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에 개정된 공정거래법
불황 속에 개정된 공정거래법
  • 승인 2004.12.1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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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하자 재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유지와 재벌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 부활 등입니다.

재계에서는 이러한 과도한 기업 규제가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고 외국 자본의 적대적 M&A에 국내 기업이 맥없이 무너질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하라고 기업에게 말할 자격도 없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상 기업은 새로운 기업 환경에 대응할 전략을 마련할 때입니다.

우리의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 투명성과 지배구조를 크게 개선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전 경영이 가장 투명하다는 국민은행이 회계 부정사건으로 행장이 교체되는 진통을 겪은 것처럼 낡은 기업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연결돼 우리 상장사의 가치가 말레이지나아 태국보다 낮은 왜곡된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주식 시장의 가치가 최소한 대만 수준만 돼도 200조원의 GDP가 창출될 것이라는 KDI의 분석 자료도 있습니다. 기업들의 투명한 경영이 큰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재벌 계열의 금융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적대적 M&A에 쉽게 노출된다는 주장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외국인 지분율이 70%가 넘는 국민은행이 좋은 사례입니다.

회계부정 사건 당시 외국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김 정태 행장의 교체에 대해 마음만 먹었다면 기업 인수합병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M&A보다는 국민은행이 더욱 투명한 기업이 되도록 감사를 늘리자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외국 자본이란 이익 실현이 주 목적이란 점이 확인된 셈입니다.

기업이 애써 벌어 놓은 돈을 경영권 방어에 쓰다 보면 투자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가령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율 54%에 오너를 포함한 비금융 계열사 지분 8.9%, 그리고 상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 지분 8.9% 등으로 주식이 나눠져 있습니다.

내부 지분율이 17.8%에 이르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오는 2008년부터는 새로운 제한 규정에 걸려 금융 계열사 지분 15%를 초과하는 2.8%의 의결권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25%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형편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계열 금융사가 보유한 고객의 돈으로 손쉽게 기업을 장악하는 관행에서는 벗어나지 않으면 성숙한 선진 기업으로 도약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기업 사주의 돈이 투입돼 지분율을 높인다면 기업의 투명성은 크게 높아지고 결국 그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책 시행과정상 정부 역할의 정교함도 기업의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시장에서 정부 정책은 완급조절과 타이밍이 맞아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경기 불황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싯점이라면 아무리 정당한 명분을 갖춘 정책이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경제 정의를 실현한다는 원칙에만 매달리다가 실제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악성 자본이 우량 기업을 흔든다면 정부는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업들이 정부의 정책에 승복하고 따를 수 있도록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인 의견은 충분히 반영해야 합니다. 정부가 재벌 개혁을 시도하는 것도 우리 기업을 살리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우리 경제를 기탱하고 국제 경쟁력을 키워가는 기업들이 더욱 분발하는 방향으로 정책은 집중돼야 합니다. 노 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 길에서 우리 기업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것도 기업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기업은 기본적으로 탐욕스럽다'는 반기업정서가 정부 정책 입안자의 생각 속에 존재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버려야합니다.

이 정희 CBS해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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