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일할 사람 없는 고령화 시대, 정년연장으로 돌파구 찾나
[초점] 일할 사람 없는 고령화 시대, 정년연장으로 돌파구 찾나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6.14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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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으로 대표되는 계속고용 제도 대한 사회적 논의 시급
55~79세 고령자 중 68.5%가 장래에 더 일하기를 원해
능력 있는 시니어들의 역량을 활용하고 국가 경쟁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정년 연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점차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사진은 신중년 취업박람회장 모습
능력 있는 시니어들의 역량을 활용하고 국가 경쟁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정년 연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점차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사진은 신중년 취업박람회장 모습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매해 봄이면 각 노동조합이 보조를 맞춰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공동투쟁을 일컫는 춘투에 모든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해마다 귀족노조니 총파업이니 하는 말들이 언론에 도배되고 이를 지켜보는 온 나라가 시끌벅적해지곤 하는 연례행사라 할 춘투가 올해는 좀 다른 의미로 시선몰이를 할 것으로 보인다. 춘투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할 수 있는 대표적 노조들이 들고 나온 이색적인 요구 조건 때문이다. 

첫 주자가 현대차 노조다. 주로 임금과 복지 등을 주요 의제로 들고 나왔던 현대차 노조가 올해 핵심 안건으로 지난해 고배를 마셨던 정년 연장을 재차 꺼내들고 나온 것. 지난해 정년 연장을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특근을 거부하는 등 파업 직전까지 상황을 몰고 갔지만 결국 관철시키지 못하고 분루를 삼켜야 했던 현대차 노조는 올해는 반드시 이를 통과시킨다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제는 사측의 입장이다. 지난해에도 그랬듯 올해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또 한 번의 격돌이 예상된다.

사실 이는 현대차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년 연장에 관한 필요성은 단순히 기업과 노조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한 안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논의만 무성하고 실제론 아무 것도 진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코앞으로 다가온 초고령화 사회가 60세로 국한되어진 현재의 정년제도를 좌시할 수 없어진 탓이다. 정부도 이와 관련된 행보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본다면 올해는 조금 다른 결말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 일제히 정년 연장 요구하고 나선 대기업 노조들
여러 요인들을 감안해 봐도 현재의 정년 제도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 구조상 일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의 급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는 곧 국가의 신용도 하락과 경쟁력 약화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비중이 1% 감소하면 GDP는 0.59% 줄어든다며 관련 보고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로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1.2%씩 줄어 2050년에는 2022년 대비 28.4%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경연은 유엔 인구자료를 인용해 2050년 한국 인구가 약 4577만 1000여 명으로, 지난해(약 5181만 6000여명)보다 11.7%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2050년 생산가능인구는 2398만 4000여명으로, 지난해보다 34.8%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인구감소 속도가 총 인구 감소보다 약 3배 빠른 것이다. 

이런 인구 변화에 따라 2050년 한국 GDP가 2022년 대비 28.4%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피부양인구(만 14세 이하와 65세 이상)가 1% 늘면 GDP는 0.17% 감소한다고도 추정했다. 유진성 한경연 선임 연구위원은 “경제의 중추인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늘어나 재정 부담 증가, 미래 투자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경연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규제 완화, 외국인 근로자 활용, 노동생산성 향상 등 다각적인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해 고령층의 고용 효율성을 높이고 청년층의 취업 기회를 늘려주라고 촉구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바로 고령층의 고용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고령층을 활용할 수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대책은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다. 현재 법으로 정해진 만 60세가 아닌 65세를 정년으로 정한다면 그 나이대의 고급 인력들을 대거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급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곤란함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수혜자라 할 기업들이 이를 꺼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현대차 외에도 기아 노조는 정년을 62세로 연장하는 안을, 삼성그룹 노조도 임금피크제 폐지와 함께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런 노조의 요구를 기업 측에서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업 측도 정년연장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당장 부담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게 그 이유다. 근속연수가 길수록 월급이 증가하는 현행 호봉제 임금체계 아래에서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현재의 급여체계에서 정년을 1년만 연장해도 인건비로만 천문학적인 거금을 더 내줘야 하는데 이를 흔쾌히 용인할 기업은 없는 게 사실이다. 당장 현대차의 경우, 전기차 라인에 비중을 더하면서 있는 직원도 줄여야할 입장이다 보니 정년 연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할 경우, 이에 따른 비용은 1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자료제공 한국경제연구원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할 경우, 이에 따른 비용은 1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자료제공 한국경제연구원

3년 전인 지난 2020년 한국경제연구원은 발표한 ‘정년연장의 비용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정년연장에 따른 비용이 16조에 달했다. 65세 정년연장에 따른 60~64세 추가 고용의 직접비용은 14.4조원, 간접비용은 1.5조원으로 이를 합한 총비용은 약 15.9조원으로 분석되었을 정도다.

이와 함께 정년 연장이 또 다른 기회를 앗아갈 수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바로 늘어난 정년 세대들로 청년세대가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 동일 보고서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었다. 이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로 절약된 직접비용 2.5조원을 25~29세 청년의 일인당 연평균 임금으로 나누면 약 8.6만 명의 청년층 근로자를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힌 것. 결국 청년들의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정년 연장을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들의 논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진성 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을 도입하는 경우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하여 직무급제나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체계 개편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이를 통해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일자리 안정성, 기업경쟁력 강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절대 다수 국민 지지에도 정부 입장은 미온적
경영계의 반대에도 여전히 정년 연장을 향한 대체적인 의견은 찬성 쪽인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월 22~24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천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현재 만 60세인 근로자의 법정정년을 단계적으로 만 65세까지 연장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4%로 ‘반대한다’ 13%에 비해 크게 높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공 전국지표조사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공 전국지표조사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고령층(55~79세) 부가 조사는 더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준다. 정년 연장의 당사자인 고령자 중 장래 근로를 희망하는 사람 비중이 2013년 60.1%에서 지난해 68.5%로 증가했다는 것이 그것. 같은 기간 근로를 희망하는 연령도 71.5세에서 72.9세로 높아졌다. 근로를 희망하는 사유는 '생활비 보탬'(57.1%)이 가장 많았으나, '일하는 즐거움'(34.7%)을 꼽은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결국 일반 국민이나 정년을 지난 세대 모두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 노조들이 올해 약속이나 한 듯 정년연장을 안건으로 채택한 것 역시 이런 국민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 역시 이런 기조에 따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 초 제4차 고령자고용촉진기본계획을 발표하고 60세 정년 이후 계속고용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통하여 올해 말까지 ‘계속고용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을 통한 계속고용방식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 ▲고령자 계속고용과 연계한 임금·직무 등 조정에 대한 법적 근거 ▲연금수급연령, 기업의 계속고용 운영실태 등을 고려 ▲기업규모, 유형별(민간, 공공) 도입 시기 차등 여부 ▲제도화에 따른 기업의 부담 완화, 근로자에 대한 한시적 지원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완벽한 법제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 문제다. 정부는 법제화 대신 노사자율에 맡겨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식으로 의무화하려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 2월 ‘정년제도와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노사정 회의 및 국회 심사 모두 입법 시기에만 집중되고 단절돼, 후속대책이 마련되거나 정부 정책을 점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것이 그 증거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도 논의됐던 정년 연장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 바 있다. 현 추세대로라면 윤석열 정부 역시 유사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기엔 우리 사회의 변화가 너무 급진적이다.

이렇다 할 노후 준비 없이 직장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수많은 중년층 노동자들의 소득보호 와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이라는 관점에서만 봐도 정년 연장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일각에서는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는 시절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년연장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법제적 정의가 절실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KASA) 황규만회장은 “65세 정년이 법제화된다면 고령자의 재취업이 훨씬 쉬울 것이란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라며 “눈앞에 닥친 초고령사회는 고령자도 일해야 하는 사회이므로 정년 연장에 대한 심도 깊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늦지 않게 법제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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