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0] 봉사(奉仕)에 대하여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0] 봉사(奉仕)에 대하여
  • 편집국
  • 승인 2021.10.05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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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로 이민을 하는 바람에 만나진 못하더라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식을 접했던 몇몇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온 후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라는 소셜 미디어 공간을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5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연결이 되었다. 

S와 P도 이런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연결된 친구들이다. S는 대학 졸업 후 박사 과정을 밟고 대학교수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50 +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P는 대학 졸업 후 무역 회사에 다니며 해외 근무도 한 것 같고(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SNS상에 올린 글을 통해 유추한 것임) 퇴직을 한 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 차 전국을 유람하면서 소셜 미디어에 사진과 글을 올리며 근황을 알리고 있다.

두 친구와 연결이 된 후 서로 안부를 물으며 옛 기억을 더듬는 시간을 갖다가 사실 확인을 할 일이 하나 생겼다. 우리 모두 고3 때 같은 반이었지만 그들은 내가 부반장으로 봉사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다른 친구를 부반장으로 알고 있었다. 두 친구와는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고3 때 같은 반도 했기 때문에 얼굴은 친숙하지만 절친은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 두 친구는 공부를 열심히 하던 학구파들이고 동아리 활동도 주로 정적인 분야에 참여했던 것 같고 반면에 나는 공부 쪽보다는 태권도부 활동과 학생 지도부 생활 등 동적인 활동을 했으니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또한 체구도 두 친구는 왜소한 편이었고 나는 운동을 하여 그 시절엔 다부진 편이었기에 유유상종이란 말처럼 어울리는 친구 부류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부반장이었다는 것을 그 친구들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섭섭해 할 것도 없었지만,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두 친구에게는 자신의 기억력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여겨서 그런지 진실 공방을 이어 가며 사실 확인을 원했다. 

마침내 지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고 그 당시 반장이었던 친구의 증언으로 내가 부반장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일단락되었다. 

학창 시절 반장이나 부반장은 봉사하라고 임명 받은 것이라 별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봉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어지는 직책과 직함들은 명예와 명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은근히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주에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모임에 참석했었다. 아산시협의회 소속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위촉식 행사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2019년 뉴질랜드협의회 소속으로 자문위원에 처음 위촉을 받은 후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산시협의회로 옮겨 활동을 하다가 8월 말로 2년 임기가 끝나게 되었는데, 다시 위촉을 받아 연임하게 되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민주적 평화 통일을 위한 정책의 수립 및 추진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자문에 응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따라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자문위원에 위촉 받는다. 

자문위원은 무보수로 봉사하는 명예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 속한 자치단체 대표, 정당, 직능단체, 주요 사회단체 등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보수지만 대통령으로부터 위촉을 받는 명예직이기 때문에 그 직함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작지 않다. 

그래서 그랬는지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었을 때 자문위원에 위촉 받기 위해 인적 연결망을 동원해 추천 청탁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았다. 봉사보다는 직함을 통해 명예를 추구하면서 개인적 과시나 비즈니스에 이용하려는 속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고전문학자인 정민 교수는 암행어사가 오는 것을 알고 좋은 고과 점수를 얻고자 길가에 선정비를 세우게 한 고을 사또의 예를 들며 자신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명예만 구하는 행위를 무성요예(無聲要譽)라 표현했다. 

봉사보다 어떡하든지 자신을 나타내며 과시하고자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무성요예 행위에 속하는 부류라 할 수 있다. 

봉사(奉仕)라는 말에는 받들고(奉) 섬긴다(仕)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봉사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받들고 섬기며 높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욕위대자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이란 말이 있다. ‘크고자 하면 남을 섬기라’는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말이며 내가 다니던 배재학당의 교훈이기도 하다. 

큰 자가 되려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으뜸이 되고자 하면 남의 종(servant)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 봉사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진정한 봉사 정신에 따라 받들고 섬기는 자세로 봉사하려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야 하지만, 결국에는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되어 들림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받기만 하는 사람보다 더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것이 봉사의 묘미이며 의도치 않아도 얻게 되는 보상이다.

나이가 들어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무보수 명예직에서 봉사하는 일은 보람도 얻고 무위고(無爲苦)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봉사 행위가 무성요예가 되지 않도록 늘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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