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증권산업 구조조정 바람 거세다
[분석]증권산업 구조조정 바람 거세다
  • 승인 2004.10.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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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LG투자증권 인수 임박이 직접적 시발점이 되긴 했지만, 사실 증권업계 구조조정 문제는 전혀 새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계기를 만든 것도 아닌 해묵은 주제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권사들의 넉넉한 자본력이나 청산가치보다 못한 증권주의 낮은 시장가치 등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증권사 구조조정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우리는 새삼스레 증권사 구조조정에 다시 관심을 가지는가.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증시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업계 현실에 대한 뼈저린 재발견인가 아니면 동북아 금융허브를 꿈꾸는 21세기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바람 때문인가.풍요로워야 할 2004년 추석 한가위 즈음에 불쑥 나온 ‘국내 증권업계의 빈곤’에 관한 한 보고서는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증권사 구조조정 문제를 이제 더 이상 미룰수 없는 과제로 던져 놓았다.

지난 달 21일 ‘구조조정 촉진을 통한 증권산업 경쟁력 강화’란 제목으로 발표된 이 보고서는 한국증권연구원이 한국증권업협회의 연구용역 위탁에 따라 생산한 것으로, ‘국내 증권업계가 어렵다’는 단순한 사실인식이나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식의 막연한 당위를 넘어 뚜렷한 현실 인식과 당위를 좀 더 구체적인 담론으로 이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문제를 현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증권업협회가 먼저 나서서 제기한 점이나, 이후 관련된 애널리스트 리포트가 쏟아지고 있는 점은 현 시점에서 증권산업 구조조정은 이제 더 이상 회피할 수도, 회피해서도 안 되는 주제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국내 증권업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해보고, 향후 활발히 전개될 구조조정 논의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에 지면을 통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증권산업도 인수합병 혹은 청산으로 대표되는 구조조정 ‘태풍’의 영향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인수합병이나 청산을 활성화하고 증권사의 수를 줄이는 게 업계가 살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과연 인수합병이나 청산은 증권산업의 생존법이 될 수 있을까를 놓고 업계간에도 말들이 많다.

◆증권사 숫자 줄이기 놓고 '설왕설래'지난해말 증권연구원은 '증권산업의 현황과 시나리오 분석'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국내 증권사 수가 약 18개 정도로 줄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컨설팅사인 맥킨지도 앞으로 증권회사가 절반 정도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맥킨지는 국내 증권사 가운데 20여개사의 퇴출이 불가피하다면서도 3~4개의 대형증권사와 함께 10~12개 정도의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틈새시장을 노려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업협회나 증권연구원도 인수합병이나 청산을 통해 증권사 숫자가 줄어야 증권업계가 함께 살 수 있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증권연구원은 증권사들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M&A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합병비율과 주식교환 비율의 탄력적 조정 허용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이연 ▲합병과세 면제 ▲이월결손금 승계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증권업협회도 증권사의 수가 줄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황건호 증권업협회장은 지난 4월 취임과 동시에 "증권사간 인수합병에 대해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를 주도록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수합병은 증권산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소장은 “미국에는 증권사가 7000개나 되고 우리와 비슷하게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는 일본도 증권사가 265개나 된다”며 “증권사 숫자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적정규모로 줄었다고 해서 저절로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며 “양적인 변화와 함께 질적인 발전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살아 남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사간 인수합병 실익 있나증권사의 수익구조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증권사를 인수합병해도 남는게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중복점포와 인력 정리라는 문제는 물론 화학적·물리적 통합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과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증권사 영업점은 대부분 여의도와 명동, 광화문 등 서울 특정 지역에 밀집해 있어 합병 이후 점포 정리는 불가피하다.

중복인력 문제는 점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리서치센터를 비롯해 관리부서, 자산운용 부서 등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도 예외가 아니다.

심재엽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대부분 증권사의 수익구조가 비슷한 상황에서 인력중복 문제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의 고위 관계자도 “은행이 증권사를 인수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증권사가 다른 증권사를 인수할 메리트는 별로 없다”며 “인력 조정, 노조의 반발 등 골치 아픈 문제를 떠 안으면서까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인수합병에 나설 이유는 없지 않은갚라며 반문했다.

◆청산이 대안인가인수합병시 걸림돌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증권사 구조재편은 인수합병보다는 청산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브릿지증권과 세종증권 대주주가 유상감자를 통해 자본금을 빼가면서 청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시장의 의혹을 사고있다.

신보성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PBR(주가수익배율)이 낮은 작은 회사일수록 청산을 염두에 둘 가능성이 높다”며 “청산을 통한 자본회수 가능성 또한 비교적 높다”고 밝혔다.

신 연구원은 이어 “증권산업 구조개편 역시 인수합병 보다는 청산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중소형 증권사 몇 곳이 시장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타 증권사들이 덕 볼만한 여지는 없다.

2003사업년도 기준으로 하위 10개 증권사가 전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거래 비중은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증권산업 구조조정은 은행과 달리 시장논리에 맞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이제부터라도 증권사들은 장기적인 생존전략을 마련해 자기 변신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창희 소장은 “증권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성장산업”이라며 “다만 증권사들이 그동안 주수입원이었던 주식 위탁매매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택과 집중…증권사 업무영역 확대 절실그동안 증권사들의 밥줄이었던 위탁매매가 온라인 증권사의 부상과 함께 수수료 인하 경쟁 심화로 수익원으로써 더 이상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41개 국내사에다 해외증권사까지 합하면 56개 증권사가 있다.

대부분 중개수수료에 수익을 의존하고 있지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현상유지도 어려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몇몇 살아 남는 증권사를 중심으로 합종연횡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하는 한편 ‘인베스트먼트 뱅크’(투자은행)로의 변신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증권업계 한 전문가는 “이제 국내 증권사들도 전문 증권사로 변신하느냐 아니면 종합증권사로 살아 남느냐를 선택해야 한다”며 “다만 종합증권사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은 4~5개 리딩 증권사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사들이 청산할 것이 아니라면 ‘천수답’ 식 업계구조에서도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색하기 위한 증권사들의 구슬땀이 필요한 시기다.

실제로 몇몇 증권사들은 온라인 영업이나 자기매매, 리서치 부문을 특화시키거나 법인영업만으로 고객을 한정시키는 등 가능성 있는 사업부분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증권연구원 신보성 연구위원은 “증권사들이 지금까지 브로커리지 위주의 탁매매에 집중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딜링이나 채권, 주식 인수(under-writing) 쪽으로도 비중을 확대해가는 양상”이라며 “일단 전환 노력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동민 대우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의 전문화 노력은 의미가 있지만 결국 동일한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에 불과하다”며 “현 시장상황처럼 거래량이 현저히 줄 경우 헤지 수단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연구원은 이어 “결국 전문화를 위해서는 리스크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며 “고정자산을 유동자산화해 현금이 흐르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의 전환…시스템 변화시켜야현재 증권사들은 업무영역을 일일이 나열하고 있는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을 ‘네거티브(negative)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금융정책이 너무 은행 중심으로만 운영된다”며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업무영역 제한 철폐는 증권·투신업계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지 증권산업 지원을 위해서만 생각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노희진 증권연구원 연구위원도 “증권사들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증권사 업무영역 확대가 과연 은행이나 보험사 등에 비해 자본력, 투자자 신뢰, 세일즈 등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증권사가 현재 맞닥뜨린 수익구조 문제는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는 자금이 줄어드는 반면 업계 수수료율은 떨어지고 있는데 기인하므로 농특세 등 위탁 수수료에 포함되는 세금은 물론 증권사가 부담하는 세금도 줄여 증시 내 시스템 비용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직접적인 주식투자 비용을 줄여주는 조치와 함께 간접투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세제혜택 상품 도입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도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증권업협회와 자산운용협회가 지속적으로 정부측에 건의하고 있고 이헌재 부총리를 비롯한 재경부 등에서도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심규선 현대증권 연구원은 “실질적으로 증권사에 ‘돈’이 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유관기관에 내는 수수료를 줄이고 증권사가 판매할 수 있는 각종 비과세 상품을 허용해 주는 등의 직접적인 해결책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산업이 극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자발적으로 청산하려는 증권사들이 나올 수 있는데 이런 절차가 쉽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 연구원은 “증권사간 M&A를 촉진하기 위해 주식매수청구권을 재검토하고 세제지원을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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