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부끄러운 오명 임금체불공화국 탈피 위한 근본 대책 절실해
[이슈] 부끄러운 오명 임금체불공화국 탈피 위한 근본 대책 절실해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5.16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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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평균 체불액 1조 5천억.. 일본의 18배 달할 만큼 규모 커
체불임금 지연이자제,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근본 대책 뒤따라야
월급으로 가계를 꾸려나가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은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앞서야 한다
월급으로 가계를 꾸려나가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은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앞서야 한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자타공인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대한민국이지만 그 이면엔 차마 알리기 부끄러운 어두운 그림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임금체불이다. 매해 평균 1조 5천억원에 육박하는 임금체불로 노동자들이 신음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이에 관한 해법 찾기가 한창이다. 문제는 수시로 등장하는 해법들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그때그때 대응하는 미봉책 수준이라는 점이다.

임금체불은 월급을 받지 못한 단순행위, 즉 채무불이행 쯤의 행위란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탓이다. 본질은 이와 다르다. 임금체불은 체불 노동자가 부양하고 있는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강력하고 파괴력 있는 대처가 절실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임금체불에 대한 대응은 지극히 미온적이다. 그로 인해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에 비한다면 분명히 그렇다.

최근 정부는 매해 치솟고 있는 임금체불을 뿌리 뽑겠다며 제재방안을 발표했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시큰둥을 넘어 정부의 임금체불 박멸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수준이기까지 한 것이 문제다. 한 가정의 생존을 위협하는 임금체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향후 더 큰 눈사태가 우리 경제를 강타할 것이 분명하다는 지적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임금체불 피해자 70%는 비정규직, 취약계층 노동자

국내 임금 체불에 따른 처벌 수준은 극히 미약하다. 몇몇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처벌이 되더라도 대개 체불액의 10% 수준의 벌금형에 그칠 때가 많아 이를 악용하는 사업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임금 체불에 따른 처벌 수준은 극히 미약하다. 몇몇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처벌이 되더라도 대개 체불액의 10% 수준의 벌금형에 그칠 때가 많아 이를 악용하는 사업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임금체불 이슈는 당장이라도 시정해야할 악성 종양에 가깝다. 모든 지표들이 그를 증명한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체불액은 연간 평균 1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당장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월등히 큰 일본에 비해 18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그나마 신고된 액수가 이 정도다. 신고를 하지 않은 케이스나 신고를 했다 해도 다툼의 여지가 있어 고용노동부에서 인정되지 않은 내용까지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신고해 고용노동부에서 임금체불로 인정된 금액의 합계로 신고를 하지 않거나 신고했어도 당사자 간 다툼으로 인해 고용노동부에서 인정되지 않은 금액까지 고려하면 임금체불 규모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히 낯부끄러운 대목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체불액의 규모가 아니라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면면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임금체불 피해자의 대부분은 30인 미만의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는 점이 그렇다. 취업 일선의 최약층인 비정규직인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 사정이 이렇다보니 임금체불은 곧 생존권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정도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처벌은 미약하기만 하다. 노동자의 신고로 임금체불이 확인된다 쳐도 사업주가 받는 처벌은 벌금형이 고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그 액수도 체불액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에 그쳐 사업주들에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는 처벌이 되는 경우의 이야기다. 상당수는 처벌이 되지 않는 경우가 주를 이룬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체불 신고를 꺼리게 되고 반대로 사업주는 특별한 경각심 없이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정부의 허술한 대처와 엄격하지 못한 법 집행이 큰 몫을 담당했다. 현재 근로기준법 109조는 근로자의 임금을 체불한 기업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실형을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나마 선고되는 벌금 액수도 체불액의 30% 미만인 경우가 77.6%나 되는 통에 사업주들이 체불액을 지급하는 대신 벌금을 선택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아무리 주판을 두드려도 임금을 체불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임금 체불 케이스 중 3분의 1 가량이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악성 임금 체불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단기간의 효율을 중시한 선택인 셈이지만 멀리 보면 임금체불로 인한 손해 정도는 너무도 지대하다.

사단법인 직업상담협회 신의수 이사는 “임금 체불은 노동자들의 신뢰 속에서 성장해야 할 기업의 신뢰를 저버리게 하고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려 궁극적으로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이의 조속한 시정을 요구했다. 더불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임금체불이 노동 관련 법률과 제도의 규범력을 약화시키며 사법 비용을 늘리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될 것이고 경고했다.

■ 단순한 채무불이행 아닌 임금 절도라는 강력범죄 인식 가져야
좀처럼 시정되지 않는 만성적인 임금체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정부는 이와 관련된 대책을 내어놓기에 이른다. 지난 5월 3일 고용노동부는 ‘상습체불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임금체불 근절을 약속했다.

발표에 따르면 악의적 체불 사업주를 강제 수사하고,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이외에도 신용 제재를 하는 등 경제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것. 주된 골자를 보면 형사 처벌과 명단 공개, 신용 제재, 지연 이자 등 현행 제재 수단의 미흡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를 보완하기 위해 꺼내든 것이 경제적 제재다. 미약한 형사 처벌보다 경제적 손실을 실질적으로 높인다면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려는 동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논지다. 

이날 발표에 나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재산 은닉, 출석 거부 등 악의적 체불 사업주는 구속수사, 체포영장 신청 등 적극적 강제수사로 체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임금체불이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의 경우 체불 사건에 대해 ‘건살산업기본법’을 위반한 불법 하도급 여부를 필수적으로 조사하고 위법 사실이 확인된 경우 지자체 등에 통보해 추가적인 행정조치가 이루어지게 할 방침도 천명했다.

동시에 상습체불 사업주는 국가·지자체 지원사업이나 보조가 제한되고, 1년간 공공 입찰 시 감점 등 불이익을 준다. 임금체불 자료는 신용정보기관에 제공돼, 1년간 사업주가 대출·이자율 심사나 신용카드 발급 등에 영향을 주는 신용 제재도 받게 된다.

국가가 체불임금을 사업주 대신 근로자에게 지급한 뒤 사업주에게 청구하는 대지급금 제도도 개선한다. 대지급금을 갚지 않은 사업주를 신용 제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고액·반복 수급 사업장은 집중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차질 없이 시행해 임금 체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질적 당사자인 노동계의 입장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가장 중요한 해결방안이 누락되었다는 이유다.

그간 노동계는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선행 요소로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폐지 ▲체불임금 지연이자제 전면 적용 ▲임금채권 소멸시효 확대 등을 줄곧 주장해 왔다. 이번 발표에서 이 조항들이 모두 빠져있음을 확인한 노동계가 환영의 의사를 내비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난 2015년 도입된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는 사용자에게 합의 동기를 제공해 체불임금 청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합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을 빨리 받기 위해 금액을 줄여서 합의를 하게 만드는 악질 조항이니만큼 폐지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임금을 늦게 준만큼 그간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 지급을 법으로 강제하는 입법 활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상 3년으로 되어있는 임금채권 소멸 시효를 5년으로 늘려야한다는 것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이치라지만 그간 임금체불에 대한 대응은 너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이대성 교수는 “이번 대책이 경제적 제재를 통한 지점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요소”라고 언급하면서도 “근본적 해결책이 누락된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이와 관련된 정부의 액션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면서 임금체불로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 조속한 조치를 권고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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