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5]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뉴질랜드 방문기 4)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5]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뉴질랜드 방문기 4)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0.09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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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지금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우리 네 아들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이민 온 때가 1999년이 거의 저물어 가는 12월 끝 무렵이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둘째와 셋째가 각각 중 3, 초등학교 졸업반이었고, 막내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오자마자 막내는 뉴질랜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고, 세 형들은 모두 고등학교인 타카푸나 그래머 하이 스쿨에 입학시켰다. 

뉴질랜드 학년제는 초등학교(primary) 5년, 중학교(intermediate school) 2년 그리고 고등학교(high school) 과정 5년으로 되어 있어서 첫째와 둘째는 고등학교 과정에 입학하면 됐지만, 셋째가 좀 애매했었는데 생일이 빨라서 그냥 형들과 함께 고등학교 과정에 입학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만 나온 아이를 고등학교 과정에 입학시킨 것이 무모했었지만, 어차피 영어는 학교 다니면서 부딪치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형들과 함께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에 밀어붙였다. 

막내는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교장 선생님이 아이가 영어도 모르고 아무래도 환경이 낯서니까 일정 기간 아이 옆에 있어 줘도 된다고 했지만, 난 반 배정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하고 집으로 와버렸다. 친절한 뉴질랜드 선생님을 믿은 것도 있지만, 어떻든지 아들이 부딪쳐서 혼자서 이겨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 남겨진 막내가 안쓰럽고 걱정된다며 어떻게 그토록 모질고 매정할 수 있는지 아내는 불평불만을 쏟아내었지만, 의외로 학교로부터 염려하는 전화가 없었고 집에 돌아온 막내아들이 학교가 재밌다고 하는 소리에 비로서 안심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외국 학교생활이 시작된 아이들이 하루빨리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일체의 한국 노래, 예능 및 드라마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피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나고 어느 정도 한국 문화를 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한국 문화가 끌리고 자연스럽고 편한 것 같았다. 물론 언어적으로도 한국어가 모국어이기에 편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한국 노래를 듣지 못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둘째와 셋째는 여전히 한국 노래를 찾아서 듣는 거 같았고, 더 나아가 같은 학교에 다니던 한국 친구들과 함께 ‘wings’라는 댄스 그룹을 만들어 학교에서 다양한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인터내셔날 데이’(international day)행사에서 한국 대표로 나서서 한국 노래에 맞춰 춤을 선보였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K-pop 아이돌 그룹의 원조격이다. 

우리 부부도 행사에 초대받아 공연을 보는데, 키위 학생들이 우리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환호하며 한국 노래와 춤을 즐기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아이들 댄스 그룹(wings)이 같은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근처 다른 학교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었다. 

아빠의 말을 듣지 않고 한국 음악에 빠져 춤까지 추는 아이들이 괘씸하다는 생각보다 낯선 나라에 와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아이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춤 실력도 거의 준프로 정도는 되는 것 같아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 한국 노래 금지령이 풀리게 되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한국 드라마와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을 포함한 한국 문화 콘텐츠들이 집안에 스며들게 되었다. 물론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전통 그리고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봐줘야 한다는 친구의 은근한 압력도 한몫했다.

아무리 말리고 막아도 우리 아이들이 외국에 살면서 결국 한국으로 눈을 돌렸듯이 외국에 살다 보면 사소한 일이라도 한국과 관련된 것에는 애정을 갖고 보게 된다.

한 예로 우리가 이민갔을 때만 해도 길에 돌아다니는 차 대부분이 일본, 호주 아니면 유럽 차였고 한국 차는 가물에 콩 나듯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간혹 한국 차를 발견하면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그 차를 소유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좋은 사람이리라고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따른 애정까지 느낄 정도였다. 
 
이젠 한국 음식점이 키위들로 붐비고, 시내 공원에서 한국 음악에 맞춰 키위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거나, H 자동차 매장이나 S사 휴대폰 매장이 당당하게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국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조국에 대한 불평불만이 있는 사람, ‘헬조선’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모두 외국에 나와 봐야 한다. 외국에 나와 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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