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용역원, 최저 임금이 곧 최고 임금
청소용역원, 최저 임금이 곧 최고 임금
  • 승인 2004.10.2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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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혜영님은 전국여성노조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월급 64만1천840원, 시급 2천840원, 일급 2만2천720원이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받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서 사용자들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주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말 그대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여 일을 했을 때, 어떠한 경우라도 그 이하의 임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론 사용자가 최저임금 이상만(100원이라도) 주면 법을 어기지 않는 것으로 인정하는 안전장치로 악용되기도 한다.

최저임금 책정에 생계 걸려

주변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을 자주 만난다. 학교에서, 관공서에서, 많은 회사, 아파트들에서. 그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사용 사업장에 직접 고용된 것이 아니라, 용역업체 소속으로 각 사업장에 파견되어 일하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다. 이 분들은 많게는 10년을 넘게 같은 학교, 관공서, 회사에서 일해왔지만, 근속년수를 인정 받긴커녕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해고될까봐 긴장해 왔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온 건물을 누비며 구석구석 청소하고, 화장실 오물을 치우고, 시간마다 쓰레기통 비우고, 위험한 난간에 매달려 창문 닦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에 보조를 맞추어 계단 끝을 반짝 반짝 윤이 나게 닦아내면서 이분들이 한 달에 받는 임금은 고작 최저임금수준이다.

“처음에 (투쟁을) 시작할 때 소장도 그렇고 주변의 학생들도 그렇고 그래 며칠이나 하는지 보자는 식으로 냉랭하게 대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지요. 자기들은 우리가 하는 것이 시끄럽고 귀찮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생계가 달린 문제였지요. 그것도 45만원 밖에 안 되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살았어요. 10여 년 동안이나.”

인천의 한 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시는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최저임금 쟁취투쟁”을 할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노조를 결성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고 있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그나마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쟁취했지만, 아직도 많은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대다수의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라는 쇠사슬에 발목을 붙잡혀 있는 이유는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기 때문이다. 사용사업체에서 입찰을 붙일 때 용역업체들은 최저의 입찰단가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때 최저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을 최대한으로 깎아 내린다. ‘최저임금 안전판’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말이다. 이렇게 용역노동자라는 신분은 우리 사회의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절하와 연결되면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의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에 붙들어 맨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에게는 법이 정하는 “최저”임금이 곧 자신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임금이 된다. 따라서 한 해의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시기인 6월말은 청소용역여성노동자들의 생계가 판가름 나는 시기다. 최저임금 인상분만큼 자신들의 임금도 인상되기 때문이다.

여성에겐 쟁취대상, 남성에겐 비교대상

6월 25일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날이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의 최저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 그날 점심 시간쯤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으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해보다 13.1% 인상된 64만1천840원이었다. 노동계 쪽에서 요구했던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대략 76만원’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청소용역여성노동자들은 나름대로 만족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최저임금이 다른 해보다 높은 비율로 인상되어 자신들의 임금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집회의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애초의 목표였던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를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최종 결정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소용역여성노동자들은 약간 당황스러워 했다. 사실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랄 사람들은 이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맞추어 임금이 결정되는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인상돼야 임금이 올라가고 생활수준도 좀더 개선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삶과 직결된 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셈인데 누가 보다 많은 인상을 마다하겠는가?

어떤 이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생활을 책임져야 하지 않기 때문에, 가계수입의 보조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의 취지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인상’에 대한 민감성과 필요성이 덜 할 것이다”라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최저임금수준의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 중 대다수가 실질적인 생계 부양자다. 가장 적은 돈을 받으며 자신들의 생계와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러한 이야기는 여성노동자를 부차적인 노동력으로 보는 남성중심적인 선입견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최저임금 결정에 다르게 반응했던 것은 그 노동자들이 서있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여성이 대다수이며, 남성은 거의 없다. 2001년 이전까지 대규모 공장 중심의 노동조합, 남성조합원 중심의 노동조합들에서 최저임금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오히려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와 같은 형태로 남성노동자들의 임금은 가족부양의 책임자라는 명목으로 여성들과 차별적으로,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기까지 했다. 최근에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화되면서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재조명 되었고, 이제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 받기 위해서, 너무 낮은 저임금 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노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

그러나 노동조건이 다른 여성/남성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이 갖는 의미 또한 다를 것이다. 남성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자신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지는 않지만 비정규직화 등으로 인한 저임금의 심화를 해소하고 개선해 나가기 위한 디딤돌로서 의미를 갖는다. 반면, 여성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임금인 것이다. 최저임금의 취지를 살리고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해소하기 위해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를 최저임금으로 책정하는 것은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최저임금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차별과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 “최저임금 쟁취 투쟁”을 벌여야 하는 이들에게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최저임금’이라는 대의는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운 간격으로 다가 올 것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결정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소동 속에서 다시 한번 자기검열을 해야 하고, 당황해 하며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의 격차를 새삼스레 되새겨야 했을 그 분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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