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휴대폰 업계, 비상구는 없나
중견 휴대폰 업계, 비상구는 없나
  • 승인 2004.09.2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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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의 절대악인 '실업'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경기가 풀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기적 실업'과 또 다른 하나는 경기가 풀려도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실업'이다.
이중 구조적 실업은 당사자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등 자기 계발의 피나는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빗대자면 세상은 디지털 휴대폰을 찾는 데, 아날로그 휴대폰 생산만을 고집해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 중견·중소 휴대폰 업계가 부딛치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런 경우다.

◆산업의 구조가 바뀐다

휴대폰 산업의 골격이 기존 진입 장벽은 무너지고, 새로운 진입 장벽이 생겨나면서 크게 바뀌고 있다.

우선, PC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초 부품이나 기술 등의 표준화와 모듈화가 진전되면서 휴대폰 개발 장벽은 거의 허물어지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하나는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PC 산업을 주름잡았던 대만, 중국 등이 이제 휴대폰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가격 싸움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얼마전 모토로라가 GSM 휴대폰 납품 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실시했는 데, 대만에서 위너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 업체가 제시한 가격은 대당 38달러로, 우리나라로서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가격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 팔리고 있는 휴대폰의 종류가 1천여종에 달한다"며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이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하나는 제품간의 차이를 메워 버린다는 점이다. 내가 만든 것을 남이 만든 것과 비교하면 기능, 디자인 등의 측면에서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진입 장벽을 만든다.

우선, 브랜드 외에는 결국 차별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연간 1천~2천만대 이상의 규모를 찍어내지 않으면 더 이상 가격 경쟁의 회오리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진다. 규모의 경제가 새로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뿐 아니다. 차별화를 위한 기술의 융합화는 앞으로 휴대폰의 멀티미디어화, 고기능화를 촉발하고 있는 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개발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단말기 1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종전에는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10여명이 투입되었는 데, 이제는 적어도 20여명 이상은 필요하다.

따라서 이제는 브랜드, 규모의 경제, 첨단기술 개발력 등의 3박자를 갖췄느냐 못했느냐가 이제는 산업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무엇을 해야하나

이미 세계 휴대폰 산업이 이 같은 궤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중견·중소업체들도 이제는 더이상 기존의 습성만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중국 의존도를 탈피, 새로운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시도는 '응급조치'일 뿐이다. 특히 강자들의 눈을 피해 동남아 등 작은 시장을 중심으로 아성을 쌓아봐야 '단기 생존전략'에 그칠 공산이 크다.

언젠가는 작은 시장도 글로벌 경쟁의 회오리에 휘말리기는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가 경쟁력 확보도 쉽지 않다.

휴대폰 제조원가는 재료비가 90%, 제조경비가 10%를 차지한다. 따라서 제조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조립 비용을 낮추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거나, 자체적으로 핵심부품을 개발, 채용하는 방법으로 재료비를 낮춰야 하는 데, 이 역시 중견·중소 휴대폰 업체들이 엄두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벨웨이브의 움직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GSM에서 GPRS 카메라폰으로 갈아 타는 데 차질을 겪어 지난해말부터 5개월간 고전했지만, 추구하는 생존전략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양기곤 벨웨이브 사장은 "이동전화 사업자들은 더 이상 신규 가입자 유치가 어렵자 다양한 부가 서비스 개발로 차별화를 하는 데 눈을 돌리고 있다"며 "아무리 대형 단말기 제조사들도 이제는 이동전화 사업자들의 요구에 일일히 대응하는 것이 벅찰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이어 "세계 톱10안에 드는 단말기 제조사들은 이제 생산 뿐 아니라 연구개발 분야의 아웃소싱을 선호하고 있다"며 "우리는 지멘스를 비롯해 알카텔을 인수한 TCL 등과 이같은 내용의 협력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벨웨이브는 최근 350명의 인력을 250여명으로 몸집을 줄이면서도, R&D 경쟁력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텔슨전자 등이 연구소 매각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양 사장은 "대형 단말기 제조사들을 흉내만 내서는 더 이상 생존하기가 어렵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미 세계 8위의 휴대폰 제조사로 발돋움한 팬택계열을 제외하고는 세원텔레콤, 텔슨전자 등이 대형 단말기 제조사들의 전략을 따르다가 산화한 것은 그 예다.

양 사장에 따르면 세계 휴대폰 산업의 가치 사슬에서 자사의 위치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과 기회를 발견하는 '눈'이 바로 미래의 생존을 담보한다는 주장이다.

싸이버뱅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 90년대말부터 휴대폰과 PDA의 결합을 세계 처음으로 추구해 지금껏 한길을 걷고 있다. 물론, 그동안 초기 시장 형성의 지연으로 자생력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지만, 이제는 휴대폰과 PDA의 결합을 통한 스마트폰 개발 분야에서만은 독보적이다.

특히 무선랜과 3세대 이동통신을 스마트폰에 녹여 개발하는 것도 세계 최초로 해냈으며, 이 같은 단말기의 등장에 목말라했던 KT의 집중적인 구매로 지난 4월말부터 현재까지 단일 모델 1종으로 5만대 가량을 공급하며서 호기를 누렸다.

두 회사은 공통점을 보면 '남들과는 다른 길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회사가 추구하는 길 역시 '험로'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개발이 한번 삐긋한다든가, 시장에 뜻하지 않은 악재가 발생하면 존립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 중견·중소 휴대폰 업계의 근본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는 M&A를 통한 세계적인 휴대폰 제조사의 탄생이 가장 효과적인 구조조정의 길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도 그같은 중견·중소 휴대폰 업계의 한계를 인식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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