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산 원장의 아름다운 뒤태] 손주들과의 오사카 여행
[가재산 원장의 아름다운 뒤태] 손주들과의 오사카 여행
  • 이효상 기자
  • 승인 2022.05.02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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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즐거운 일이고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에어비앤비 이용 경험 여부가 세대 차이 판가름하는 잣대
가재산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ㆍ피플스그룹 대표
가재산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ㆍ피플스그룹 대표

여행은 늘 즐거운 일이고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더구나 여행은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묘미와 스토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수년 전 추석 연휴에 손주들과의 오사카 여행은 그동안 다녀온 많은 여행과는 다른 추억으로 남아있다.

추석을 한 달쯤 남겨놓고 아들이 사전에 상의도 없이 이번 추석 연휴에 장인 장모를 모시고 손주 녀석들과 같이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다. 요즘은 가족관계가 점점 모계 쪽으로 이동하는 추세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평소 "아들이 장가가면 사돈집 아들"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고 늘 아내에게 강조해왔다. 막상 귀띔 한 번 하지 않은 아들이 은근히 못마땅하기도 하고 시샘도 나 사위에게 우리도 해외여행을 가자고 운을 떼어봤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는 눈치였지만 경비를 내가 모두 댄다고 하니 얼씨구나 좋다고 즉각 반응이 왔다.

우리 집안은 처음부터 사돈 간에 한집안처럼 지내왔다. 아들딸네 양가 사돈은 물론 사돈집 식구들까지 종종 식사도 하고 여행도 같이 다닌다. 연말에는 송년회도 같이 하기 때문에 만나면 늘 화기애애한 편이다. 나도 손주들과의 해외여행은 처음인데 외손주들도 비행기를 타보는 해외여행이 처음이라 굉장히 좋아했고, 게다가 안사돈도 동행하게 되어 남다른 여행이 되었다.

목적지는 40여 년 전 주재원 시절 살았던 오사카로 정했다. 그곳은 우리 애들이 아주 어릴 때 자란 곳이다. 대개 시니어들 모임에서 여행 갈 때 에어비앤비를 이용해보았는지 질문이 나온다. 그 기준이 세대 차이를 판가름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마침 딸애가 하나에서 열까지를 모두 예약해주는 바람에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일본은 물가가 한국보다는 훨씬 비싸다. 아담하고 깨끗한 32평 아파트를 통째로 쓰는 데 하루 15만 원 정도라 호텔에 묵을 때보다 1/3 수준이었다. 더구나 여러 식구가 같이 밥도 해 먹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식사 값도 절약되고 편리한 점이 많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예나 지금이나 외국인은 지문을 찍는 등 까다로운 입국 수속으로 인해 늦어져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짐을 풀어놓고 오사카 최대 번화가인 도돔보리(道頓堀)에서 야경을 즐기며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 당시는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 후 외교 갈등 문제로 중국 사람들이 대거 한국에서 일본으로 여행지를 바꿀 때였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중국 사람들로 한창 붐비던 명동거리처럼 일본에 중국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모처럼 이 근처의 맛집을 검색해 초밥집을 찾아냈다. 여러 가지 생선으로 만든 초밥을 오랜만에 손주들과 같이 먹어서 그런지 맛이 특별했다.

이튿날은 작은 미니버스 한 대를 통째로 빌려 편하게 이동하기로 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교토를 가기 전에 40년 전에 살았던 집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반경이 2km 정도나 되는 드넓은 녹지와 호수가 있는 공원 곁에 있는 아파트였다. 일본인들이 사는 집은 우리와는 달리 집이 작다.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부촌에 속하는 아파트 단지인데도 규모는 17평 정도 규모였다. 무척 오래된 아파트라 행여 없어지지나 않았을까 우려도 했는데 여전히 그 시절 모습으로 변함이 없었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30년 전만 해도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요즘은 우리의 경제력과 한류 덕분에 한국의 위상이 격상되어 그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한국 사람을 대놓고 노골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에 아파트에 입주할 때부터 문제였다. 대기업의 주재원인데도 불구하고 집을 빌리는 데 외국인이라 입주가 안 된다고 해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파트 관리규약에 외국인은 거주 불가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눈을 의심할 일은 그 뒤에 보니 코가 큰 서양인들은 이미 살고 있던 터였다. 그들이 꺼려 했던 이유가 많지만, 한국인들의 마늘 냄새, 김치 냄새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젯거리 중 하나였다.

이번 여행에서 더욱 기억에 남는 일은 딸과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을 방문한 것이다. 아들과 딸애가 이 유치원을 다니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아이들 유치원 때였으니 이번에 동행한 두 외손주와 같은 나이였다. 방문한 그 건물을 보니 까마득한 옛 추억이 서서히 살아났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재건축으로 없어졌을 텐데 개원 70주년이 되었다는 그 유치원 건물은 물론 명칭도 ‘이나리 유치원’ 그대로였다. 마침 그 시간은 수업 중이었지만 간청을 해서 한 선생님을 만났다. 40년 만에 손주들과 같이 왔다는 이야기를 하니 깜짝 놀랐다. 그리고 유치원을 배경으로 단체 가족사진도 함께 찍었다.

천년 고도인 교토에서도 손주들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가보았다. 주재원 시절에는 본사 손님들 안내로 건성으로 보았던 청수사, 금각사 같은 명승지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이튿날 오전에는 오사카 성을 들렸다.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곳이다. 일본에 처음 와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오사카 성 맨 위 누각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1592년 1차 조선 정벌, 1597년 2차 조선 정벌…."
이 글을 보는 순간 적개심이 불끈 솟구쳤다. 가 씨 조상은 원래 중국 소주(蘇州) 사람이다. 1592년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 당시 5만 대군을 이끌고 원정 온 이여송 장군과 같이 참전한 분이 1대조 할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정유재란 시에는 손자까지 데리고 참전했는데 1대, 2대 부자가 전사하셨고 손자인 3대손이 귀화해서 한국에 정착하게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분들의 충효사상을 기리기 위해 철종 임금은 정문(禎門)과 사액(祀厄) 현판을 하사하여 지금 문화재로 지정된 사당으로 '숭의사'가 고향에 있다. 아직은 어려서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모처럼 손주들에게 전했다.

오후에는 애들이 일본에 오면 제일 가고 싶어 했다는 레고 마을에 갔다. 같이 조립도 해보고 멋지게 만들어놓은 오사카 성이나 일본의 씨름인 스모가 열리는 장면들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놓은 작품들도 신기해하며 관람했다. 그곳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관람열차를 타고 200여 미터 높이에서 오사카 전역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색다른 추억거리는 여행지에서 추석 차례를 지냈다는 사실이다.

 "여행 가서 차례를 지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해외에 나가서 직접 차례를 지내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명절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애들을 전부 데리고 시골에 가서 제사를 지내왔다. 해외라 해서 빠질 수가 없던 터라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사다 간단하게 약식으로 차례상을 차렸다. 손주들도 같이 절을 하면서 정성스레 차례를 지냈다. 더구나 사돈집과 공동으로 차례를 지낸 특별한 추석이었다.

나는 다른 할아버지와 달리 손주들에게 자상한 편이 못 된다. 손주들은 "올 때 늘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는 식이었다. 다행히 이번 여행으로 외손주들과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것 같다. 다음번에는 아들네와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친손주 두 녀석은 물론 사돈까지도 같이 가려고 한다.

가재산
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
ㆍ피플스그룹 대표
ㆍ핸드폰책쓰기코칭협회 회장
ㆍ청소년 빛과 나눔장학협회 회장

ㆍ책과 글쓰기대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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