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해우소(解憂所)와 휴급소(休急所) 
[전대길 CEO칼럼] 해우소(解憂所)와 휴급소(休急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04.09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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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노스님이 산길에서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젊은 스님이 지나치면서 물었다. 
“오는 중(中/僧)입니까? 가는 중(中/僧)입니까?” 이 말을 들은 노스님의 시자(侍者)가 노스님을 희롱하는 말이라며 발끈했다. 노스님은 “나는 쉬고 있는 중(僧)이라네”라고 답했다.  

경봉(鏡峰) 스님
                                     경봉(鏡峰) 스님

이처럼 익살스럽고 해학적(諧謔的)인 ‘경봉(鏡峰/1892~1982)’ 스님이 화장실(化粧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작명(作名)했다. 법정(法頂) 스님은 ‘무소유(無所有)’를 강조했지만 경봉(鏡峰)스님은 “버리는 것이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이란 법어(法語)를 설파(說破)했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해우소(解憂所)’라는 이름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6.25전쟁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이다. 경남 양산 영축산 아래에 있는 통도사 극락암 호국 선원 조실(祖室)인 경봉 스님이 두 개의 나무토막에 붓으로 글자를 써서 시자(侍者)에게 주었다. 

하나는 ‘해우소(解憂所)’, 다른 나무토막에는 ‘휴급소(休急所)’라고 쓰여 있었다. 경봉 스님은 똥을 누는 절 뒷간 문짝에 ‘해우소(解憂所)’, 오줌을 누는 뒷간의 문짝에는 ‘휴급소(休急所)’를 걸라고 했다. 

해우소는 걱정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다. 휴급소는 급한 것을 해결하고 잠시 쉬어 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후 통도사 극람암 호국 선원을 찾는 참선하는 수행승인 수좌(首座)와 불자들이 해우소란 화장실 문패를 보고 설왕설래 말이 많아지자 경봉 스님이 법문을 통해 참뜻을 전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이 무엇이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일이야. 그런데도 중생들은 화급한 일을 잊어버리고 바쁘지 않은 것은 바쁘다고 해. 내가 소변보는 곳을 휴급소(休急所)라고 작명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그곳에서 좀 쉬어 가라는 뜻이야.” 

“해우소(解憂所)는 무슨 뜻이냐. 뱃속에 쓸데없는 것이 들어 있으면 속이 답답하고 근심 걱정이 생기지, 그것을 다 버리라는 거야. 휴급소에서 급한 마음을 잠시 쉬어 가며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일랑 버리고 가는 게 그게 바로 도(道)를 닦는 거야. 아무리 바빠도 오줌이 마려우면 소변부터 보아야지 별수가 있나. 그래서 소변소에서 급한 마음을 쉬어 가라는 뜻으로 ‘휴급소’라고 그 이름을 지은 거야“

70여 년이 지난 지금(只今), 전국 산사(山寺)의 뒷간마다 ‘해우소(解憂所)’란 목판(木板)이 걸려 있다. “아~하! 이렇게 해서 해우소(解憂所)란 말이 생겨났구나.” 

‘화장실(化粧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작명한 경봉선사(鏡峰禪師)의 기발(奇拔)함에 탄복(歎服)한다. ‘휴급소(休急所)’는 발음이 어려워서인지 잘 통용되지 않는다. 

관악산 연주암 해우소에서 육신(肉身)이 버린 배설물이 천야만야(千耶萬耶) 떨어짐에 해우(解憂)는 간데없고 섬뜩했던 기억이 난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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