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이름을 부르고 공식석상이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Mr 또는 Miss/Ms를 붙이거나 직함을 붙이지 않는다. 

내가 뉴질랜드에 이민 가서 처음 문화적 차이를 느끼고 한국적 관행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호칭 문제였다. 

아들뻘 되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처음에는 버릇없어 보이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내 이름과 비슷한 ‘Ike’란 영어 이름을 만들어 부르게 하면서 거부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아버지 연배의 어르신들이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데 선뜻 대놓고 이름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나이, 사회적 신분 관계 등을 호칭을 통해 표현해왔던 한국적 관행에 길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 틀을 깨고 호칭에서 자유로워지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고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호칭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예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한 부서의 책임자로 근무할 때, ‘과장’이나 ‘부장’이란 타이틀을 떼고 영어 이름을 하나씩 만들어 부르게 했던 적이 있다. 

비록 영어지만 상사에게 이름만 부르는 걸 어색해하고 주저하길래 일주일에 하루 오전 동안은 영어로만 업무를 보도록 했더니 아예 입을 다물고 있어서 얼마 못 가 중지했던 기억이 있다. 벌써 30년 여년 전 일이니 나름 앞서간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IT 기업이나 벤처 및 스타트업 계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수평적 호칭 제도의 일환으로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인터넷 채팅방이나 동호회 단체방에서는 특별히 실명을 요구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본명보다 아이디를 호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의 좋은 점은 나이, 성별, 신분 등을 알 수 없어 모두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상하 관계보다는 수평과 평등 관계를 강조하는 문화로 나아가고 있다. 나이 든 사람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려면 ‘전(前)’ 자가 붙은 옛 직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외국처럼 이름을 부르도록 하는 것은 우리 정서상 어렵겠지만, 영어 닉네임이나 멋진 아이디를 사용하는 것도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세태를 따라가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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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윤 2021-09-08 12:09:48
한국 가족 용어 너무 복잡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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