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 인연(因緣)에 대하여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 인연(因緣)에 대하여
  • 편집국
  • 승인 2021.03.23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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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스치는 인연이란?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나는 2시간이 넘는 강의를 할 때는 가수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노래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이선희라는 가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까닭도 있지만, 이 가수만큼 안티팬이 없는 가수도 드물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들려주어도 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선희 가수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도 “그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노래를 들려주는 이유는 물론 노래 자체도 좋지만, 가사 중에 “억겁의 시간이 지나 또다시 만나…”라는 말 중에 들어 있는 “겁”(劫)을 설명해 주기 위함이다.

“겁”(劫)이란 용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라고 설명되어 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 유순(由旬)의 큰 바위를 1백 년마다 한 번씩 비단 옷자락으로 닦아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1 유순(由旬)은 약 15km니까 나는 강의할 때 좀 더 현실감이 있도록 제주도 한라산의 예를 든다. 한라산의 높이가 1,950m이니까 한라산의 약 8배 정도 되는 산을 1백 년에 한 번씩 천으로 닦아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설명을 해주면 훨씬 더 쉽게 이해를 한다.

그렇게 상상할 수도 없이 긴 시간이 겁이라는 것을 알려준 다음, 자연스럽게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인연에 관한 얘기를 해준다. 

인연(因緣)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되어 있다.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인연을 불교의 범망경(梵網經)에서는 겁(劫)이란 시간 단위로 구별하고 있다.

즉, 우리가 만남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인연을 만나는 것도 500 겁의 시간이 지나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옷깃은 정확히 정의하자면 한복에서는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이고, 양복에서는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을 말한다.

따라서 “옷깃”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서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되려면 적어도 포옹이나 껴안을 정도의 관계가 되야 하니까 가벼운 인연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란 낯 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것 같은 사소한 일도 모두 전생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뜻의 타생지연(他生之緣)에서 나온 말이기에 옷깃이란 정의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또한 국립국어원에서도 속담은 구전된 거라 실제로 소매가 스친 상황을 옷깃을 스쳤다고 써도 문제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여간 이렇게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소한 인연을 만나려고 해도 겁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500번이나 지나야 한다고 하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은 인연이란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고, 그런 인연도 참으로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는 인연은 1,000 겁, 하룻밤을 같이 묵게 되는 인연은 3,000 겁, 한동네에 사는 인연은 5,000 겁, 부부의 연을 맺는 인연은 7,000 겁,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는 인연은 8.000 겁, 형제자매의 연을 맺는 인연은 9,000 겁 그리고 스승과 제자가 되는 인연은 10,000 겁이라고 한다.

부부의 인연은 무려 7,000겁이나 된다. 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사이가 데면데면해진 부부들도 부부의 연이 이렇게 헤아릴 수도 없는 겁이라는 시간이 7,000번이나 지나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다시 애틋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부는 이혼하면 남남이 되니까 결코 남이 될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보다 적은 것이다. 또한 한 태에서 태어나는 형제자매의 인연이 부모자식의 인연보다 더 크다고 보았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스승이기 때문에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부모와 자식의 인연보다 귀하다고 여겼다.

이처럼 불교에서 말하듯이 모든 인연은 소중하다. 옷깃만 스치는 것도 이런 어마어마한 시간을 지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같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나 차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인연은 얼마나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 

요즘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해 너무나도 쉽게 인맥을 형성하며 인연을 쌓을 수 있다. 나이, 국적, 성별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종종 글을 올리는 페이스북에는 추리고 추렸는데도 친구라고 인연을 맺은 사람이 1,160명이나 된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친구 요청을 해오고 있고, 내가 응하기만 하면 쉽게 친구가 된다. 

또한 카카오톡의 단체 체팅방인 단톡방이나 밴드를 통해 가입된 곳만 10곳이 넘는다. 모두 언젠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만난 적이 있거나, 같은 목적으로 단체에 가입하여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계속 인연을 맺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고 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헤프게 인연을 맺든지 또는 쓸만한 인연을 맺든지 내가 결정하는 일이고, 옷깃을 스치고 지나치는 인연이라도 잘 살리는 것도 모두 내 몫이다. 물론 그에 따른 결과도 당연히 내가 감수해야 한다. 결국 어떤 인연을 만나든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내 탓인 것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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