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이드-사랑이라 불리는 반창고
밴드에이드-사랑이라 불리는 반창고
  • 승인 2001.03.09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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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 불리는 반창고 - 밴드에이드 )


* 아내의 손을 위한 남편의 선물

1920년, 비둘기처럼 다정한 신혼부부 에를과 조세핀 딕슨은 뉴저지 주
의 보금자리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엌일이 서툰 젊은 아
내는 걸핏하면 섬세한 손을 데서 우아한 손가락을 베곤 했다. 그때마
다 의사의 아들인 남편은 조심스레 다친 손에다 거즈와 접착성 물질
을 발라주곤 했다.

그는 서투른 부인 조세핀이 그가 없을 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밴드
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약간의 의료용 반창고에다가 거즈를 대고 작
은 천 조각을 붙였다. 소중한 아내에게 주는 남편의 이 애정어린 선물
은 훗날 세계에서 제일 편리한 치료용품이 되었다.

그 이름 밴드-에이드! 지난 75년 동안 존슨 앤 존슨은 2억5백만 상자
가 넘는 밴드상품을 팔았다. 밴드에이드는 존슨 앤 존슨의 상품가운
데 가장 수지 맞는 상품이었다.


* 우리가 소독을 알게 되기까지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지혈이 상처가 스스로 아무는 것과 관련 있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진흙이나 진흙에 갠 풀이 상처보호나 지
혈에 쓰였다. 19세기 말, 의사 조셉 리스터는 상처를 깨끗이 소독하
기 위한 일종의 감염 차단제로 탄산을 사용했다.

현대의료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는 이 영국
인 의사가 패혈증 방지 규칙을 세운 것이다. 그는 환자의 상처보호에
쓴 천은 반드시 끓여서 소독한 다음에 쓰도록 지시하여 천을 통한 감
염을 막았다.

1876년 뉴저지의 사업가 로버트 우즈 존슨은 리스터의 이론에 감명을
받아, 감염의 위험에 대해 미국인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당시로서는 좀 급진적인 수준까지 나아갔다. 즉, 비
전문가도 살균된 밴드 같은 것을 붙인다면 가벼운 상처 정도는 응급처
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응급처치법은 무수한 생명을 구
하고 고통을 줄여주게 된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하나를
태동시키는 기원이 되기도 했다. 그 기업이 다름 아닌 [존슨 앤 존슨]
이다.

* 참신한 발명과 탁월한 혜안이 만나다.

딕슨은 존슨 앤 존슨에 고용되었다. 아내를 위해 밴드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들이 그 아이디어를 존슨 앤 존슨에 제안해 보라고
권했던 것이다. 사장은 이 독창적인 발명품의 가능성을 즉시 파악하고
는 응급접착 밴드를 생산하라고 지시했다. 너비 7.6cm, 길이 45.7cm
에 떼어낼 수 있는 크리놀린을 붙여 놓은 초창기의 제품은 수작업으
로 만들어졌다. 소비자들은 필요한 만큼 잘라서 쓰기만 하면 되었다.
상표 밴드에이드를 제안한 사람은 공장의 분쇄설비 감독인 존슨 케년
이었다.

밴드에이드는 서서히 인기를 얻어갔다. 수요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의 보이스카우트 연대에게 무료로 샘플을 나눠주었더니 이를 본
오하이오주의 한 판매원은 클리블랜드의 모든 정육점에다 밴드에이드
를 놓아두기도 했다.

존슨 앤 존슨의 조사부장은 상품의 효력에 확고한 자신이 있었다. 의
사 프리드리히 킬머는 살균밴드가 얼마나 감염 방지에 효과적인지 알
고 있었다. 그는 존슨 앤 존슨의 약사 잡지 [적십자노트]의 편집장으
로서 밴드에이드를 칭찬하는 사설도 쓰기 시작했다.

수십년에 걸친 개선작업으로 통풍구가 첨가되었고, 반투명이나 투명
한 제품 혹은 유연성이 더 좋은 제품 등으로 낱개 포장되어 출시되기
도 했다.

* 반창고 대전쟁

밴드에이드와 경쟁사 간의 전쟁은 살균력 뿐 아니라 접착력의 우월성
에도 초점이 맞춰졌다. 1930년대, 존슨 앤 존슨은 광고에서 “더 빠르
게, 더 반들거리게, 더 착 달라붙게”로 상품의 우수성을 정리했다.
이어진 광고는 밴드에이드를 정말로 열기 힘들었던 당시 기차의 창문
에 빗대서 “매일 기차 창문처럼” 붙어있다고 알렸다.

존슨 앤 존슨의 주 경쟁사인 바우어 앤 블랙스 쿠라드는 밴드시장에
서 자사만의 특화된 강점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동층을
주 타겟으로 삼는 전략을 세웠다. 쿠라드 사는 리본에다 갖가지 색깔
도 들어간 “뗄 때 아프지 않은 밴드”로 공격의 포문을 열였다. 이
에 밴드에이드는 성조기 모양의 빨강, 하양, 파란색 줄 모양으로 응수
했다. 점차 어린이 밴드시장을 둘러싼 전쟁은 포장 겉면동물, 자동
차, 만화캐릭터 등을 인쇄하는 것으로 이어져 갔다.

밴드에이드 TV광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끓는 물 속의 달걀에다 밴드
에이드를 붙인 것이다. 우수한 접착력은 밴드에이드가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밴드에이드 포장의 빨간 줄은 스탠리 메이슨 주니어의 영리한 아이디
어였다. 그는 종이에 더 잘 뜯기는 얇은 부분을 만들어 상자를 더욱
열기 쉽게 만들었고, 생산비도 절감할 수 있게 했다. 밴드를 발명한
딕슨은 1957년 존슨 앤 존슨에서 퇴직했다. 그는 1929년에 관리자 위
원회의 일원이 되었고 1932년 이후로 부사장으로 일해왔었다.


‘아내를 위한 남편의 선물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감염을 막아주었
도다.



( 자료원: 앨린프리먼&보브골든, 메타브랜딩 역, ‘아차,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세종서적, pp.5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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