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노사화합의 원천은 ‘일자리 나누기’
네덜란드 노사화합의 원천은 ‘일자리 나누기’
  • 이준영
  • 승인 2015.08.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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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풍차의 나라, 고흐와 램브란트의 나라, 대마초와 홍등가가 합법인 나라. 네덜란드를 표현하는 말은 많다. 네덜란드는 바다보다 낮은 땅을 개척하며 나라를 만들었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네덜란드의 노사 관계도 사람이 만들었다. 네덜란드인들은 노사관계에도 세계적으로 드문 다양한 경험을 녹여냈다. 노사간 자발적 합의로 임금을 깎고,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눴다. '고임금 고비용'이던 노동시간 구조를 유연하게 바꿔 가장 짧은 근로시간으로 가장 뛰어난 생산성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더치 디지즈(Dutch Disease), '네덜란드병을 앓는다'는 말을 듣던 나라가 이제는 '어느 나라보다 경쟁력이 높은 나라'로 변신했다.

네덜란드의 사례를 단순히 한국 사례에 접목하긴 어렵다. 교육과 문화, 역사의 바탕이 한국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대타협은 해마다 파업을 반복하는 한국 노사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 '비결은 파트타임'

1980년대초 네덜란드와 2015년 한국의 노동시장 상황은 참 닮았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이전까지 고비용 고임금 구조에 복지 지출 확대를 통한 고복지 사회를 지향했다. 최근 한국이 정년을 연장하고 통상임금 확대를 추진하면서 각종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네덜란드의 고비용 고복지 정책은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1970년대 들어 고용이 매년 감소하더니 실업률이 치솟았다. 1970년 1.4%였던 실업률은 1983년 10%까지 치솟았다.

극적인 반전을 보인 계기는 '바세나르 협약'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북부 바세나르지역에서 고용주연합과 노동조합 대표들이 노사 관계를 규정하는 78개 조항에 대해 합의했다. 이 협약 이후 노사는 일자리를 나누고 임금안정을 통해 월급을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70년대까지 연평균 8.7%에 달하던 임금 상승률은 바세나르 협약 이후 마이너스 3.4%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노사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통해 고용 유연성을 크게 올렸다. 네덜란드의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OECD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짧다. 2000년에 이미 주당 36시간 근로 체제를 갖췄고 최근에도 30시간대를 근로시간을 보인다. 한국은 최근 주당 52시간의 근로시간을 48시간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수준이다.

평균 근로시간이 짧은 비결은 '파트타임'이다. 네덜란드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이 아니라 풀타임과 파트타임 구분으로 근로조건을 나눈다. 풀타임은 주간 40시간 이상 근무를 하지만 파트타임은 원하는 시간을 정해 근무한다. 근로조건이나 복지 등은 동일하고 일하는 시간에 따른 임금 차이만 있다.

네덜란드는 2014년 기준 고용률은 74.7% 수준이다. 한국은 지난해 고용률 65.3%를 보였고 70%를 목표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속적인 고용 유연화와 일자리 창출 노력 덕으로 안정적인 고용률을 유지하고 있다.

◇파업 대신 대화를…시대마다 이어진 협약들

네덜란드의 노사 대타협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대와 경제상황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게 새로운 협약을 했다.

1992년 경기침체가 재발하면서 GDP 성장률이 다시 둔화됐다. 네덜란드는 좌우 연정의 빔콕 수상을 중심으로 경제개혁을 다시 추진한다. 빔콕은 1983년 바세나르협약 당시 노동자 대표로 사인했던 인물이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진보세력에 서있던 인물이다.

정권을 잡은 빔콕 수상은 '뉴코스 어코드'(New Course Accord)를 통해 임금 구조에 대한 개혁을 재차 추진한다. '뉴코스 협약' 이후 임금인상을 최대 2.5%로 억제키로 하고 정부 지출과 세금도 함께 줄이는 노력을 병행한다.

1998년엔 임시직 고용을 쉽게 하고 해고를 간단하게 하는 '고용시장 유연 안정화법'을 만들었다. 이 법의 골자는 기간제 계약을 3년간 2회 갱신토록 하고 파견직 3회 연속 계약을 통해 유연성을 확보하는 정책이다. 다만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법도 함께 제정해 근로시간 외에 다른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2013년 또다시 잡셰어링…'젊은세대'도 책임진다

네덜란드 노사는 2013년들어 다시한번 일자리 나누기에 나섰다. 바세나르협약과 잇단 협약에 의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이뤘지만 유럽발 재정위기가 악화되면서 다시 경제위기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2008년 3%에서 2013년 6.7%까지 올라서자 일자리 나누기를 했다.

2013년 일자리 창출은 단순히 임금을 깎는 것을 넘어서 지역 단위의 일자리 센터로 확대됐다. 2013년 11월 노사 합의를 통해 네덜란드는 노와 사가 공동으로 전국 지방 35곳에 지역별 잡센터를 내기로 했다.

35개 지역 잡 센터엔 지방자차단체 400여곳이 직간접으로 참여했다. 사기업은 물론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까지 일자리를 만들고 취업준비생들에게 적당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잡센터 운영엔 근로보험 에이전트인 UWV가 함께 참여한다. UWV는 근로자들이 내는 보험료로 운영되는 실업보험 운영사다. 사실상 기존 근로자의 비용 부담으로 일자리를 찾는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네덜란드는 2014년 기준 1인당 GDP가 4만7155달러에 달한다. 독일 4만4788달러, 영국 3만9216달러, 프랑스3만8858달러에 비해서도 높다. 근로시간은 가장 짧으면서 가장 효율적인 생산성을 보이는 셈이다.

가장 큰 비결은 탄력적인 고용 시장과 협력적인 노사관계 덕이다. 클라라 분스트라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법학교수는 "네덜란드의 가장 큰 변화는 파트타임을 확대했다는 점에 있다"며 "한국 상황에 단순 적용은 힘들겠지만 고용유연성과 안정성의 조화를 꾀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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