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원청 대표 책임 물은 중대재해처벌법 최초 판결 눈길
[분석] 원청 대표 책임 물은 중대재해처벌법 최초 판결 눈길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4.10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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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업체 건설사 사장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선고
법 제정 2년 만에 처음, 노사 모두 판결에 불만 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원청 대표의 유죄가 선고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처음으로 원청대표의 책임을 물었다. 지난 2021년 제정 이후 2년만의 일이다. 그간 이와 관련해 10여건이 법원에 판단을 구했지만 원청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놓고 노사 양측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당연히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들끓고 있고 사측에선 사업 못하겠다며 울분을 터뜨리는 형편이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니 당연히 불거질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막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마냥 허수아비 노릇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것은 명백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 지난해 사업장에서 중대 재해로 숨진 사람은 256명이었다.

법 시행 전인 2021년의 248명보다 8명 많았다, 법의 유무와 관계없이 여전히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발생한 원청 대표의 유죄선고가 어느 정도 현장에 경각심을 불러올 것만은 분명하다. 

법의 적용은 오롯이 법원의 몫이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와 함께 하청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어떤 영향 미칠지 촉각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지난 3월 6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설사 온유파트너스의 대표이사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5월 온유파트너스가 진행하던 경기도 모처의 요양 병원 공사 과정에서 하청업체 근로자 B씨가 추락해 숨진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물은 판결이었다.

얼핏 보면 으레 있기 마련인 건설 현장의 사고쯤으로 여겨질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이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해 처벌받은 첫 번째 원청 대표를 탄생시킨 때문이다.  

5년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가 숨진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이 2년 만에 처음으로 결과물을 낸 사건이기에 더더욱 주목을 받은 것. 이와 비슷한 10여건의 사건이 법원에 걸려있는 터라 다른 관계자들 역시 이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운 터였다. 그리고 결과는 사상 첫 원청 대표의 유죄 판결이었다. 집행 유예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법원은 분명히 죄가 있음을 적시했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회사가 안전대 부착, 작업 계획서 작성 등 안전 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추락사했다”며 “피고인들이 업무상 의무 중 일부만 이행했더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원청 대표의 책임을 인정했다.

법이 적시한 내용 그대로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하여, 사업주 및 도급인에 대하여 보다 무거운 사회적·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 관하여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판결로 보여준 것. 중대재해처벌법이 단순히 법 조항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당연히 원청에 해당하는 사업주들의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길 때부터 있던 내용들이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 과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사고 무서워서 사업 접겠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원청 대표들의 반발은 익히 예견된 것이었다.

이를 고심한 흔적 역시 판결문에 묻어난다. 김 판사는 원청 대표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다만 건설 노동자 사이에 만연한 안전 난간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사망 사고 원인이 됐을 수 있다”며 “이 책임을 모두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다소 가혹하다”며 원청 측을 배려하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법 제정 때부터 불거진 논란. 즉 사업주의 의무를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기업인을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부분을 일견 의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사회 분위기 조성이다. 또한 최약자로 분류되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주의 의무 역시 강화되어야 하는 일이다. 

■ 안전 및 보건 확보 조치만 해도 될 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644명의 조사대상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사업장에서도 256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자료 고용노동부

유죄를 인정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된 탓에 원청 대표는 실형은 피하게 됐다. 이에 노동계가 즉각적으로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원청기업의 대표이사에게 형사 처벌이 선고되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으나,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에 불과한 형량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민주노총)거나 혹은 ‘중대재해처벌법 있으나마나법 되나’(한국노총)며 깊은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노동계의 반발은 이번 판결이 연이어 이어질 다른 사안들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 소중한 생명이 스러진 사건을 두고 이런 저런 감형 사유를 들어 집행유예 내지는 벌금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뒤따를 수도 있음을 염두한 것이다.

선고량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사업주가 안전 수칙을 준수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런 판결이 경각심을 고취시킬 수는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노동계의 실망도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이 완전히 뿌리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혹자의 말처럼 위헌적인 부분의 수정도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하고 사건의 수가 느는 만큼 법원의 판단도 축적될 테니 점차 자리를 잡아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점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바꿔놓을 풍경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는 다음과 같다.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에는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안전 및 보건 확보'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번 선고 역시 이 조항에 입각하여 결정되었다. ‘안전 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추락사했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내용이다. 향후 유사한 사건의 결론을 구한다 하더라도 이 조항은 반드시 인용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원청이건 하청업체 대표이사건 상관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안전 조치에 주의를 기울일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소중한 하청노동자들이 원치 않는 비극을 맞을 확률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2024년부터는 근로자 50인 미만 업체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된다. 이미 법은 만들어졌다. 이제 이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따라야 하고 그 행동이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엄정한 대응이 필요해질 시점이다. 그럼으로써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게 될 것이다. 제 2의 김용균씨가 나오지 않는 세상,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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