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정규직 양산 자회사 전환 방식, 논란만 낳았다
[초점] 정규직 양산 자회사 전환 방식, 논란만 낳았다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4.1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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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시절과 달라지지 않은 처우에 불만 토로
낙하산 인사, 저조한 실적 등 마이너스 요소 차고 넘쳐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꼼수라며 무효화를 주장하는 노동자들. 사진제공 금속노조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꼼수라며 무효화를 주장하는 노동자들. 사진제공 금속노조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지난 3월 27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본부 앞에 모인 일단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숙원인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간 문제가 이어져온 자회사 전환을 통한 정규직 채용이었기 때문이다.

전 정권이 정권의 사활을 내걸고 추진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의 대표적 부작용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파견·용역 같은 간접고용 근로자를 자회사 설립을 통해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라는 것은 이젠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피해당사자인 노동계의 반발은 물론이고 야권을 비롯한 정계와 법조계에서마저 이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개선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정권의 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드높인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사용자 측은 여전히 이를 비정규직 해결의 모범답안인 것처럼 들고 나오는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정부든 국회든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이를 시정해야 하는 국면이지만 딱히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대목, 그간 정규직 전환을 이유로 설립된 자회사가 빚어온 온갖 실책을 그저 시행착오란 단어로 얼버무려도 되는 걸까.

■ 비정규직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무늬만 정규직

한국공항공사 노조 역시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격렬히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사진제공=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공항공사 노조 역시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격렬히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사진제공=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이번 포스코 노동자들의 자회사 설립 반대 움직임이 낯선 장면은 아니다. 이미 이와 유사한 광경을 수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 정책의 첫 수혜자인 한국공항공사의 노동자들을 위시해 여타 기관과 기업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동자들이 우려한 대로였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자회사를 설립·운영한 코레일의 케이스다. 

노동계에 따르면 코레일의 자회사 노동자들은 동일한 업무 수행에도 불구하고 본사 노동자의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고 더 오래 일하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자회사는 본사와 별도로 운영되는 회사이기 때문에 근무 규정이나 임금 규정을 따로 설정할 수 있다는 걸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실질적 노동조건의 결정권을 원청이 갖고 있기에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으로 원청의 책임을 회피한 사례로도 인용된다.

한국공항공사를 위시한 다른 자회사 설립 기관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 리 없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지난 2020년  발표한 ‘공공기관 자회사의 운영실태 및 개선 방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된 근로자 중 절반 가량이 임금에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하락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자회사 조합원 응답자 중 16.4%가 ‘오히려 임금이 하락했다’고 답했으며 32.4%는 ‘변화가 없다’고 대답했다. ‘임금이 추가되거나 상승했다’는 응답자는 42.1%로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된 근로자의 처우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환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 조합원들이 느끼는 임금 만족도는 5점 척도에 2.15점으로 나타나 대체로 만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근로조건은 2.49점으로 집계돼 전반적인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된 근로자 상당수가 해당 방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접 고용이 낫다’고 인식한 조합원은 71.6%에 달하는 반면, ‘자회사 방식이 낫다’라고 응답한 이들은 15.9%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돌려주겠다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방식이 정작 노동자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 실패한 정책, 이젠 과감히 용도 폐기해야
지난 3월 14일,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실질임금 인상과 예산운용지침 준수 등을 원청인 공공기관과 정부에 촉구했다.

공공연대노동조합은 “기재부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발표하며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소위 복지 3종 세트를 편성했지만, 다른 자회사 노동자들에 비해 처우가 좋은 편이라 예산운용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공항공사,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한국전력 등 어떤 공기업도 복지 3종 세트를 자회사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개선대책도 발표한지 햇수로 4년째지만,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 등 개선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는 공공기관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자회사 정규직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여전히 기대이하임을 꼬집는 자리였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그간 발표된 그 어떤 보고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전환용 자회사 설립의 긍정적인 지표를 찾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 정책이 노동자가 아닌 정권의 이익을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복지는 제자리 걸음을 한 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 자회사 가운데 절반은 임원들에게 억대 연봉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그렇다.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국내 공공기관으로부터받은 '정규직 전환용 용역 자회사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목적으로 신설된 공공 자회사 69곳 중 33곳(47.8%)은 지난해 임원 평균 연봉(비상근·무보수 임원 제외, 성과급 포함)이 1억원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만든 공기업 자회사가 공공기관 임원의 자리 나눠먹기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정부 산하 기관의 각급 자회사에 임원 상당수가 낙하산이라는 여러 보고들이 매해 국감장의 단골레퍼토리가 된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배를 불리는 대신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논공행상용으로 전락한 자회사 논란은 이제 더는 없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포스코 자회사 논란을 좌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최근 임금 체계 개편과 노동시간 확대를 표방한 노동개혁을 말한 현 정부가 그에 앞서 정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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