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전대길의 CEO칼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편집국
  • 승인 2020.03.0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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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중국의 4대 발명품’은 ‘종이, 나침반, 화약과 인쇄술’이다. ‘중국의 4대 요리’는 ‘베이징 요리, 상하이 요리, 사천요리, 광둥요리’를 친다. 그렇다면 중국을 대표하는 4대 미녀(美女)는 누구일까?

춘추시대 말기 월(越)나라의 ‘沈魚 西施(심어 서시)’, 한(漢)나라 원제의 후궁인 ‘落雁(낙안) 王昭君(왕소군)’과 삼국지에 나오는 동한(東漢)시대의 ‘閉月(폐월) 貂蟬(초선)’그리고 양귀비 미모에 반해서 함수화(含羞花)가 꽃잎을 말아 올렸다는 당나라의 ‘羞花(수화) 楊貴妃(양귀비)’를 중국의 4대 미녀로 손꼽는다. 

그런데 ‘봄이 오더라도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의 유래는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 이는 중국의 4대 미녀인 ‘落雁(낙안) 王昭君(왕소군)’과 연관이 있음을 알았다.                   

     落雁(낙안) 王昭君(왕소군)
     落雁(낙안) 王昭君(왕소군)

황량한 초원지대 흉노의 땅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 없는 낙안 왕 소군의 가슴 아픈 심경을 헤아려 ‘당나라 시인 동 방규’는 <소군원>이란 詩에서 노래했다. 다음은 <소군원>이란 시 내용이다. 

漢道初全盛(한도초전성) 朝廷足武臣(조정족무신)
何須薄命妾(하수박명첩) 辛苦遠和親(신고원화친)
한(漢)나라 국운이 처음에는 융성했으며 조정에는 무신도 넉넉했다네.
어찌 꼭 박명한 여인이 괴로움을 겪으며 먼 곳까지 화친하러 가야 했던가.

 

掩涕辭丹鳳(엄체사단봉) 銜悲向白龍(함비향백룡)
單于浪驚喜(선우랑경희) 無復舊時容(무복구시용)
흐르는 눈물 가리고 단봉성을 떠나 슬픔을 삼키며 백룡대로 향하네.
선우(單于)는 놀라 기뻐했으나 더 이상 옛날의 그 얼굴 아니었다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

 

한(漢) 원제(元帝) 원년 왕소군은 18세의 나이에 후궁으로 선발되었다. 그 당시에는 궁녀들의 초상화로 황제가 후궁을 선발했다. 그러나 왕소군은 집안사정이 빈천(貧賤)해서 초상화를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5년 간 한 차례도 원제의 눈에 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남흉노의 ‘호한야선우(呼韓耶單于)’가 원제를 알현하러 한나라에 왔을 때 연회(宴會)에서 그가 절세미인 왕소군을 한 눈에 알아보고는 원제에게 왕소군과 함께 남흉노로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왕소군이 한나라를 떠나는 슬픈 마음에 마상(馬上)에서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하던 중에 마침 날아가던 기러기가 아름다운 비파소리와 마상(馬上)에 앉아있는 왕소군의 미모(美貌)에 취해서 그만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후 왕소군의 미모가 ‘기러기가 떨어질 정도’라고 해서 ‘낙안(落雁)’이란 애칭을 얻게 되었다.

2020년 3월5일 경칩(驚蟄) 날 아침을 맞았다. 새 봄은 분명히 왔건만 삼천리 금수강산에는 비말(飛沫)로 전염된다는 ‘코로나 바이러스19’가 기승을 떨치고  있다. 마스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長蛇陣)을 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심(愁心)이 가득한 눈망울로 말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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