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소싱 이슈] 불법파견 법원 해석 커지는데...'파견법 족쇄' 언제 풀리나
[아웃소싱 이슈] 불법파견 법원 해석 커지는데...'파견법 족쇄' 언제 풀리나
  • 이윤희 기자
  • 승인 2024.03.18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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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유 위한 생산관리시스템 MES도 불법파견 판단 요소
직접공정 아닌 간접고용과 비제조 분야도 파견관계로 볼 소지 커져
현대제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12년 8개월만에 '불법파견'으로 판결났다.
현대제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12년 8개월만에 '불법파견'으로 판결났다.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최근 현대제철을 비롯해 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도급 계약을 맺었던 원청 기업이 하청 직원을 직고용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급과 파견을 가르는 '원청의 지휘·명령 여부'에서 지휘·명령 범위에 대한 시각이 넓어진 까닭이다. 반면 도급기업은 뚜렷한 규정이 없는 지휘·명령 기준에 불안을 호소한다. 어느 수준까지가 파견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경계인지 분간이 불가능해 항상 파견으로 내몰릴 위험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사업장을 불법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파견법 범위를 확대해 합법적인 선 안에서 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제조업, 파견은 '당연히' 안되고 도급도 갈수록 막히며 '정체'
지난 3월 12일 대법원 제 2부는 현대제철과 도급계약을 맺고 순천공장에서 일해온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41명에 대해 근로자 파견관계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따라 현대제철은 해당 직원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생겼다. 

현대제철 관련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에 첫 사례다. 해당 판결도 첫 소송 이후 12년 8개월만에 최종 승소 판정이 떨어졌다.

다만 기계·전기 정비 업무 일부, 시설관리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 대해서는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에 쟁점은 도급과 파견을 구분짓는 ▲원청의 지휘·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다. 

도급과 파견은 원청사에 협력업체가 고용한 인력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도급은 원청사가 협력업체 직원을 직접 관리하거나 업무를 지시해서는 안된다. 

반면 파견은 원청사에서 직접 업무를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고 도급보다 직접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다만 파견으로 고용된 직원은 2년을 초과하여 고용할 수 없으며 2년을 초과하는 경우 원청사에서 직접고용을 해야한다.

문제는 도급과 파견의 차이를 가르는 '원청의 지휘·명령'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장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업무를 위한 불가피한 정보전달 및 공유인지, 직접적인 지시인지 판가름이 서질 않는 셈이다.

이번 현대제철 판결에서 직접적인 원청의 지휘·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 데는 현대제철의 정보공유 시스템인 MES(Manufa cturing Execution System, 생산관리시스템)가 주요했다. 정보를 공유하는 MES를 통해 현대제철 측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작업 범위를 정해주고 관리했다는 것이다. 

해당 자료가 근거가 돼 불법파견으로 판결이 나면서 제조업계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MES는 생산 현장에서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여겨지면서, 현대제철 뿐 아니라 철강기업과 제조업에서 다수 적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해당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제조업도 불법파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더군다나 잇달은 불법파견 판정에 영향을 받아 줄소송이 우려되면서 기업의 경영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

당장 포스코도 사내하청 노동자 2200여명에 대한 불법파견 소송이 진행 중이며 현대제철도 순천공장 및 당진공장 하청 직원 1200여명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제조업이 도급까지 막히게 됐다며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파견법 손질을 통해 파견 허용 업무를 넓히고 불법 경영이라는 리스크를 벗어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파견법은 1998년 제정된 시기에 머물러 있어 여전히 32개 업무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는 상태다.

국내 파견법상 파견을 허용하는 업종 범위
국내 파견법상 파견을 허용하는 업종 범위

파견에 대한 법원의 해석은 점점 커지면서 불법파견 인정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데, 정작 파견 허용 업종은 기존에서 달라지지 않아 수십년간 정상적으로 운영해온 업체가 불법을 저지른 업체로 매도되고 있다.

이를테면 기존에는 문제가 없어 시장 내에서 MES가 이번 판결에서는 불법파견의 요소로 인정됐는데, 이미 제조업 내에서 MES는 보편화된 전자시스템으로 알려져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이 불법파견 판정에 놓일 위기에 처해있는 셈이다.

업계 내부에서는 과거라면 '법대로 노무관리 독립성을 갖추고 도급기업을 운영하면 불법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제대로 하자"는 여론이 형성됐다면, 현재로써는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불만만 쌓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법파견의 인정 범위가 간접공정과 사외하청 일반 비제조 업무에까지 확대되고 일반적인 업무와 관련된 정보 공유조차 지휘·명령으로 치부되면서, 파견에 도급까지 협력업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 

필연적으로 고용경직과 함께 기업 운영도 위축될 것이란 예견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생산성 향상과 이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취지로 도입된 파견법이 오히려 고용 유연성을 저하하면서 관계자들은 파견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는 파견법 개정을 위해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사내하도급 등 비정규직 활용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상생임금위를 통해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불법파견 징표를 다소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파견법 개정을 반대하는 노동계의 반발 등에 의해 25년째 별다른 진보를 보이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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