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상승으로 해고 위협 받는 고령 아파트 경비원
최저임금 상승으로 해고 위협 받는 고령 아파트 경비원
  • 이준영
  • 승인 2016.03.1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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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대개 아파트 경비원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고령 남성의 생애 마지막 일자리다. 하지만 이 일자리는 힘겹고 때로는 굴욕적이기까지 하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10~12월 서울 25개 구 아파트 단지 내 경비원 455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원 근무 형태의 경우 격일제 24시간 교대제가 96.6%를 차지했다. 주 업무인 방범과 안전점검에 투입하는 시간은 근무시간의 28.6%뿐이었고 택배 관리(20.2%), 주변 청소(19.3%), 주차 관리(16.3%), 분리수거(16.2%) 등 부가 업무에 나머지 시간들을 사용했다.

보장된 휴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휴게 시간에 근무지 밖에서 자유롭게 쉰다고 응답한 경비원은 고작 9.1%였고 근무지 안에 머물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대처한다는 응답자는 63.5%나 됐다. 휴게 공간이 없어 근무 초소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이도 57.8%였다. 이들의 평균 월급은 약 149만원으로 지난해 최저임금(116만원)을 조금 넘었다.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노동 환경은 열악해졌다. 본래 경비원 같은 ‘감시단속 노동자’에겐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다가 2007년(70%)에 처음 적용된 뒤 순차적으로 인상됐다. 그러나 임금 상승은 외려 해고 위협으로 돌아왔다. 인건비 상승 부담을 업체 측은 경비원 구조조정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자 늘어난 것은 ‘쉬지 못하는 휴게 시간’이었다. 업체들이 휴게 시간을 늘려 명목상 근로시간을 줄이는 편법을 쓴 것이다.
간접고용의 굴레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이들의 임금이 늘지 않는 역설은 일과 휴식 간 경계가 모호한 감시직 특성 탓이 크다. 근로기준법은 경비원처럼 감시를 주 업무로 하고 정신적ㆍ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로 ‘감시직 근로자’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들은 고유한 업무 수행은 물론이고 주차된 차량 밀기, 눈 치우기, 무거운 물건 들어주기 같은 부수적인 업무에 시달린다.

이렇게 불합리한 대우를 경비원들이 참아야 하는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직이기 때문이다. 2012년 노원노동복지센터가 노원구 아파트 경비원들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 조사 결과 79.1%가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었고 94.6%는 단기계약직이었다. 절대 다수의 경비 노동자들이 헌법상 보장되는 노동조합 결성에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은 고용이 불안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다. 부산 사하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이모(66)씨는 “억울하면 나가란 식이어서 목소리 한 번 못 내고 계속 근무지를 옮겨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고용을 더 흔드는 건 경비 무인화 추세다. 신규분양 아파트들뿐 아니라 기존 단지들까지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면서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김순희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은 “대표적인 한국 남성들의 은퇴 후 일자리마저 대기업(계열 경비시스템 업체)이 잠식하면서 서민들 삶이 위협당하고 있다”며 “경비원 고용 문제를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노인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선무는 근로 시간 단축이다. 경비원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장시간 노동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해법은 직접 고용이다. 불필요한 위탁 수수료를 줄이면(15~20%) 인건비 여력이 생겨 근로 시간이 줄어도 임금을 깎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8시간 3교대제로 근무 형태를 바꾸고 휴게 시간ㆍ공간을 보장해야 고령 경비 노동자들의 건강이 지켜질 수 있다”며 “입주민대표자회의에서 경비원 보호 방안 모색에 착수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고용보조금 조례 제정 등으로 이를 지원해주는 식으로 공동체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자체가 경비원의 업무를 입주민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야간에 보장되는 휴식 시간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초소에서 잠자고 있는 경비원을 보고 태업한다고 오해하는 입주민들이 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계약 연장 등 문제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경비원 대신 지자체가 초소나 엘리베이터 등에 안내문을 부착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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