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7] 사람이 먼저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7] 사람이 먼저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0.24 0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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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뉴질랜드 복지 제도 중에 학자금 융자와 생활비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인정하는 교육 기관에서 공부하길 원하는 경우, 학자금을 융자해 준다. 

졸업할 때까지 갚지 않아도 되고, 졸업 후 일정 수입 이상 벌게 되면 아주 낮은 이자를 붙여 소액으로 융자금을 장기간에 걸쳐 부담 없이 상환하게 된다.  

또한 공부하는 동안 생활비를 보조해 주는데, 이 생활비는 나중에 갚지 않아도 된다. 이런 교육 복지 제도 덕분에 뉴질랜드 젊은이들은 고등학교만 마치면 대부분 독립해서 생활하려고 한다. 

대학 등록금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정부에서 융자받고, 생활비 보조를 받아서 렌트로 집을 얻어 분가하여 생활한다. 부모들도 고등학교를 마치면 그렇게 떠나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나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대를 다닐 때 이 제도 덕을 보았다. 학자금 융자를 받고 생활비 보조도 받을 수 있어서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물론 졸업하고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조금씩 갚아 나갔다. 

워낙 이자도 적고 원리금 상환도 소액이다 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국 한국에 나와 있으면서 남은 금액을 일시금으로 모두 상환했다.

이 제도는 비단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와 관계없이 공부하고 싶으면 교육 기관에 등록하면서 학자금 융자 신청서에 서명하면 학교에서 대신 처리해 준다. 

정식 교육 기관에 등록하여 공부하면 생활비 보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부에 뜻이 없더라도 수강 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부 교육 기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쉬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내가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처음으로 교육받고 자격증을 딴 후에 잠시 일했던 사설 컴퓨터 전문 교육 기관도 뉴질랜드의 교육 보조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다.

컴퓨터를 처음으로 입문하려는 생초보 교육생부터 전문적인 코딩 프로그램을 배워 자격증을 따려는 교육생까지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영되었다.

그 당시 전문학교 교장은 브렛 베니슨(Brett Bennison)이라는 키위였다. 키는 180 중반쯤 되어 보이고 대머리에 안경을 쓴 얼굴은 크지 않았지만, 배둘레헴(?)이 초 비만형이라 한눈에도 거대하게 보였다. 

안경 너머로 번득이는 눈은 날카로웠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성품이 인자한 사람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학교 입학 과정으로 배우고 싶은 교육 과정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하면 입학 허가를 받기 전에 교장과 인터뷰하는 과정이 있었다.

베니슨 교장은 누추한 행색을 하고 누가 보아도 공부에 뜻이 없이 오직 수강 기간 중 생활비 보조를 받기 위해 입학하려는 사람과 인터뷰 할 때라도 항상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진지하게 상담했다.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의 이익이 아니라 항상 수강생이 먼저였다. 학교 운영에 도움이 되는 고비용의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수강생의 여건과 상황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나중에 쉽게 갚을 수 있도록 낮은 비용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기 일쑤였다. 

또한 교육 중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어서 찾아가 상담하면 학교를 통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존경과 인정받는 선생님이었다.

결국 학교보다는 수강생들을 먼저 챙기는 그의 운영 철학이 이사진들과 맞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마지막 날에 수강생들이 모여 그가 보여준 사랑과 배려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눈물로 떠나는 그를 배웅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었다.

베니슨 교장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고, 내가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맺은 인간관계였기에 그로 인해 뉴질랜드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은 베니슨 교장이 보여준 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뉴질랜드인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 예로 뉴질랜드에만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있다. 바로 길을 건널 때이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신호등에 따라 차가 멈추고 사람이 건너가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신호등이 없는 길에서도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보이면 운전사는 차를 멈추고 사람이 먼저 건너가게 해준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사람 먼저라는 자세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또한 골목에서 차를 끌고 나와 끼어들어야 할 경우, 차도에 있는 차들이 길이 막혀 서행 중일지라도 대부분 먼저 끼어들 수 있도록 양보해 준다. 혹시라도 차가 끼어들까 봐 앞 차 꽁무니에 바짝 차를 갖다 붙이는 인색함에 익숙해 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게 되고, 양보해 준 차 주인도 미소 지으며 응답한다. 작은 양보로 하루가 행복해진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당연한 담론의 시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상대방에 대한 조그만 배려와 여유로움에서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나는 길고 흰 구름의 나라인 뉴질랜드에서 보고 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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