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유명무실 중대재해처벌법, 이대로면 노동자 외면법이라고 불러야
[이슈] 유명무실 중대재해처벌법, 이대로면 노동자 외면법이라고 불러야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8.29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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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이후 적용대상 사건 300건 넘지만 기소된 사례는 20건 남짓 불과
실형 선고는 단 2건에 그쳐.. 재벌 총수 처벌은 절대 불가한 누더기법
지난 8월 8일, SPC 계열사인 샤니공장에서 기계에 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50대 여성이 결국 10일 사망한 것을 두고 환노위 전체회의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사망 사고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진제공 민주노총
지난 8월 8일, SPC 계열사인 샤니공장에서 기계에 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50대 여성이 결국 10일 사망한 것을 두고 환노위 전체회의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사망 사고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진제공 민주노총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산업현장 재해를 예방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년 반이 지나도록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노동자들의 원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 지난해 기준, 총 611건의 산업재해 발생과 644명의 사망자 발생으로 하루 평균 2명 꼴로 애꿎은 노동자들의 비극을 경험하고 있음이 그 증거다. 

기본적으로 사용업체의 안전 의식이 제자리걸음인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에 못지않게 허술하기만 한 중대재해처벌법도 한몫을 했다는 것이 현장의 분석이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실제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경험치가 쌓이면서 안 그래도 유명무실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사문화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 

산업현장에서의 노동자 사망사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걷어내도 모자랄 판이지만 이 와중에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의 후퇴를 암시하는 행동을 이어가고 있어 이래저래 노동자들의 근심은 커져만 간다. 

■ 앞에서는 질타, 뒤로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 잇는 이중성 화들짝
지난 8월 18일,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산재사망사고 감축을 위한 건설업 안전보건리더회의'에 참석해 좀처럼 줄지 않는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해 쓴 소리를 날렸다는 기사가 각종 매체를 장식했다. 관련 유관기관의 총책임자인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당 기업들에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현 정부가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 엄중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돌아가는 상황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본지 7월 25일자 기사 <중대재해처벌법이 킬러규제? 대통령 한마디에 개정 불씨 솔솔>에서도 적시했듯, 정부의 행보 여기저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규제 완화를 암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의지를 수차례 내비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친기업 정서를 지닌 현 정부가 경영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예측은 벌써부터 있어왔다. 이를 반영하듯, 대통령의 킬러 규제 담론 직후부터 다양한 루트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31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건의서 정부 제출을 기점으로 시작된 경영계의 행보는 지난 8월 16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 자리에서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드러냈다. 중대재해처벌법 규제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초청해놓고 그에게 내년 1월 27일부터 적용 예정인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을 2026년 1월 27일까지 2년 더 연장해달라고 건의할 정도로 경영계의 공세는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단순한 건의 차원을 넘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업주에게 실형을 선고한 법원 판결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는 비판적 공세까지 더해 규제 완화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의 싱크탱크격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18일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위반 1,2호 판결상 인과관계 및 죄수 판단의 문제점' 보고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상 안전보건 확보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고 조치의무 사이에 인과관계 인정이 어려움에도 법원이 목적적으로 해석해 무리하게 이를 인정했다고 주장한 것이 그렇다. 또 죄수(범죄의 수) 판단 역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며 중대재해처벌법 규제 완화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아귀가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현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조만간 중대재해처벌법 규제 완화를 위한 정부 정책이 언제 발표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안 그래도 허술한 중대재해처벌법이 그로 인해 누더기를 넘어 쓰레기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노동자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지는 대목이다.

■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규제완화는 어불성설.. 야당, 노동계 발끈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현대비앤지스틸지회는 지난 8월 16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함께 국회의원회관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비앤지스틸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의 조속한 수립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금속노조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현대비앤지스틸지회는 지난 8월 16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함께 국회의원회관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비앤지스틸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의 조속한 수립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금속노조

입장을 달리하는 양대 세력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는 줄을 잇고 있다. 지난 8월 8일 SPC 계열사인 샤니공장에서 기계에 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50대 여성이 결국 10일 사망하는가 하면 그보다 앞선 지난 7월 18일에는 창원시 현대비앤지스틸 공장에서 노동자 2명이 철판에 깔려 1명이 크게 다치고 다른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사고는 현대비앤지스틸에서 지난해 9월과 10월에 이어 11개월 만에 일어난 3번째 사망사고다.

이에 해당 사업체 노동자들과 야당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원은 두 번째 사망사고 당시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대표의 구속기소가 있었다면 세 번째 사고는 없었을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강력한 적용을 촉구하기도 했다.

금속노조 현대비앤지스틸 지회 역시 불과 1년 안에 일어난 세 사고를 두고 회사가 노동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회사의 책임 회피 시도를 강력히 규탄하기도 했다. 금속노조는 현대비앤지스틸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조속한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촉구와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의 엄정한 적용, 중대재해의 책임자인 정일선 대표이사에 대한 구속 수사를 진행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부산고용노동청은 현대비앤지스틸의 산재사망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정된 것은 없는 상황이다.

바로 여기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맹점이 드러난다. 법률 제정 당시부터 거론되던 처벌을 통한 책임범위의 모호함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범위에 대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이 바로 '또는'이라는 단어다. 바로 이를 통해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비앤지스틸 사례처럼 산재가 발생해도 재벌 총수 등 실질적인 책임자가 아닌 안전보건 담당자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회의적인 이들이 이를 두고 재벌 총수 면책 조항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분명해 보이는 사건에도 기소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그 대상이 대기업일 경우, 처벌은 더 요원하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다. 지난 6월 18일, 민주노총이 성명서를 통해 재벌 대기업의 중대재해 건이 줄줄이 불기소 되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고 나선 것이 그 증거다.

검찰이 지난해 5월 폭발사고로 1명 사망 등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2번이나 사고가 발생한 S-OIL 중대재해를 처리하며 대표이사가 아닌 CSO를 경영책임자로 기소의견 송치했지만 그 CSO마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었는가 하면 LG전자 하이엠 솔루션의 설치수리기사 추락사망 사고에 대해 노동부는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의견 송치했으나 서울 동부지검은 이 또한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사유를 노동자 과실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 것.

수백 건의 사고에도 기소조차 쉽지 않은 현 상황을 대입해보면 노동계의 주장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노동계와 산업 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김병진 법무법인 사람 안전문제연구소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현장에서의 안전 불감증 완화 기류가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기업 대표가 처벌 조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모호한 법 조항을 개선함으로써 보다 강력한 예방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노동자 안전에 획기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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