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기업사냥꾼`으로 변신중
헤지펀드, `기업사냥꾼`으로 변신중
  • 승인 2005.02.2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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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인 투자로 고수익펀드의 대명사인 헤지펀드가 기업 인수합병(M&A)에도 참여, 새로운 기업사냥꾼으로 변신하고 있다.

◇헤지펀드, 기업사냥에 나서다

보스턴 소재 헤지펀드인 하이필드 캐피탈 매니지먼트는 미국 3위의 전자제품 소매체인인 서킷시티 지분 6.7%를 보유하고 있던 주주였다. 헤지펀드는 보통 기업의 실적이 나빠진다 싶으면 다른 투자자들보다 먼저 지분을 처분,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하이필드는 서킷시티의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서도 지분을 정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5일 32억5000만달러를 들여 서킷시티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수천억 달러의 투자자금과 첨단 금융공학 기법으로 무장한 조나단 자콥슨과 리차드 그루브만 같은 하이필드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이제 사모투자회사(private investment firm)처럼 기업사냥꾼으로 변신한 것.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헤지펀드가 레버리지 거래나 리스크 차익거래, 파생상품 등 기존의 헤지거래에 만족하지 않고 고수익을 찾아 기업인수합병(M&A)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지난해 헤지펀드와 그 계열사가 인수합병한 사례만 23건이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300억달러에 이른다. 뉴욕소재의 케르베로스 캐피탈 매니지먼트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는 200억달러이고 고용인원은 수만명에 이른다.

헤지펀드는 직접 경영권을 행사하기 힘든 경우에는 이사 자리를 차지해 간접적으로 경영을 행사하고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대표이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사임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이들 헤지펀드들은 덩치를 따지지 않고 기업의 경영권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운용담당 책임자였다가 지금은 10억달러를 운용하는 코퍼 아크 캐피탈 대표 스코트 시프렐르는 모건스탠리의 주가가 계속 하락하자 공개적으로 신용카드 사업부문과 소매 브로커리지 사업부문을 매각하라고 요구했다.

◇新기업사냥꾼..풍부한 자금과 정보력

경영권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헤지펀드는 과거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했던 T. 분 피킨스(Boone Pickens)나 헨리 R. 크라비스(Henry R. Kravis)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다.

단적으로 헤지펀드는 1980년대의 기업사냥꾼들과 달리 인수자금 조달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일부 헤지펀드의 유동현금은 100억달러가 넘는다. 10억달러의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펀드는 수십곳에 이른다.

`엔론사태` 이후 기업관련 정보를 구하기가 더 쉬워졌다는 것도 새로운 기업사냥꾼들에게는 M&A의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헤지펀드는 전통적인 기업차입인수(LBO)펀드와 달리 M&A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연금펀드를 고객으로 삼을 필요도 없다.

헤지펀드들이 기업사냥꾼으로 변신함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방식도 변하고 있다. 텍사스 퍼시픽 그룹은 아예 헤지펀드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은행들은 헤지펀드의 적대적 M&A에 맞서 `백기사`로 나설 사모펀드회사 설립을 준비중이다. 모건스탠리의 앨런 존스는 "이제는 사모펀드 회사가 서킷시티 인수가격으로 하이일드 캐피탈같은 헤지펀드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CEO도 바꾼다

헤지펀드의 영향력 확대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헤지펀드들은 예전보다 더 `주주가치 제고`를 주문하고 있으며, CEO가 이들의 요구를 받아주지 못할 경우퇴출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인력채용 컨설팅업체 챌린저 그레이&크리스마스의 존 챌린저 CEO는 "이제 더 이상 잭 웰치처럼 좋은 시절과 어려운 시절을 모두 겪을 수 있는 장수 CEO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적 캐피탈 대표인 허드슨은 경영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되는 기업들에게는 불만섞인 편지와 함께 법적 소송을 제기해버린다. 실제로 허드슨은 사설교육서비스업체인 코넬의 CEO를 쫓아내는데 일조했고, 존 Q. 해먼스 호텔의 신임 CEO 영입을 주도했다. 배링튼 캐피탈 그룹의 공동설립자인 제임스 A. 미타로톤다는 인터넷 도메인 등록업체인 레지스터닷컴의 CEO를 퇴출시켰다.

헤지펀드가 CEO를 갈아치우는 데 대한 불만도 높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하루종일 컴퓨터앞에서 일하는 젊고, 참을성없는 헤지펀드 매니저들들이 과연 회사 경영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느냐며 헤지펀드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LBO 전문가인 크라비스는 헤지펀드들은 기업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비난했다. 사모펀드 전문회사인 KPS 스페셜 시추에이션 펀드의 공동설립자 마이클 G. 사로스는 "기업이란 재무제표만 봐서 알 수 있는 서류속의 존재가 아니다"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4억달러의 자금으로 설립된지 3년만에 안됐지만 지난해 비용공제후 29%의 수익률을 기록한 해적 캐피탈의 설립자 토마스 R. 허드슨은 "우리가 투자한 기업만 수백곳이 넘는데 대부분의 CEO들은 이미 4~5곳의 기업을 거친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일부 헤지펀드들은 예전에 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던 사람들을 고용해 필요할 때 경영자에 앉히기도 한다.

◇소유와 경영의 결합..`14.99%의 소유권`

새로운 헤지펀드들은 팀을 결성해 기업을 사냥하기도 한다. 오흐-지프 캐피탈 메니지먼트 그룹 등으로 구성된 헤지펀드는 워런 버핏의 벅셔 해더웨이와 화이트 마운틴 보험그룹과 함께 사페코가 소유하고 있던 보험회사 시메트라 파이낸셜을 13억5000만달러에 지난해 8월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공격견(Attack Dogs)`이라 불리는 펀드들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지분을 확보한다. `마이다스 맨(Midas Men)`이라고 부르는 다른 팀원은 다른 회사가 지분확보 경쟁에 끼어들지 못하게 막는다. 또 다른 팀원 `크랙커잭(Crackerjacks)`은 경쟁자들에 비해 높은 가격을 제시, 인수를 마무리짓는다.

39살의 워렌 G. 리히텐슈타인은 지난해 11월 로켓엔진 제조업체인 진코프(GenCorp)의 적대적 인수에 나섰다.

헤지펀드가 로켓엔진 제조업체를 살 것이라고는 월가의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 월가는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뉴욕에 30억달러 규모의 스틸 파트너스를 만든 젊은 헤지펀드 매니저에게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일이다. 리히텐슈타인은 "높은 수수료 때문에 우리같은 회사를 헤지펀드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민간기업이나 공기업에 투자하는 파트너십 회사일 뿐"이라며 "저가에 매수하는 게 바로 `헤지`"라고 말했다.

스틸 파트너스는 25개 기업의 지분을 15% 미만 보유하고 있다. 지분이 15% 미만이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우리는 25개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인항공기 등 첨단군사장비 제조업체인 유나이티드 인더스트리얼(United Industrial)의 주요주주인 리히텐슈타인은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 2년전만 해도 리히텐슈타인은 이 회사의 경영에 반대에 전쟁을 벌이던 제 3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난 이후 주가가 33달러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리히텐슈타인 펀드의 수익률은 비용을 제하고도 35%에 달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직접 경영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징계를 하는 인사권한은 갖고 있다. 직원들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이제 덩치가 더 큰 기업으로 투자대상을 넓히고 있다. 1억달러 규모의 기업들만 투자했는데 20억달러로 투자규모를 키우고 있다. 덩치가 큰 만큼 리스크가 낮아 수익률도 높아질 수 있는 이유에서다.

헤지펀드가 인수 회사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운용자본 120억달러로 박사급 인력이 몰려있는 D. E. 쇼는 지난해 파산한 장난감 상점 FAO 슈와르츠를 인수했다. 설립자 데이비드 E. 쇼는 컴퓨터공학 박사로 자신의 손자에게 이 회사를 세계 최대의 장난감 상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D. E. 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회사를 살려내고 있다. 뉴욕 5번가에 위치한 FAO 슈와르츠 상점의 문이 열리는 시간에 사람들은 너나없이 가게로 들어간다. 오전 10시가 되면 3명의 직원이 장난감 군인 복장으로 나와 빨간 카페트를 깐 뒤 트럼펫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쇼는 카탈로그와 온라인 판매를 통한 이익이 기대이상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들은 적대적 M&A만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운용자산 140억달러의 케르베로스 캐피탈 설립자 스테판 A. 파인버그는 지난해 워렌 버핏이 시도한 조립식 주택회사 클레이튼 홈즈 인수전에서 패배를 맛봤다. 그렇지만 유리용기 제조업체인 앤커 글래스 컨테이너와 90만에이커의 임야와 함께 북미 포장재 제조업체인 미드웨스트바코를 인수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에는 조지아-퍼시픽그룹으로부터 인수한 건설용 자재 유통업체 블루링크 홀딩스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비즈니스위크는 헤지펀드가 기업사냥꾼으로 변신하는 것은 헤지펀드 산업과 월가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징표라면서 1990년대 펀드 매니저들이 조지 소로스에게서 자신들의 미래를 본 것처럼,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이제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헤지펀드의 새로운 시대는 기업의 CEO들에게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헤지펀드들은 투자목적을 위해 지분을 취득하기도 하고, 장기간에 걸쳐 회사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목적에서 지분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그렇지만 투자목적이 어떤 것이든, 헤지펀드들은 경영에 실패한 CEO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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